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동훈 "사형 집행하면 EU와 외교 단절"?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8.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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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주 전국 4개 교정시설에 사형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사형집행을 전제로 한 지시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형제가 존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 집행시설이 적정하게 유지관리 돼야 한다는 취지”라고 부연했습니다. 곧 사형 집행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한 장관 자신마저도 사형집행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왜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이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고 할까요? 뉴스톱이 사형 집행에 관한 쟁점을 분석해봤습니다.

출처: 국회 회의록
출처: 국회 회의록

◈[팩트체크] 사형 집행하면 EU와 외교 단절?

한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사위에서 “사형제는 굉장히 여러가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외교적인 문제도 굉장히 강력하다. 만약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EU와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 있는 문제”라고 발언했습니다.

EU는 사형제에 강력하고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EU에 가입하려는 국가는 반드시 사형을 폐지해야 합니다. EU는 사형 폐지를 달성하는 것이 EU 외교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EU와 외교관계가 단절될 거라고 예견하긴 어렵습니다. OECD 회원국 중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으로 7명을 살해한 범인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연방 차원의 사형집행을 무기한 정지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 정부는 사형제를 폐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으며, 26개주가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11건의 사형 집행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EU가 이들 나라와 단교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2021년 9월 <[팩트체크] 사형 집행하면 한·EU FTA 파기되나> 기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사형을 집행하면 FTA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은 한·EU FTA 협정문 어디에도 없다. 협정문에 없는 내용을 근거로 FTA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의 설명을 전했습니다. 일각에는 우리나라가 EU와 FTA를 체결하기 전에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법무부는 2010년 “유럽평의회의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협약’(회원국 47개) 가입시 동 협약에 의하여 인도되어 오는 범죄인에 대하여는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라며 “우리나라가 사형을 일반적으로 집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협약 가입국가들이 사형집행을 하지 않으므로 상호주의 원칙상 동 협약에 의하여 인도되는 범죄인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사형집행 시설 점검, 왜?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건 1997년 문민정부 시절입니다. 이후 26년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형 집행을 10년 이상 하지 않은 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23개국이 사형 집행을 중단하고 있는데요.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한 나라는 112개국, 전쟁 및 특수범죄에만 사형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9개국이고,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55개국에 불과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사형제 폐지가 ‘대세’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왜 한 장관은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고 지시했을까요?

첫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잇따라 발생한 흉악범죄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여차하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 잠재적 범죄자들을 억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일부 사형수들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현재 59명의 사형수들이 수감중인데 일부는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수형 태도가 불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형을 집행할 기미가 보이면 사형수들은 바짝 긴장해 수형 태도가 개선된다고 합니다.

◈사형 어떻게 집행되나?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각종 법률에 명시돼 있습니다. 형법 66조는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絞首)하여 집행한다”고 정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선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됩니다. 미국에선 약물주입, 전기의자 등의 방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사형 집행 시설이 설치된 교정시설은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 등 4곳입니다. 다만, 군형법은3조는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총살로써 집행한다”고 정합니다. 현재 군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4명입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91조는 “사형은 교정시설의 사형장에서 집행한다. 공휴일과 토요일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형사소송법은 사형 집행 명령권자를 법무부장관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면 법무부장관은 판결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사형 집행 명령을 내려야하고, 명령은 5일 이내에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행 규정이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보니 정무적 판단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1997년 이후 역대 법무부 장관은 모두 형사소송법을 어기고 있는 겁니다.

◈사형 찬반 양론

사형제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현재 사형제 헌법소원을 심리 중입니다. 헌재는 2010년 위헌제청 심판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5대4로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헌재는 “사형은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威嚇 힘으로 으르고 협박함: 편집자주)를 통하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며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당해 범죄인의 재범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하려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은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흉악범죄자의 목숨을 거둬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이야깁니다.

반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형제 폐지 움직임은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 발의로 이어졌습니다. 2021년 10월 민주당 이상민 의원 등 의원 30명은 사형 폐지를 담은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습니다. 이들 의원은 “국가가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전제로 하여 한편으로 국민에 의한 살인행위를 범죄로 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인간 생명의 박탈을 제도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합니다. 사형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한 실증적 자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UN의 1988년과 2002년도에 사형의 범죄예방효과 조사결과를 인용합니다. 사형제도가 살인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며, 조사결과 통계수치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사회에 급작스럽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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