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이틀 출근했는데 300만원...근로기준법 악용?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3.08.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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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없이 아르바이트생 해고 뒤 부당해고 배상까지
“알바가 근로기준법 악용” vs “근로계약서 안 쓴 업주 잘못”
5인미만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악용사례 많아

최근 한 자영업자가 이틀 근무한 직원에게 300만원을 지급하게 된 사연이 화제가 됐습니다. 울산방송(ubc)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 식당 업주가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용했다가 이틀 만에 해고했는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이 문제가 돼 300만원을 지급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기사는 ‘근로기준법 악용하는 ’알바생‘ 주의’라는 입장을 반영한 반면, 댓글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을 시키려는 업주들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관련한 내용들을 확인했습니다.

 

■ 일하는 거 보고 고용하려다... 합의금 지출

해당 업주는 채용한 아르바이트생과 이틀 일해보고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해고했습니다. “(불성실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아) 2~3일 일하는 걸 지켜보고 고용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 쯤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된 아르바이트생이 ‘사용자가 해고 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알리지 않았다’며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측 노무사는 ‘지방노동위원회 판정까지 통상 석 달이 걸려, 석 달 치 임금 900만원을 지급하게 될 수 있다’며 합의를 제안했고, 업주는 부당해고로 판정되면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고용지원금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돼 결국 ‘300만 원 지급’으로 합의한 것입니다.

업주는 “이틀에서 삼일 정도 일하는 걸 지켜보고 고용하려 했다. (근로계약서를 미작성한 것, 부당해고) 부분을 제가 잘못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반대로 근로자분들이 하루 일하고 안 나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넉 달간 식당 4곳을 돌며 합의금을 챙긴 사례 등 최근 아르바이트생이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유사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데일리팜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월 경기도의 한 약국은 채용 이틀 후 퇴사한 직원으로부터 “일하는 이틀 동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겠다. 신고 당하기 싫으면 나에게 돈을 보내라”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약국 관계자는 “직원은 워낙 이직률이 높고, 출근 일주일 내에 그만 두겠다는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 출근 첫 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한 번이면 우연일 수 있지만, 여러 차례 반복된다면 악용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기사 댓글에는 근로자 입장 많아

하지만 기사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피해를 본 사례 등 업주를 비판하는 글이 더 많았습니다.

유튜브 영상 댓글 갈무리
유튜브 영상 댓글 갈무리

“저도 편의점 알바를 3개월 전에 했었는데 점주가 부부였고 근로계약서 얘기 자체를 하나도 못 들었습니다. 그래놓고 부려 먹을 대로 부려먹고 여점주가 자기네랑 안 맞는다고 다른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일해 달라고 부당해고 하더군요.”

“쉽게 해고할 목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거 아니냐”는 의견도 다수 있었습니다.

소기업이나 작은 규모 업장의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 채용과정 혹은 채용 후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나 작성을 하자고 근로자가 먼저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사용자와 근로자를 흔히 언급하는 ‘갑을’ 관계로 표현하면 사용자가 갑입니다.

근로기준법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약자인 근로자들의 실질적 지위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하여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법입니다.

사용자의 지시를 받으면서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근로자들은 임금이나 기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게다가 근로조건은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약정에 의해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헌법은 근로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정된 것이 ‘근로기준법’입니다.

 

■ 근로기준법 악용 많은 곳은 5인 미만 사업장

앞서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을 악용한 사례라며 소개했지만, 근로자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거나 미룬 게 아니라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근로기준법 악용 사례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 범위) 2항은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 일부를 미적용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연차 유급휴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 등 일부 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 시행령 갈무리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 시행령 갈무리

지난 해 3월 노동부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의심되는 사업장 114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직원 420여 명을 거느린 쇼핑매장이 회사를 36개의 사업장으로 쪼개 ‘5인 미만’으로 운영하는 등 하나의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개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다수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3월에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자에게 해고를 30일 전에 통보해 해고 예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출근 정지 명령을 통해 휴업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해고 예고 수당은 법적 의무 사항이지만 휴업 수당 지급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악용한 것입니다.

반대로 영세업체의 경우 업주가 법에 무지하거나 대비하지 않았다가 법 위반 신고라는 난처한 경우에 직면할 때도 많습니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악덕 고용주인 경우도 있지만, 식대, 교통비, 상여금 등 임금체계를 잘 몰라서 최저임금 시급을 위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자료 갈무리
고용노동부 자료 갈무리

정리하면, 근로기준법은 약자인 근로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를 악용하는 근로자도 사용자도 있습니다. 특히 예외를 인정받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악용사례가 많습니다.

참고로, 근로기준법 준수의 시작은 근로계약서 작성입니다. 앞서 문제가 된 일용직계약서를 포함한 표준근로계약서 양식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링크)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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