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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폐이론은 왜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요구하는가[현대화폐이론 쟁점] ① 적자재정에 대한 신화 비판
<현대화폐이론> 시리즈

근래 미국에 큰 유령 하나가 출현했다.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약칭 MMT)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은 정부재정과 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새로운 관점에 따라 경제정책을 펼친다면, 현 기득권 세력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 유령같은 경제원리에 따라 새로운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했고, 많은 대중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 대표적 미국의 정치인으로는 2016년 대선에서 선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있다.

샌더스 의원과 현대화폐이론과의 관계: 샌더스가 자신의 경제정책 제안이 MMT에 기초하고 있다고 직접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2016년 샌더스 캠프에서 수석 경제자문역을 맡았던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Kelton) 스토니브룩 대학교 교수는 MMT이론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통한다. 2018년 3월 the Sanders Institute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016년 당시 샌더스와 장시간 토론 후 경제자문역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하원의원은 스스로를 MMT의 팬이며, MMT는 ‘더 많이 토론되어야 한다’(should be a larger part of conversation)고 말했다.

그가 지난 2월에 2020년 대선에도 출마한다고 선언하자, 그의 지지자들은 여타 후보를 압도하는 후원금으로 응답하기 시작했다(샌더스 선거캠프 측에 따르면, 출마선언 24시간 만에 22.5만 명이 600만 달러를 후원, 4월 1일 현재의 총 후원금은 1800만 달러에 달했다. 1인당 평균 후원액은 20달러였다. 이는 약 40일 동안 총 90만 명이 후원금을 냈다는 말이 된다). 또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라는 신인 정치인은 작년 뉴욕에서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득표율 78%)로 당선되었다. 그것도 ‘29세’, ‘남미계의 유색인종’, ‘여성’, ‘웨이트리스 출신’이라는 미국 사회에서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녀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약 380만 명에 이르고 있고, 그녀가 강력히 제안하고 있는 녹색뉴딜(Green New Deal) 정책은 수많은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폴 크루그먼, 래리 써머스, 케네스 로고프 같은 특급 경제학자들까지 이 유령 사냥에 나섰다.

현대화폐이론을 둘러싼 논쟁: 이 논쟁에 대한 좋은 정리로는 Bloomberg의 'Begun, the MMT Wars Have', (2019.03.08.) 기사를 참조하면 좋겠다. 해당 기사에는 MMT 비판과 반론 인터넷 자료가 링크되어 있다. 해외 기사를 번역한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국내 언론들 다수도 최근 이 논쟁을 많이 보도하고 있다. 또한 MMT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싸이트로 <New Economic Perspectives> <Bill Mitchell - Modern Monetary Theory> <The Gower Initiative for Modern Money Studies> <Ellis Winningham - Monetary System Reality>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대중들이 지지하는 정책들이란 보편적 의료보험제도, 대학 무상교육, 녹색뉴딜(거대한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이를 통한 대규모 일자리 창출 등 포함) 등 대체로 대규모 재정지출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미국정부는 매년 재정절벽(의회가 정한 재정적자 상한선에 도달하면 정부는 의회의 새로운 승인 이전까지는 재정지출을 중단해야 한다. 이렇게 재정지출이 갑자기 줄어들어 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을 재정절벽이라 부른다)에 직면하고, 연방정부가 셧다운될 만큼 재정적자가 악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의 재정은 1970년부터 현재까지 단 한 해(2000년)를 제외하고는 매년 적자를 기록했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무려 GDP대비 13.1%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OECD Data).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재정적자를 요구하는 주장은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MMT 이론은 재정적자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왜 자본주의 경제는 정부가 필요한가

경제주체로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담당할까? 정부재정은 흑자를 많이 낼수록 경제에 좋은 것일까? 정부가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활동 전체를 재정정책이라 부른다. 재정정책은 치안이나 국방처럼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사회보장 서비스처럼 소득을 재분배하고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 이외에, 정부의 재정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수단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수요의 부족’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예를 통해 설명해보자. 어떤 경제가 총 100억 원의 생산물을 생산했다고 가정해 보자(이것을 GDP라 부른다). 이는 크게 임금과 이윤으로 분배되고 ‘소득’이라 부른다. 노동소득으로 70억, 자본소득인 이윤으로 30억이 분배된다고 하자. 이렇게 분배된 소득이 생산물 모두(100억)를 소비(구매)해 준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소득의 일부, 예컨대 10억 원을 저축하게 되면, 총 생산물 중 10억 원어치의 물건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창고에 쌓이게 된다. 이렇게 재고가 쌓이면 기업들은 투자를 중단하거나, 심하면 현재 고용되어 있는 노동을 해고하고 기계 등 설비의 가동을 중단하기도 한다(아래 그림 참조)

출처: https://susuhan104.tistory.com/316

그런데 문제는 분배된 소득 중 일부가 저축되고, 생산물이 모두 팔리지 않는 현상이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 전체에서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소득의 불평등 분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임금으로 분배되는 70억은 전체 대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각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그렇게 크지 않다. 왜냐하면 70억을 나누어야 하는 노동자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소득을 불충하게 느끼고, 대부분을 소비한다. 반면, 이윤 30억은 전체 비중에서는 작지만, 이를 수취하는 자본가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개별 소득은 엄청나게 크다. 따라서 이들은 큰 부분을 저축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생산은 되었지만 팔리지 않은 잉여 생산물이 넘쳐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상품의 ‘실현위기’ 혹은 ‘수요부족’, ‘과잉생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내에서 수요가 부족하여 발생한 잉여 생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수출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경우 총 생산물의 약 45%가 수출된다. 국내 소비의 정체가 지속된다면, 이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수출에 의존하는 방법은 대외경제 의존도를 높이고, 수출부문과 비수출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더욱 커지게 하고, 또한 특정 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 이런 문제를 겪는 경우로 우리나라 경제가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하기라도 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는다. 또한 수출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수출품도 소수의 자본집약적 산업에 집중되어 있어서 수출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고용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별로 없다. 이른바 수출의 낙수효과가 크지 않다.

두 번째 방식은 역대 정부가 가장 선호했던 방식으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모든 자본이 스스로 과감히 투자를 늘린다면, 경제 전체의 수요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 전체로는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개별 자본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에 재고를 쌓아두고 있어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투자 부족 현상은 개별의 최선이 전체의 최선이 되지 않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감세,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투자 유인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공급측 접근법’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이는 효과가 크지 않다. 예컨대, 판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세율 좀 낮춘다고 투자가 크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투자는 잉여 생산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올해 투자는 당장 내년부터 더욱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측 접근법, 즉 기업과 자본에게 투자 유인을 제공하여 투자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 고용과 국민 일반의 소득을 증가시키고자 한 경제정책에 대해 회의가 일자, 현 정부는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노동의 소득을 높여 소비여력을 개선하고, 이것이 거꾸로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행방안이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이었다(물론 식대, 교통비 등 예전에는 회사가 지불하지만 ‘임금’으로는 간주하지 않던 것들을 임금으로 계산하게 하는 등의 법 개정으로 그 취지가 많이 흐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증가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우선 현재 최저임금만을 지급하고 있어서 이 조치로 임금을 더 올려줘야 하는 사업체는 대개 영세(자영)업체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손해는 보는 사람들 자체가 저축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 아니어서, 이들의 소득 감소는 소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소비(수요)를 늘릴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를 상쇄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일부 영세업체는 영업을 중단하여 고용을 줄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된다. 그 진위와 범위,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애초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너무나도 긴축적인 우리나라 정부

세 번째 방법이 정부가 소비해주는 것이다. OECD 국가 정부들의 평균 정부지출 규모는 GDP 대비 40% 이상을 차지한다(우리나라 정부 규모는 약 32%로 상대적으로 작다). 정부는 매우 크고, 중요한 경제주체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작심하고 소비를 늘리게 되면,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부족 문제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정부는 세금을 징수하고 이를 재원으로 지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처럼 걷은 세금만큼만 지출하려 한다면, 정부의 소비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세금을 걷으면 민간의 소비는 줄어들고, 그것을 정부가 대신 소비해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로 두었다면 소비하지 않았을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걷어 지출하는 것은 다소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작금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한 하나의 비판은 ‘소득’을 높이는데 정부가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그저 제도와 법을 바꾸어 사용자에게 임금을 더 나누어 주라고 압박할 뿐이다. 정부가 직접 소득을 올려주는 정책을 취하진 않았다. 그 정확한 진의야 알 수 없지만, 재정적자를 회피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우리나라 정부는 오랫동안 세금으로 걷은 만큼만 지출하는 균형재정 혹은 걷은 것보다 덜 쓰는 흑자재정을 유지해 왔다. 아래 그림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연도별 재정수지. 출처: e-나라지표(기획재정부)

G20 국가의 연도별 재정수지. 출처 : OECD Data, General Government Debt

198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대개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통합재정수지 기준, 우리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2009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다. 소득주도성장을 야심차게(?) 추진했던 2018년 재정수지도 31.2조, GDP 대비 1.7% 흑자였다(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정부측은 ‘관리재정수지’가 적자이므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친 것이라 주장하지만, 수요확대라는 취지에서 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해명으로 보인다. 관리재정이란 통합재정에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통합재정은 흑자인데 관리재정은 적자란 사회보험으로 거두어들인 돈이 그에 지출한 돈보다 많다는 뜻이다. 일반 세금이든 사회보험료든 모두 어쨌든 민간에게 거두어들이는 돈이다. 둘 다 소비를 줄이는 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수요부족이라는 자본주의 일반의 모순을 해소하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정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위의 아래 그림, G20 국가의 재정수지), 우리나라 재정은 너무나 ‘건전’하게 유지되어 왔다.

정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까란 관점에서 아래 그림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은 경제 주체를 가계, 기업, 정부, 해외 부문으로 나누고, 각각의 순저축(소득-지출)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이 0보다 크면 벌어들인 것보다 지출이 적다는 뜻이다. 어떤 경제주체가 플러스(+)의 순저축을 기록하고 있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부족 문제를 악화시키는 부문이라 할 것이다(단, 해외는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해외부문은 우리와 거래하는 다른 나라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의 수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면, 우리나라에 판 것보다 더 많이 샀다는 뜻이므로, 해외가 우리나라 생산물을 소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정의상 각 주체의 순저축을 년도별로 합하면, 항상 0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계는 플러스의 순저축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08년 이전 미국은 예외). 가계는 대개 소득보다 덜 지출하는 경향이 있어, 수요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본과 EU 19개국에서는 기업도 플러스 순저축을 하고 있다. 기업들이 이윤을 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기업부문은 2015년까지는 이윤보다 더 많이 투자하여 수요부족 문제를 해소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도 플러스 순저축으로 돌아섰다. 해외부문을 살펴보면,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해외부문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시장을 국내 생산물 수요원천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는 해외에서 소비해 주는 비중이 이들 중 가장 크다.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관심사인 정부부문을 보자.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은 반면, 우리나라만 유독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위에서 본 것과 같다. 가계와 기타 부문이 소득보다 덜 지출하여 국내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부족할 때 정부가 나서서 부족한 수요를 메워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미국경제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나라 경제에서 기업부문은 평균적으로 번만큼 지출하고 있고, 가계와 해외는 지출보다 저축이 크다. 정부부문이 없다면 앞서의 예에서처럼, 100만큼 생산되었는데 90만큼밖에 소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 정부는 매우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자처하여 이 수요 부족분을 메워주고 있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와 뒤이은 침체기간 동안에는 역대 최고의 적자 재정을 운영했다. 경기침체로 부족해진 수요를 정부가 떠안았고, 그래서 더 악화될 수도 있었던 경제를 견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가 경제를 침체로부터 견인해 가고 있는 모습은 일본의 경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0년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소위 잃어버린 30년)에 시달려 왔다. 가계와 기업 모두가 돈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플러스 순저축). 국내 수요가 크게 부족해지고 경제가 침체하자 일본 정부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운용했다.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처럼, 경제에 부정적 충격이 가하지면 정부가 재정적자를 더욱 크게 확대하면서 그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 통념처럼 되었다.

일본 장기불황에 대한 보론: 1990년 거품붕괴 이후 일본의 가계와 기업 모두 저축을 늘려 왔다. 이에 따른 수요부족 문제가 악화되면서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졌다. 그렇다면 일본의 가계와 기업은 왜 저축에 열을 올렸을까? 이에 대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론’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예컨대, 리카드 쿠 저, 김석중 역, 2010. 『대침체의 교훈』, 서울:더난출판 참고). 이에 따르면, 1990년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 개인과 기업 모두 대규모 차입을 통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을 매입했다. 하지만 자산가격이 폭락하자 자산의 가치는 큰 부분 사라진 반면, 부채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 부채를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기업의 부채는 상대적으로 단기에 상환되어 해소되었지만, 개인은 거품 붕괴로 떠안게 된 부채를 청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에 노령화 경향까지 가세하면서 가계의 소비(수요)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대응하여 기업도 투자를 통해 영업활동을 확장할 수 없었다. 이것이 장기침체가 지속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일본 정부가 대규모 적자를 통해 수요를 부양하지 않았더라면, 일본경제는 훨씬 더 악화되었을 것이란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출처 : 미국, 일본, 한국은 OECD database, Euro 19개국은 eurostat database; 저자 계산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위기 혹은 장기적 어려움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8년 세계금융 위기시 일시적으로 적자재정을 운영하긴 했지만, 그 마저도 GDP 대비 2% 미만이었는데, 미국 13.1%, 일본 9.9%, EU 19개국 평균 6%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이후 세계적 경기침체가 뒤따르자,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곧바로 다시 재정흑자로 돌아서서, 이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오랫동안 다른 나라들이 재정적자를 유지하는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재정수지 흑자를 고수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저수준의 제조업설비가동률을 기록할 만큼 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음에도, 우리 정부의 재정흑자 기조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의 재정흑자 기조에 대한 견해: 실제로 우리나라 제조업 설비가동률은 아래 그림(통계청)과 같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현재에는 약 28%의 설비가 가동을 멈추고 있다. 돈 들여 설비를 갖추고도 큰 부분을 놀리고 있는 이 현상은 제품을 생산해도 판매가 불확실한 상황, 즉 수요의 부족을 문제의 근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 추이. 자료: 통계청

재정적자의 위험성, 과학일까 미신일까

우리나라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주류 경제학은 재정적자의 부정적 효과를 주장하며,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결과를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다. 정부부채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국채위기 혹은 경제위기가 발발할 수 있고, 물가가 크게 오를지도 모르고, 또는 민간부문을 경제에서 밀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제적 충격 이외에도, 현대에 정부가 빚을 많이 지게 되면 상환과 이자부담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이러한 우려들이 단순히 기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 PIIGS로 대표되는 남유럽 국가들과 남미 국가들이 겪고 있는 국채위기, 과거 1차 대전 이후 독일과 보다 최근의 짐바브웨,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 등은 대규모 재정적자와 함께 발생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세금의 더 큰 부분이 이자비용에 지출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MMT 지지자들은 이러한 우려가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며 비판한다. 역사적 경험도 잘못 해석한 것이라 주장한다. MMT에 따르면,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서 조심스럽게 재정적자를 확대하여 운용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MMT 전무가로, 2014년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의 민주당 측 경제자문위원을 역임했고, 2016년 샌더스 대선캠프에서도 수석경제자문역이었던 켈튼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한다. “재정이 아니라 경제를 균형시켜라!"(Balance the economy, but not the budget!). 실업은 분명한 경제 불균형 상태를 의미한다. 정부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정책역량을 갖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큰 재정적자를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재정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초긴축 재정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더 큰 울림이 있는 충고라 할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자, 그에 따른 국가부채는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인가? MMT의 주장처럼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이 좀 더 행복해지는 정책을 수행하는데 제일 무거운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사실일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화폐금융체계와 재정통화정책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 칼럼에서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필자 전용복은 2010년부터 경성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8년 미국 University of Utah에서 수요측 요인으로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을 설명하는 논문을 작성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주류 경제학 대부분이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믿으며, 대안적 경제이론을 탐구해 왔다. 특히 대안적 경제성장론, 화폐ㆍ금융론, 재정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전용복  contact@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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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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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준 2019-05-04 12:22:53

    세금 더 거두면 더 위축 될뿐.. 작년처럼 ㅎㅎㅎㅎ   삭제

    • 독자 2019-04-21 12:27:36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는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부의 집중이죠. 불완전경쟁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으로 얻은 이윤이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어 분배되지 않으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 수요가 부족해집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정부가 세금을 걷어 분배하거나 돈을 빌려 분배하면 시장에 돈이 돌고 수요가 늘어나죠. 그래서 자본가는 자신들이 일으킨 수요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법인세, 종합토지세, 종합소득세를 많이 거두어 분배해야 합니다.   삭제

      • 박준오 2019-04-16 03:40:54

        다를게 없는데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대규모 돈찍어내기   삭제

        • 김광덕 2019-04-15 17:07:22

          좋은 기사네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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