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혈액 부족은 적십자가 제약사에 헐값에 팔아넘긴 탓?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5.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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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서 ‘헌혈’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시작은 현재 헌혈의집이 사이비 종교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혈액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였다. 실제로 헌혈의집 생명나눔 단체 1위에 신천지 교회가 이름을 올리거나, 일부 헌혈의집이 신천지 교회와 헌혈 캠페인을 진행한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논란이 이어지자, 한 트위터 이용자는 “한국에서 피가 부족한 이유는 헌혈을 안 해서가 아니라 적십자가 공짜로 받은 피를 기업에 헐값에 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고치지 않을 때까지 지정헌혈만 하고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해당 게시글은 35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다.

“혈액 수급난 원인이 적십자 탓”이라는 해당 SNS 게시글 주장이 사실인지,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 적십자가 피를 제약회사에 팔아넘겨 수혈용 피가 부족하다?

헌혈은 ▲전혈헌혈 ▲성분헌혈로 구분된다. '전혈헌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것을 말하고, '성분헌혈'은 혈장 또는 혈소판 등 혈액의 특정 성분만 채혈하는 방법이다.

 

(출처=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공식 블로그)
(출처=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공식 블로그)

전혈헌혈로 채혈된 혈액은 적혈구, 혈소판, 혈장 등 성분별로 분리·제조되어 외상환자나 각종 암, 백혈병 환자에게 '수혈용'으로 공급된다. 성분헌혈은 ▲혈장성분헌혈 ▲혈소판성분헌혈 ▲혈소판·혈장 성분헌혈로 구분되는데, 이 중 ‘혈장성분’만 의약품 원료인 ‘분획용’으로 공급된다. 의약품 원료 공급을 위해 제약회사에 판매된다는 뜻이다. 

다만, '전혈헌혈'로 채혈된 혈액 중 '혈장'은 예외적으로 분획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혈장의 사용 가능 기간은 1년으로, 적혈구(35일), 혈소판(5일)에 비해 긴 편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급에 여유가 있어, 수혈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양에 한해 분획용으로 사용 가능한 것이다.

 

(출처=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공식 블로그)
(출처=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공식 블로그)

그러나 수혈용에 필요한 혈장을 분획용으로 제약회사에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다. 혈장은 수혈용으로 우선적으로 쓰이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헌혈자는 헌혈 전 ‘전혈헌혈’과 ‘성분헌혈’ 중 원하는 헌혈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전혈헌혈과 성분헌혈은 헌혈에 소요되는 시간과 헌혈 주기 등이 다르기 때문에, 헌혈자는 이러한 요소를 고려해 헌혈 방식을 선택한다. 즉, 자신의 혈액이 ‘수혈용’으로 쓰일지, ‘분획용’으로 쓰일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분획용’ 혈액을 과도하게 팔아넘겨 ‘수혈용’ 혈액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분획용과 수혈용 헌혈은 따로 이루어지며, 헌혈자가 직접 선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혈헌혈을 하더라도 ‘혈장’에 한해 예외적으로 분획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수혈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양으로 한정된다.

 

◆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원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해 손해를 봤다?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현재 적십자는 GC녹십자와 SK플라즈마 등 두 곳의 제약회사에 분획용 혈액을 판매하고 있다. 분획용 혈액의 공급단가가 원가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공급단가는 재료비, 인건비, 관리비로 구성된 원가의 65~77% 수준에 불과하다.

 

김원이 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갈무리
김원이 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갈무리

이는 정치권에서도 여러 번 지적된 내용이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적십자사는 국민의 헌혈을 통한 혈액의 44.6%인 243만 5022ℓ를 의약품 원료를 만들기 위한 분획용 혈액으로 사용했다"며 “이에 따라 적십자는 5년간 477억 4387만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적십자사가 제약사에 공급하는 분획용 혈장의 불합리한 가격이 형성된 것은 원가 개념도 없이 혈장을 공급한 적십자사의 무지와, 민간 제약사의 가격협상 거부로 귀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현행 혈액관리법 제11조(혈액제제의 수가)는 혈액제제를 수혈용으로 공급하는 가격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해 고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분획용 혈액의 가격은 법적 근거가 없어 적십자사와 제약사간 가격협상에 의해 가격이 결정돼 왔다.

 

2020.10.14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보도자료 갈무리
2020.10.14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보도자료 갈무리

그러나 적십자 측은 이를 ‘손해’라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적자를 보면서 제약사에 분획용 혈액을 판매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설정된 원가는 2015년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에서 산출한 이상적인 금액이라 실제 공급단가로 적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가격협상도 쉽지 않다. 제약사가 지속적으로 “혈장분획제제는 보험약가 상한액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약가 인상이 선행되어야만 혈장 가격 인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십자가 제약사의 영업 비밀인 원가나 손익자료 등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국가가 혈액 관리에 개입하는 등 공공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혈액관리법 개정안 제4조의7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혈액관리법 개정안 제4조의7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3조의2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3조의2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를 위해 지난 2021년, 혈액관리법과 시행령이 개정됐다. 개정된 혈액관리법에는 제4조의7(원료혈장 수급 관리 등) 조항이 신설됐는데, 해당 조항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료혈장의 공급 가격 관리 및 배분 등 안정적 수급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정된 시행령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료혈장의 안정적 수급을 위하여 매년 원료혈장의 안정적 수급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조항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혈액원이나 제조업자에게 필요한 자료와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혈액관리법과 시행령 개정안은 올해 6월 2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리하자면, 적십자가 제약회사에 공급하는 분획용 혈액이 원가보다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가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른 이상적인 금액이며, 공급단가는 적십자와 제약사가 여러 요소를 고려해 협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그 차액을 무조건 '손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적십자 측의 주장이다.

협상 과정에서의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갈등을 막고, 혈액 수급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6월부터는 개정된 혈액관리법이 시행된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원료혈장의 표준원가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혈장 가격 등 원료혈장 수급계획을 고시할 예정이다.

 

◆ 10~20대 헌혈가능인구 급감… “혈액 수가 개선 필요”

최근 몇 달간 혈액 보유량이 부족해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병원에서 수혈자를 직접 구해오라고 했다며 관심을 호소하는 글이 SNS 등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내 수혈용 혈액이 부족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적십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혈액 부족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10~20대 헌혈가능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10~20대 헌혈 참여율이 매우 높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0~20대 헌혈자 비율은 54%로, 전체 헌혈자의 절반 이상이다. 이는 캐나다, 프랑스, 일본, 호주, 대만 등 국가보다 1.5~3배 높은 수치다.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자료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문제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라 혈액 수급을 책임지고 있던 10~20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937만 명가량이던 10~20대 헌혈가능인구는 지난해 826만 명으로 급감했다. 10년 사이 100만 명 넘게 줄어든 것이다. 고령화로 수혈이 필요한 50세 인구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코로나19 등과 같은 예상치 못한 감염병이 확산하면서, 헌혈문화 확산과 혈액 수급에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적십자 관계자는 <뉴스톱>에 “안정적인 수혈용 혈액 확보를 위해서는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절실하다”며, “나아가 일본이나 미국 등 OECD 국가의 4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 혈액 수가의 개선 및 현실화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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