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조주빈 촉발 "국민참여재판, 성범죄자에 관대하다"?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5.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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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대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신청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하급심 법원에서 두 차례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이 내려졌지만, 조주빈 측이 “법관에 의한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이에 불복한 것이다.

앞서 조주빈은 다수의 미성년자를 성 착취하고 이를 제작물로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징역 42년 형이 확정된 상태다. 이후 강제추행과 미성년자 성폭행 등의 혐의로 추가 기소됐는데, 미성년자 성폭행 재판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이 사실이 알려지자, SNS를 중심으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해당 내용을 다룬 기사를 첨부하며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것이 사실인 걸까? 조주빈이 이러니 더욱 확신이 서버리는데”라고 쓴 게시글은 트위터에서 30만 조회수를 넘게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해당 재판에서 피해자 측 변호인은 국민참여재판 진행을 반대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과연 “국민참여재판은 성범죄자에게 관대하다”는 의혹이 사실인지,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성범죄 무죄 평결, 다른 강력 범죄보다 3~9배 높아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제도이다. 2007년 6월 1일 공포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당 지방법원 관할구역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다. 법률에서 규정한 결격사유와 직업 등에 따른 제외사유, 제척사유, 면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

실제로 2021년 법원행정처가 발표한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에서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에 비해 성폭력 범죄의 무죄 평결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강력범죄에 대한 배심원의 전부 무죄 평결 비율은 살인이 3.36%로 가장 낮았고, 강도 8%, 상해 9.17%였다. 반면 성범죄는 27.88%를 기록해, 다른 강력범죄보다 3~9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평결과 판결이 일치하지 않은 사건은 모두 177건이었는데, 이 중 15%인 25건이 성폭력 범죄 사건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성폭력 범죄에서의 불일치 사건 25건 중에서는 1건을 제외한 24건이 ‘배심원이 무죄 평결을 하였으나 재판부가 유죄로 판결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재판부보다도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NO’는 ‘YES’?”... ‘강간통념’의 결과

사법정책연구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다른 강력범죄와 달리 성폭력 범죄의 경우 직접적인 물증이 제출되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됐을 수 있다"면서도, "이를 고려해도 다른 범죄에 비해 3~9배가량 무죄 평결이 많다는 것은 성폭력 범죄를 재판하는 배심원이 성 고정관념이 있었거나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

유독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 평결이 많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배심원들의 평결에 ‘강간통념’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강간통념은 △“여성은 강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강요된 성관계를 원한다” △“여성이 성관계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것은 종종 실제로 ‘YES’를 의미한다” △“여성은 종종 성폭력을 유발하거나 부추긴다” △“여성이 정말 강간을 막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 등 성폭력 범죄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는 사회적 통념을 의미한다. 배심원들이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 사건의 평의와 평결에 참여할 경우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배심원들의 공정한 판단 위한 지침 필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고서는 우선 성폭력 범죄 사건 자체에 대하여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실제로 성폭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배제신청을 하는 경우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도록 하자는 개정안도 발의된 상황이다.

 

조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참여재판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정보시스템
조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참여재판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정보시스템

조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참여재판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거부권을 삭제하고 피해자의 국민참여재판 거부권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박대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법원에 성폭력 범죄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배제를 신청하면,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신청에 따라 성폭력 범죄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국민참여재판 실시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통해 사법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취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현행법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의 실시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원이 배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서 대법원 역시 “단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바 있다.

 

대한민국법원 전자민원센터
대한민국법원 전자민원센터

때문에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가급적 성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이 없는 배심원을 선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배심원 선정을 위한 질문을 할 때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심원이 선정된 후에도 △재판장이 배심원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각 사건에 맞는 적절한 지침을 제공해야 하고,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없도록 사전에 검사 및 피고인·변호인에게 지침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최종안을 작성해야 하며, △재판장이 배심원들에게 성인지 감수성 및 성폭력 범죄 사건의 재판에 대한 교육 등을 실시하도록 하는 명확한 규정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국민참여재판은 성범죄자에게 관대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2008년부터 2020년까지의 재판을 분석한 결과, 성범죄에 대한 무죄 평결 비율은 27.88%로, 다른 강력범죄보다 3~9배가량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직접적인 물증이 제출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높은 비율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이에 대해 “성폭력 범죄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통념인 ‘강간통념’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하며, △성폭력 범죄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거나 △공정한 판단을 위해 배심원들에게 지침을 제공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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