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같은 돈 냈는데 여자는 밥 적게”... 법적 문제 없을까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3.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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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서 한 식당이 남성 손님과 여성 손님들에게 밥양을 달리 제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게시글에서 "주문할 때 '여자분이 시키신 메뉴가 어떤 거냐'고 물어보길래 '왜 물어보신 거냐'고 여쭤보니 (같은 가격인데도) '남자는 식사량을 더 많이 제공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시대착오적이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게시글은 1만5000회 이상 리트윗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트위터 게시글 갈무리
트위터 게시글 갈무리

그러자 해당 식당 측은 해명 글을 올려 진화에 나섰다. 식당 측은 "반찬이 많고 덮밥은 내용물이 푸짐해서 여성 손님 중엔 공깃밥 남기는 분이 너무 많다"며 "그래서 여성은 정량으로 주고 추가 시 돈을 안 받고, 남성 손님에게는 미리 더 주고 추가하면 천 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여론은 첨예하게 갈라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여성이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덜 주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같은 돈을 냈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더 적은 양을 제공받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성별 등을 이유로 같은 비용으로 다른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같은 재화나 서비스에 다른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핑크택스’가 뭐길래

앞선 사례가 아니더라도, 성별을 이유로 비용이나 서비스에 차별을 두는 게 문제가 된 경우는 많다. ‘의류나 신발 등 동일한 상품·서비스인데도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더 비싼 경우’를 의미하는 ‘핑크택스’라는 단어도 있다. 핑크(pink)는 여성을 상징하는 색깔이며 택스(tax)는 말 그대로 세금이다. 실제 세금을 더 낸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품질의 제품에 대해 여성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핑크택스’ 논란은 2015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됐다. 미국 뉴욕 소비자보호원이 24개의 온오프라인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800개 제품의 남녀용 가격 차이를 조사한 결과, 여성용이 더 비싼 제품은 42%로 나타났지만, 남성용이 비싼 제품은 18%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20년,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출시한 슬랙스에서 남성용, 여성용 가격 차이가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남성용 슬랙스는 가격이 3만3900원이었지만, 여성용의 경우 뒷주머니 대신 페이크 포켓이 달리고, 히든 밴딩과 실리콘 프린팅이 제거되는 등 기능성은 떨어지면서 1천원 더 비싼 3만4900원에 판매됐던 것이다. 비난이 일자 무신사 측은 이후 개선의 의미로 성별 차이를 없앤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역별 미용실 핑크택스 유무를 알려주는 인스타그램 계정
지역별 미용실 핑크택스 유무를 알려주는 인스타그램 계정

의류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용실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서비스 비용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기준 여성의 커트 1회 평균 비용은 2만1308원인 반면, 남성의 경우 1만1692원으로 여성이 약 1.82배 비싼 비용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여성 머리를 자르는 것이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다는 미용실의 반론도 있다. 하지만 같은 숏컷이라도 여성 숏컷을 더 비싸게 받는 미용실도 있어 차별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 차별’에 대한 법 규정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소비자차별금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 차별’을 규정하고 있는 법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차별금지사유와 차별금지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일반적 차별금지법으로서, 소비자차별에도 적용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역시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서, 장애를 이유로 하는 소비자 차별에 적용할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소비자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소비자기본법’도 있다. 대표적으로 ‘표시기준 규정’은 “국가는 소비자가 사업자와의 거래에 있어서 표시나 포장 등으로 인하여 물품 등을 잘못 선택하거나 사용하지 아니하도록 물품 등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표시 방법에 관한 기준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소비자가 물품 또는 용역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래상대방 구입장소 가격 및 거래조건 등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나, “국가가 사업자의 불공정한 거래조건이나 법으로 인하여 소비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실시해야 할 책무” 역시 해당 법에 명시돼 있다.

 

◆소비자 차별 금지 법조항 미비… “평등권 보장해야”

그러나 ‘소비자 차별’을 금지하는 법규는 미비하다. 소비자거래영역에서의 차별금지에 관한 법규의 현황을 보면,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보험업법’, ‘전기사업법’, ‘전기통신사업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등에서 부분적으로 차별금지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소비 행위에 해당하는 ‘소비자기본법’,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법’,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표시 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소비자 법제에서는 직접적인 금지 규정이 없다.

즉, 앞서 언급된 사례와 같이 ‘핑크택스’로 대표되는 일부 사업자들의 재화, 서비스 및 가격 차등 설정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은 없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 역시 “일반적으로 가격 결정의 문제는 사업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는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비 주체와 형태가 다양해지는 시대에 걸맞게, 소비자 차별을 명확히 규정하고 해소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비자차별금지에 관한 연구>는 소비자평등권 보장과 소비자 차별 금지를 위해 “소비자기본법에 소비자차별금지에 관한 근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의 정지연 사무총장은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키오스크의 상용화로 디지털 취약계층이 겪는 문제나 계층별 정보 비대칭 문제 등,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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