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미국에서는 '성중립 화장실' 금지하는 추세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3.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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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 설치
미국 일부 주, 이용 금지 법안 통과...아직 소송 중
연구결과 의무화와 아닌 곳의 범죄빈도 차이 없어

최근 서울대, 카이스트 등 몇몇 대학이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한 성공회대에 이어 또 다른 대학의 설치계획이 나온 겁니다. 성중립 화장실은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등 모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말합니다. 

경기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 한국다양성연구소 자료집 갈무리
경기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 한국다양성연구소 자료집 갈무리

하지만 성중립 화장실은 남녀가 함께 쓰기 때문에 성범죄 등 위험성이 높다는 우려가 오랫동안 제기돼 왔습니다. 23일 개신교계 매체 <크리스천투데이>는 성중립 화장실의 위험성을 강조한 기사를 냈습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성소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미국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 후 결국 성중립 화장실을 금하는 법안을 내고 있는 추세”라고 보도했습니다. 

기사에는 미국 조지아주 초등학교 여자 화장실과 위스콘신주 고등학교 성중립 화장실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례가 나옵니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앨라배마주에는 성 소수자들이 따로 화장실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안이 제정됐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오클라호마주는 공립학교 도서관에 성이나 성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서적을 배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됐다고 합니다.

위 사례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우려를 표시할 때 자주 거론됩니다. 뉴스톱은 <크리스천투데이> 보도대로 미국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을 금하는 법안을 내는 게 추세’로 볼 수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성별·장애 상관없이 쓰는 화장실...성공회대 이어 서울대, 카이스트 설치 발표

성중립 화장실은 성별, 장애, 동반자 유무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입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2020년 11월 20일 <비마이너> 기고문에서 성중립 화장실 구조를 설명했습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성중립 화장실은 개인 가정 화장실이나 비행기 화장실과 유사합니다. 성별을 구분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고 내부에 변기와 세면대가 갖춰진 구조입니다. 성중립 화장실은 이런 구조의 화장실이 단독으로 있거나 혹은 이어진 구조입니다. 공간 구성에 따라 세면대는 공용으로 바깥에 두기도 한다고 합니다.

성중립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등 기존의 남녀로 나뉜 화장실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응답자 수는 전체 조사자 591명 가운데 36%(212명)로 나왔습니다. 성중립 화장실이 있었다면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설치계획이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해 성공회대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로 불리는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했습니다. 변기와 함께 핸드레일과 손잡이, 각도를 조절하는 거울, 접이식 의자와 샤워기, 세면대가 설치돼 성소수자 말고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26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는 학교 발전소로 쓰였던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마쳤고, 카이스트는 단과대학 건물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성중립 화장실' 키워드로 검색되면 나오는 국내 도입 사례들. 구글 검색창 갈무리
'성중립 화장실' 키워드로 검색되면 나오는 국내 도입 사례들. 구글 검색창 갈무리

현재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일본 등의 국가에 도입된 성중립화장실은 2010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계기는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 화장실에서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화장실에서 다른 남학생에게 폭행당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남학생이 화장실로 따라와 폭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15년 백악관 내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됐습니다. 지난 2016년 미국 연방 교육부는 각 학교에 ‘성 정체성’에 따라 교내 화장실과 탈의실을 이용하게 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이 지침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후 폐기됐지만,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2021년 6월에 복원됐습니다. 

 

◈ ‘화장실 금지’하는 미국 일부 주...소송 결론 나지 않아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금지하는 주도 있습니다. <USA TODAY>보도에 따르면, 올해 3월 미국 아칸소 주의회는 트랜스젠더(성전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일치하는 공공 탈의실을 사용하는 것을 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24일에는 아이오와 주지사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학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테네시주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률이 있습니다. 미국 내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휴먼 라이트 캠페인(Human Rights Campaign)’에 따르면,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는 대부분 주에서는 트랜스젠더에 적대적인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에만 175개 이상의 법안이 미국 전역의 주에 제출됐다고 합니다. 

성중립 화장실 사용을 금지한 법안에 대해서는 주별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22일 미국 <CBS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와 테네시의 금지법안에 대해서는 법안 효력을 멈춰달라는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플로리다주 법원은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과 일치하는 화장실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승인했습니다. 아직은 주별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 여부에 대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 범죄율과 연관성 입증은 안 돼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반대하는 근거로는 안전상 위험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남성이 침입해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미국 조지아주의 한 초등학교는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여성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허용했고, 그 결과 5세 여아를 상대로 한 트랜스젠더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고등학교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에서 18세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폭행해 성중립 화장실이 폐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8년 조지아주 사건 관련 보도에 따르면, 조지아주는 트렌스젠더 학생들이 원하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국 교육부는 조지아주의 이런 방침이 피해를 본 5세 소녀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한 것인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는 찾지 못했습니다. 위스콘신 사례에 관한 보도 역시 원문 기사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이 사례들은 ‘독립적인 공간’으로 잠금이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에서 벌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중립 화장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2018년 UCLA 로스쿨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트렌스젠더에게 포용적인 성중립 화장실, 라커룸, 탈의실을 조례로 의무화한 지자체와 의무화하지 않은 지자체의 범죄율을 비교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성중립 화장실 등 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곳과 범죄 사건의 수나 빈도 사이에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성중립) 공중 화장실, 탈의실에서의 사생활 안전 위반에 대한 결과는 매우 드물고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 비율도 낮았다는 내용의 UCLA 로스쿨 논문의 결론. UCLA 로스쿨 논문 갈무리
(성중립) 공중 화장실, 탈의실에서의 사생활 안전 위반에 대한 결과는 매우 드물고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 비율도 낮았다는 내용의 UCLA 로스쿨 논문의 결론. UCLA 로스쿨 논문 갈무리

또한 “(성중립) 화장실과 탈의실에서는 사생활 보호나 안전 위반에 대한 보고는 매우 드물고 일반적으로 강력 범죄를 보고하는 주 전체 비율보다 훨씬 낮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지난해 호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성중립 화장실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학교 실무자들이 학교 화장실을 청소년의 괴롭힘 장소로 인지”하고 “괴롭힘 방지 전략으로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종합하면,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아칸소 ▲아이오와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테네시주 등에서 이용 금지법안이 제정됐습니다. 다만 이에 반발하여 트랜스젠더 학부모 등이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주별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겁니다. 

설치 금지 주장의 배경에는 성중립 화장실 내 범죄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UCLA 로스쿨 연구 결과 성중립 화장실 등 공공시설과 지역의 범죄율은 무관했습니다. 호주의 연구에서는 초등·중학교 실무자들이 성중립 화장실이 성소수자 학생의 괴롭힘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주최한 ‘2020 모두를위한화장실 토론회’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이 국내에 도입되는 데 필요한 과제가 제시됐습니다. 토론회 발제자인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남녀화장실의 분리가 아닌 방식으로 화장실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법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체크리스트로 ‘사람이 보이지 않게 유리가 불투명해야 한다’ 같은 안전조항을 넣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체크리스트를 준수한 선진 화장실 사례로 영국의 공공기관 화장실을 꼽았습니다. 연구소는 영국의 레저센터 병원 공항, 역 등의 ‘모두의 화장실’은 넓은 공간에 만들어졌으면서도, 누구나 성별과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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