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우스 17억, 캣타워 20억?... 오픈마켓에서 이뤄지는 '편법'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3.02.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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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짜리 캣타워ㆍ17억짜리 블라우스... '판매'를 위한 가격일까?
대부분 해외직구 상품... 해외 쇼핑몰에서는 3만원이면 살 수 있어
이유는? "상품 재등록 과정 피하기 위해 아무도 사지 않을 가격으로 등록"
마케팅 업계... "가격책정은 판매자 권한이라 100% 없앨 수는 없어"
비정상적인 가격이라고 의심된다면... 고객센터에 전화하거나 소비자보호단체에 문의

오픈마켓에 팔리고 있는 고양이 장난감(캣타워). 20억 원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사진=티몬 갈무리

요즘에는 직접 매장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물건을 빠르고 쉽게 구매하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티몬ㆍ11번가ㆍ지마켓ㆍ인터파크' 등의 사이트에서 결제수단과 주소지만 입력하면 10분도 되지 않아 거래가 완료되는데요,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러한 사이트를 '오픈마켓'이라고 부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라고 정의합니다. 한 마디로 흔히 알려진 오픈마켓이 물건을 팔 수 있는 온라인 시장(플랫폼)을 제공하면, 물건 판매자는 중개 대가로 수수료를 건네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위 사진 참고)했습니다. 뉴스톱이 여러 오픈마켓을 둘러보니, 특정 물건들이 상식 선에서 벗어나는 가격으로 책정돼 있었습니다. 20억원짜리 캣타워가 있는가 하면, 17억원짜리 블라우스도 보입니다. 판매자들은 정말 '판매'를 위해 해당 가격을 제시한 걸까요? 과연 억 단위를 주고 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을까요? 뉴스톱이 확인해봤습니다. 

 

◈ 오픈마켓 모니터링 해보니... 직구하면 2만원인데, 한국에서는 15억원에 판매?

오픈마켓에 등록된 여성 블라우스. 한 장에 17억으로 등록됐다. 사진=11번가 갈무리

여러 오픈마켓에 들어가 '높은 가격순'으로 설정해 물건을 살펴보니, 10억원 단위의 상품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에 17억원인 블라우스를 직접 구매하려고 해보니, 주소를 입력하고 결제 방법을 선택하면 즉시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판매행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해외직배송' 상품(위 사진 참고)이었습니다. 해외의 상품을 대신 구매해 한국으로 들여보내는 '대행업자'들이 10억원 단위로 가격을 책정해 놓은 겁니다.

'11번가'에 15억에 등록된 블라우스가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2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사진=11번가, 알리익스프레스 갈무리

문제가 되는 해외직배송 상품의 실제 거래 가격을 파악하고 싶어, 구글 '이미지 검색'을 활용했습니다. 블라우스와 고양이용 장난감(캣휠) 이미지를 캡처해 구글에 검색했는데, 다소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14억9천만원에 판매되던 블라우스는 홍콩의 온라인 마켓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2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위 사진 참고). 470만원에 판매되던 고양이 장난감은 동일한 사이트에서 3만원만 지불하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해외 배송료 등을 고려하더라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입니다. 

'지마켓'에서 5백만원에 판매되는 고양이 장난감을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3만원에 살 수 있다. 사진=지마켓, 알리익스프레스 갈무리

◈ 오픈마켓 홍보담당자 "오픈마켓 특성상 가격 책정은 판매자의 고유권한"

해외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비싼 가격순'으로 설정했을 때 검색창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 높은 가격으로 설정한 건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뉴스톱이 모니터링한 판매업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보니, 대부분 "전산 오류"거나 "저희 회사가 그런 게 아니라 도매상이 잘못 등록한 것 같다"는 짧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마켓 이미지. 사진=픽사베이(Pixabay)
온라인 마켓 이미지. 사진=픽사베이(Pixabay)

오픈마켓 홍보 담당자들은 조금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11번가 홍보팀 담당자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원래는 재고가 없거나 상품을 판매할 의지가 없을 때, 원칙대로라면 판매를 중지해야 한다"며 "다시 판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재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등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차피 해당 가격으로는 아무도 사지 않을 테니, 상품 등록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억 단위로 가격을 책정한다는 겁니다. '검색창 상위 노출을 위해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광고 의도는 없어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판매 행위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업계 담당자들은 '오픈마켓의 특성'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마켓 홍보 담당자는 "오픈마켓 특성상 누구나 자유롭게 상품을 사고 팔 수 있는 구조"라며 "가격은 판매자가 측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11번가 담당자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지만, 판매 가격 책정은 법적으로 판매자의 권한이기 때문에 함부로 (제품을) 삭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일종의 '편법'이기 때문에 '위법'은 아니라는 답변도 돌아왔습니다. 

 

◈ '편법'이라는데... 신고할 수는 없을까? 

한국소비자원 <해외구매대행 사업자의 소비자 보호 제도 인지 실태조사> 갈무리

한편 한국소비자원의 <해외구매대행 사업자의 소비자 보호 제도 인지 실태조사(2022)>에 의하면, 해외 구매대행업을 규정하는 별도 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법률 부재로 인한 편법을 막기 위해 '해외구매 표준약관'을 마련해두었습니다. 해당 약관 제5조 2항은 판매가격 구성 내역을 구분하여 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오픈마켓에 입점한 해외구매대행 업체의 대부분이 이를 지키지 않아(위 사진 참고), 소비자원은 "사업자의 (표준약관에 대한) 인지도 제고와 준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10억 단위의 상품을 판매한다고 하면, 해당 가격의 구체적인 구성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10억만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편법'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까요? 다행히도 해당 업체에 시정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가 있습니다. 오픈마켓마다 운영되는 고객문의센터에 비정상적인 가격이라고 의심되는 물품 번호를 알려주면 됩니다. 앞서 뉴스톱과 전화했던 오픈마켓 홍보담당자들도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유관 부서에 전달해 확인한 후 즉각 조치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인터파크
'인터파크'에서 1억원에 판매되던 블라우스가 뉴스톱의 이의제기 이후 '품절상태'로 변경됐다. 사진=인터파크 갈무리

실제로 블라우스 한 장을 1억에 팔던 판매업자는 뉴스톱의 이의제기 이후 '재고수량이 없어 구매가 불가하다'고 안내(위 사진 참고)하고 있고, 5천700만원에 강아지 집을 팔던 업체는 '임시 품절로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습니다.


정리하면 오픈마켓에 억 단위로 등록된 일부 제품들은 '판매'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품절 등 업체 사정이 있어 원래는 해당 상품을 오픈마켓에서 내려야 하는데, 재등록이라는 과정을 다시 거치고 싶지 않아 일종의 '편법'을 이용한 겁니다. 비정상적 거래가 의심된다면 해당 오픈마켓의 고객센터에 알리면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상담센터(1372) 혹은 한국소비자원에 알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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