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팩트체크] ‘한국만 사죄 악쓴다?’, ‘제3자 변제는 문희상 안? 피해자 거부해도 지급?’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3.03.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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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언론의 한 주간 팩트체크 기사 소개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 ‘제3자 변제는 문희상 아이디어’?, ‘피해 당사자가 반대해도 제3자 변제 가능하다’?, 지난 주 관심을 모은 이슈와 발언입니다. 한 주 동안 언론에 보도된 팩트체크 관련 주요 뉴스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SBS 방송화면 갈무리
SBS 방송화면 갈무리

1.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 한국 말고 어디 있나”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SNS에 올린 글입니다.(현재는 수정됨) 윤석열 대통령과 40년 지기 친구로 알려진 석 처장은 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차관급인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중국은 ‘덕’으로 원수를 갚겠다며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일본에 요구한 사과와 배상 요구가 지나쳤는지 SBS이코리아에서 검증했습니다.

석동현 사무처장 페이스북 수정내역 갈무리
석동현 사무처장 페이스북 수정내역 갈무리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 5항, ‘중국은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 일본은 이 조항 때문에 중국 피해자들이 배상 청구할 수 없다고 봅니다.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 피해자들은 사죄는 물론 도의적 차원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2015년 7월, 미쓰비시 머터리얼은 미국 LA까지 가서 미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당시 한중 언론은 미국에만 사과하느냐며 비판했는데, 미쓰비시 측은 곧바로 중국 피해자에게만 보상을 약속했고, 이듬해 합의문까지 발표했습니다. 피해자 3천700여 명에게 1인당 10만 위안을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전범기업 니시마츠 건설도 중국 피해자에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반면 한국 피해자에 대해서는, 한반도 식민지배는 합법적이라는 판례를 들어서 사과도 배상도 거부해왔습니다. 일본의 이런 선택적 사죄와 보상이, 한국만 요구를 계속하게 된 바탕입니다.

100개 나라, 160만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44억 유로를 배상한 독일은 공식적으로 ‘배상’이 아니라 ‘일회성 지급이행’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 번의 지급으로는 배상 될 수 없는 피해니 만큼, 계속 책임지겠다는 의지 표현입니다.

식민지배 시절 입은 피해에 대해 지금도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케냐입니다. 케냐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이 케냐를 무력지배한 1952년 이후 10년 동안 9만여 명의 케냐인이 영국 군대에 의해 숨졌고, 16만 여명을 수용시설에 감금하고 고문까지 자행했습니다. ‘마우마우’는 케냐의 무장 독립운동을 이끈 단체로, 당시 영국은 군대를 투입해 마우마우 관련자는 물론 그 주축을 이루는 키쿠유족을 학살했습니다.

2009년, 70~80대가 된 마우마우 관련자 5명이 개인 자격으로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피해 배상 소송이 제기됐을 때 영국 정부는 “상호 협의 아래 임시정부를 거쳐 식민통치권을 이양한 만큼 과거사에 대한 책임은 케냐 정부에 있고, 관련 사건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2012년 영국 고등법원은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을 기각하고, 마우마우 관련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무력진압과 가혹행위를 사과하고 피해자 5000여명에게 199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2019년엔 키프로스 고문 피해자들에게도 100만 파운드를 배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밖에 유럽 여러 나라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2년 뉴욕타임스는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피해 금액을 산출해 배상을 청구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메이카,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카리브해 15국으로 구성된 ‘카리브공동체’(CARICOM) 등입니다.

석동현 처장의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2. ‘제3자 변제’는 문희상 아이디어?

정부가 발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금 지급 방식은 가해자인 일본 기업의 책임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논란입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은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이디어라고 했습니다. YTNTV조선에서 검증했습니다.

TV조선 방송화면 갈무리
TV조선 방송화면 갈무리

2019년 문희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또는 일본 기업의 기부금, 한일 양국 국민의 기부금, 정부, 국제기구, 단체 등의 기부금을 명시했습니다.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가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과 관련된 양국 기업이 위로금을 출연하자고 제안했었는데, 발표 1시간 만에, 일본 정부는 “한국의 제안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거절했습니다. 문희상 의장 안은 이걸 일본 쪽이 받기 쉽도록 약간 변형시킨 겁니다. 제3자 변제라는 방식을 처음으로 제안한 거라, 당시 일본 언론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에는 일본 기업이나 정부, 국민의 기여는 빠져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한일 기업과 정부, 국민이 참여한다는 뜻에서 ‘2+2+α’로도 불렸습니다.

당사자인 문희상 전 의장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재단 정관을 고치는 방식으로는 안 되고 재단 설립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 추진해야 피해자도 국민도 동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임을 묻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들도 기꺼이 재단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꽤 구체적인 논의까지 있었는데 일본 정부가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이 문희상 아이디어라고 한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체로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제3자 변제라는 방식을 썼던 사례로 독일 사례가 있습니다. 90년대 들어 미국에서 나치 정권 당시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이 이어지자, 독일 정부가 재단을 설립해 기업과 반반씩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이 재단을 통해 100여개국 166만 명이 6조 원을 받았습니다. 다만 가해 당사국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제3자 변제안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문 전 의장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법안은 이미 3년 전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12명 이름으로 재발의돼 있습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특별법 개정안과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똑같습니다.

 

3. ‘제3자 변제’ 피해당사자가 반대해도 ‘대신 지급’ 가능할까?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정부는 끝까지 수령을 거부할 경우 공탁을 통해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입니다. YTN오마이뉴스에서 확인했습니다.

일본 전범 기업이 배상해야 할 위자료를 우리 기업들이 대신 내도록 한 정부 발표에 일부 피해자들은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변제 방식을 추진해온 정부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정부안에 반대하는 피해자가 끝까지 판결금 변제를 수령하지 않을 경우에도 배상금을 공탁하면 법적인 권리가 해소된다는 겁니다.

민법 제469조를 보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채무를 대신 갚을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건의 당사자가 거부하면 허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변제금 받기를 거부할 때는 변제금을 법원에 맡겨서 채권 채무 관계를 해소하는 공탁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공탁 실무를 보면 이때도 민법과 마찬가지로 당사자가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제3자가 변제공탁을 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재단의 정관 변경을 통해 이 같은 법적인 문제도 해소됐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재단의 정관 목적사업에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보상 및 변제’를 추가했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제공할 근거를 보완했다는 설명으로 보입니다.

외교부는 정부 안에 반대하는 피해자 측의 동의를 구하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제3자 변제 방식’을 놓고 새로운 다툼이 시작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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