[팩트체크] 자살예방 위해 번개탄 금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2.2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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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 제조 금지→사실 아님
자살수단 관리 강화가 첫번째 대책 → 사실
"산화형 착화제 번개탄은 생산금지" 표현이 오해불러

정부가 준비 중인 자살예방 대책이 연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자살이 전 세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자살에 많이 사용되는 번개탄 생산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은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삶이 고통스럽고 민생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권력을 맡기고 세금을 내는데 국가 최고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정치집단 하는 짓이라고는 국민의 처참한 삶을 가지고 농담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21일 정부가 준비 중인 자살예방 대책에 대해 “죽지 못해 살게 하겠다는 자살예방 대책 이게 최선입니까?”라며 비판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신 대변인은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을 위한 첫번째 추진 과제로 번개탄 생산금지를 선정했다”고 주장합니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습니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어디서 나온 말인가?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습니다. 여기서 복지부는 계획 초안을 공개하고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이 초안은 추진배경 – 우리나라의 자살 특성 및 현황 – 그간의 정책추진 성과와 한계 – 정책방향 – 추진과제의 순서로 구성됐습니다. 추진과제의 첫번째는 ‘1. 사회 자살 위험요인 감소’였고 이 세부과제의 첫번째 항목은 ’01.자살 위험요인 관리 강화’ – ‘자살 위해수단 관리 강화’ 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번개탄’입니다.

복지부는 “자살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자살위해물건(번개탄, 농약 등) 관리강화”를 제시합니다. 방법으로는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성형목탄)은 생산 금지하고, 인체 유해성 낮은 친환경 번개탄 대체제 개발∙보급 지속(산림청)”을 꼽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 등의 비판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출처: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안) 공청회 발표자료.(2022. 02.13)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팩트체크 1 – 자살예방 위한 첫번째 추진과제 번개탄 금지?

신지혜 대변인은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을 위한 첫 번째 추진과제로 번개탄 생산 금지를 선정했습니다. 번개탄을 친환경으로 바꾸고 자살 다발장소 집중 단속하면 살고 싶은 나라가 됩니까? 그런 논리라면 한강도 메우라며 국민의 실소가 끊이지 않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초안에 첫번째 추진과제로 번개탄 생산 금지를 선정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이건 보건복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번개탄 제조 기준 등을 관리하는 기관은 산림청이기 때문입니다.

산림청은 <목재제품의 규격과 품질기준>이라는 고시로 번개탄의 규격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고시는 산화형 착화제로 많이 쓰이는 질산바륨의 함량을 규제합니다. 정확히는 산화성 물질인 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합니다. 착화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번개탄에 재빨리 불이 붙지 않기 때문에 번개탄 제조업체들이 반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대체 물질 개발을 위해 2023년 12월 말까지 유예기간을 부여했습니다. 산림청은 2024년부터는 번개탄 제조에 질산바륨 형태의 산화형 착화제를 사용할 수 없도록 예정하고 있습니다.

 

◈팩트체크 2 – 번개탄 생산을 막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자살예방 기본계획 초안에 대해 “지금 자살이 전 세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자살에 많이 사용되는 번개탄 생산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산림청이 추진하고 있는 번개탄 관련 정책은 산화형 착화제(바륨)의 함량을 낮추거나 유해성을 줄이는 것일 뿐 번개탄 자체를 생산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을 하려면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번개탄으로 인한 사망은 대부분 일산화탄소 중독 때문에 일어납니다. 산림청이 추진하는 친환경 대체재는 번개탄에 들어가는 착화제인 바륨의 함량을 줄이고 질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바륨 성분이 논란이 됐던 것은 호흡기, 안구, 피부에 자극을 주는 유해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란 때문에 바륨 성분의 함량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질산 또는 바륨과 번개탄으로 인한 사망사고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오마이뉴스도 관련 팩트체크를 내놨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보건복지부의 모호한 표현이 오해를 부른 것은 사실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은 생산 금지하고, 인체 유해성 낮은 친환경 번개탄 대체재 개발 보급 지속"이라는 자살방지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번개탄'이라고 일산화탄소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 캠핑 텐트안에서 등유 난로를 사용한 일가족이 자다가 일산화탄소로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옵니다. 친환경 번개탄이든 등유든 불완전 연소가 되면 일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인체유해성이 낮은 번개탄을 개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산화형 착화제를 함유한 번개탄 생산 금지'를 자살 예방 대책으로 내놓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출처: 자살예방 국가 행동 계획
출처: 문재인 정부, 자살예방 국가 행동 계획(2018. 1. 23), 관계부처 합동

◈이전 정부는 어땠나?

문재인 정부의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살펴봅니다. 추진과제를 살펴보면 “자살률 OECD 2.4배로 독보적인 1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기적으로 이행가능하고 성과가 입증된 과제 우선추진”이라고 밝힙니다. 첫번째 과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 추진> 입니다. 2012~2016년 5년 동안 발생한 자살사망자 7만명을 전수조사해 지역별, 사회계층별, 보건의료 특성별 자살원인을 분석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번 정부의 ‘번개탄’과 같은 범주인 <자살촉발 위험 제거>는 ‘적극적 개입∙관리를 통한 자살위험 제거’라는 세번째 대항목에 편성돼 있습니다.

출처:
출처: 문재인 정부, 자살예방 국가 행동 계획(2018. 1. 23), 관계부처 합동

◈자살예방 왜 20년 동안 실패했나?

정부는 2004년 제1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국가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기본계획을 세웠습니다. 역대 정부는 저마다 획기적으로 자살률을 낮추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모든 계획이 내세우는 공통 목표는 “OEDC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탈피”입니다.

정치권과 공무원의 입장에선 OECD 최악의 자살률이라는 수치가 너무나도 수치스럽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계획의 상당 부분은 ‘수치’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행동계획은 매년 1000명씩 자살 사망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2022년 연말 기준으로 자살률을 17.0명 수준으로 낮춰 헝가리(19.4명), 슬로베니아(18.1명) 보다 낮출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출처:
출처: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안)(2022. 02.13) 공청회 발표자료 

윤석열 정부의 자살예방 기본 계획 초안에도 비슷한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2027년 자살률 18.2명(OECD 표준인구 기준 15.8명)으로 OECD 자살률 1위 탈피 가능”, “1위 에스토니아(19.2명), 2위 대한민국(15.8명), 3위 슬로베니아(13.9명) 예상”이라고 밝힙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 느낌. ‘출산율 OECD 최저’ 이슈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럴듯한 구체적 수치를 목표를 세우고 온갖 정책 수단을 제시합니다. 역대 정부가 해결을 공언하지만 최종 연도에 이르러 돌이켜보면 목표치는 아직도 먼 이야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굉장히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출생과 자살 만연을 해결할 근본적인 해법은 우리 사회를 누구나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담당 공무원들,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자살예방 기본계획에 우리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방안을 넣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당장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실제 실행에 이르지 못하게 할 방법을 찾거나,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재차 시도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정책을 설명해야 하는 의무는 공무원들에게 있습니다. 지금은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이지만, 성안이 돼서 국민들에게 ‘제 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설명할 때는 정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왜 이런 정책이 나오게 됐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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