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아줌마'에게도 구구절절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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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아줌마'에게도 구구절절 사연이 있다
  • 홍상현
  • 승인 2020.12.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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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미세스 노이지> 아마노 치히로 감독
「미세스 노이지」는 이웃 간의 갈등이 법정다툼으로 번졌던 실화를 다룬 코미디영화지만 “각기 다른 관점의 회상을 뒤섞어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의심케 만드는” 높은 극적 완성도를 선보인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미세스 노이지」는 이웃 간의 갈등이 법정다툼으로 번졌던 실화를 다룬 코미디영화지만 “각기 다른 관점의 회상을 뒤섞어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의심케 만드는” 높은 극적 완성도를 선보인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팩트(fact)를 나열해보자.

새벽 6시, 한 중년 주부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턴다. 이유가 뭐였든 소리가 때마침 잠을 청하던 이들에게 방해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순간 신경이 곤두선 이웃 부부가 등장. 아니, 평소와 다름없는 심리상태였더라도 단잠을 깨우는 소음이 유쾌했을 리는 없다. 하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간신히 눈을 붙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테다. 그들이 어떤 어조로 운을 떼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내용은 대략 ‘지금 당장 그 행위를 멈추어 달라’는 것이었으리라.

문제는 이 순간 이후 주부가 보여준 반응이다.

오디오기기로 음악을 24시간, 거의 최대음량으로 흘려보냈다. 무려 2년 6개월 동안. 더러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가하면 기행을 취재하러 온 방송기자에게 고함까지 질렀다. 이웃 부부는 불면ㆍ어지럼증 등을 호소했으며 주민들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들썩였다. 급기야 치안당국은 주부를 상해혐의로 체포하기에 이른다. 3심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주부는 징역 1년 8개월에 처해졌다.

20대 초반에 만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밀양」,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등은 아마노 감독의 영화적 ‘원점’이었다. 최근 들어 다시 봐도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20대 초반에 만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밀양」,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등은 아마노 감독의 영화적 ‘원점’이었다. 최근 들어 다시 봐도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이상은 나라 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명 “나라 소음 상해 사건”의 내용. 법에 의한 처벌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입증하듯 주부의 행동이 명백한 폭력에 해당했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주부에게 가해진 린치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이웃 부부는 무단으로 주부의 영상을 배포했는데, ‘거친 성격의 중년 여성’ 이미지에 맞아떨어지는 얼굴이 플래시파일 등 각종 ‘짤’로 가공되어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TV드라마에 패러디 캐릭터가 등장할 정도였다. 저지른 잘못과 상관없이 보호받아야할 프라이버시나, 문제를 일으킬 당시 배우자와 아이가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며, 이미 딸 둘을 잃었던 주부의 불행한 개인사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창작자의 시선에 따라 섬뜩한 범죄영화나 엽기 판타지영화로 가공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실화는, 두 ‘너드(nerd)’의 상상을 그린 단편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이래, 7년 만에 다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82년생 김지영, 아니 아마노 치히로의 풍자적 코미디 <미세스 노이지>로 다시 태어났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크리에이터로 주로 여성, 혹은 LGBT인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관계를 다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온 아마노 감독은 <미세스 노이지>를 통해 특이한 소재의 희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저술가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가 언급한 <라쇼몽>의 미덕, 즉 “각기 다른 관점의 회상을 뒤섞어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의심케 만드는” 극적재미를 선사한다.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목적으로 코미디영화를 만들었다는 그를 만났다.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여성, 혹은 LGBT인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관계를 그리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여성, 혹은 LGBT인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관계를 그리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고백에 대한 두 소년의 상상을 다룬 단편영화 <피가로의 고백>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지 7년 만에 장편상업영화 <미세스 노이지>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셨습니다.

아마노 치히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부천에 가서 직접 관객 여러분의 반응을 들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너무 안타깝네요.

 

홍상현

부천국제영화제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나요?

아마노 치히로

물론이죠. 많은 감독의 우수한 작품들을 초청해주셔서 동료들 사이에서도 대단히 유명한 영화제예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홍상현

평소 한국영화를 무척 즐겨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노 치히로

그럼요.

한국영화는 시나리오, 연출, 기술 등 모든 부분에서 높은 퀄리티가 담보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인재와 기술이 제대로 육성ㆍ계승되고 있다는 점이 특히 훌륭하고요. 관객의 눈높이를 지상가치로 하는 엔터테인먼트성은 물론 내러티브도 탄탄하지요. 그밖에 작가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도 많잖아요.

얼마 전에도 <벌새>를 봤는데 큰 스토리의 흐름에서부터 각 신과 컷의 묘사까지 대단히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러니 해외에서도 히트할 수밖에 없죠.

일방적인 흑백논리로 재단할수록 도리어 악화되어버리는 인간사회의 갈등. 「미세스 노이지」가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 자아내는 ‘슬픔’이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일방적인 흑백논리로 재단할수록 도리어 악화되어버리는 인간사회의 갈등. 「미세스 노이지」가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 자아내는 ‘슬픔’이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좋아하시는 한국영화 작품이나 감독, 배우 등이 있으신지요.

아마노 치히로

학창시절에는 거의 영화와 무관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20대 초반에 만난 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밀양>,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같은 작품들이었어요. 저의 원점이죠. 요즘 들어 다시 봐도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홍상현

감독님의 경력에서 눈에 띠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치현 출신인데 노벨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지역의 명문대학의 법학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셨지요. 세간에서 말하는“전형적인 범생”의 행보였는데, 갑자기 영화감독이 되기로 하고 가시밭길에 몸을 던지셨어요.

아마노 치히로

학창시절이 끝나갈 때쯤 영화의 재미를 알게 되고 신규졸업자로 취업을 했지만, 몇 년 뒤 결국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과정으로 영화전문학교에 다니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동료들과 졸업작품을 만들던 재미를 잊지 못하고 끝내 길을 잃고(?) 말았죠.

어릴 적부터 공작을 하거나 그림책을 그리는 등 뭔가를 ‘만드는’일을 가장 좋아하긴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뭔가를 ‘만드는’일에 종사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홍상현

다음은 필모그래피에서 보이는 두 가지 특징입니다. 우선 하나, 주로 여성, 혹은 LGBT의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관계를 그리면서 궁극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실제로 제 지인인 평론가는 감독에 대해 “여성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있다”고도 하던데요.

아마노 치히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건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사건, 혹은 그 자체보다는 사건의 주변에서 농락당하거나 분주해지는 인간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사람이 뭔가에 기뻐하거나, 절망하거나, 원망하거나, 혹은 구원받거나 하면서 필사적으로 분투하고 있을 삶을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그려가고 싶어요.

인간이나 사회를 그릴 때는 시나리오에 있어서든 연출에 있어서든 역시 작가인 자기 자신의 시점이 기초가 됩니다. 그것이 ‘여성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당연히 있겠지요. 다만, 저 자신의 느낌상 제 내러티브에서 여성과 남성을 대비시킨다면 그 비율은 4대 6정도 될 겁니다. (웃음)

「미세스 노이지」의 곳곳에는 그 자신 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경력이냐 아이냐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아마노 치히로 감독의 생생한 실제경험이 배어있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미세스 노이지」의 곳곳에는 그 자신 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경력이냐 아이냐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아마노 치히로 감독의 생생한 실제경험이 배어있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 특징은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재능입니다. 앞서 언급한 첫 단편영화 <피가로의 고백>에서 충분히 증명되었고, <미세스 노이지>에 와서 완전히 개화한 느낌인데요.

아마노 치히로

그럴 리가요. 저는 코미디에 재능이 없어요! (웃음)

또 실은 코미디를 찍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습니다. 코미디, 즉, 사람을 웃기는 장르는 모든 영화 장르 중에서도 무척 고도의 센스를 갖춘 난이도 높은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분야죠.

다만 제가 평소 느껴오던 건데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재미있고 누군가를 웃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인간적이고, 풍요로우며, 유쾌하니까요. 이 부분을 그려내는 일을 제 필생의 사업으로 하고 싶습니다. 제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께서 웃어주신다면 이런 일이 아주 잘 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요.

 

홍상현

다음은 <미세스 노이지>를 기획한 배경에 관해서인데요.

영화의 모티브는 2002년 11월부터 실제로 일어나 2005년 4월 용의자가 체포되었던 실제 사건입니다. 이후 피고인 여성은 중형을 언도받았는데,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어 인터넷에 온갖 베리에이션이 돌아다니는 등,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상의 인권침해를 당했습니다.

아마노 치히로

그 사건에 대해 제가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점은, 당사자를 알지도 못하는 제3자가 당사자를 멋대로 악인으로 만들거나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만들면서 떠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건이 매스컴에 다루어졌을 당시 피고인 여성은 ‘소음 아줌마’로 명명되었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로 매도되었죠. 하지만 얼마 후 인터넷에서 실은 그 아줌마가 이웃들 간에 일어난 트러블의 피해자였다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정의의 히로인이 되어버리더라고요.

결국 다툼의 진실이란 누가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언론 등이 멋대로 흑백을 가리면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버리더라는 거죠. 이런 종류의 사건은 인간사회에서 무척 흔한 일이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른 분쟁, 혹은 전쟁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슬픔’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고요.

「미세스 노이지」의 타이틀 롤을 연기한 오다카 요코 배우. ‘빌런’과 ‘사연 많은 선량한 이웃’사이를 넘나드는 캐릭터로 불린 그녀의 신들린 연기력만으로도 「미세스 노이지」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미세스 노이지」의 타이틀 롤을 연기한 오타카 요코 배우. ‘빌런’과 ‘사연 많은 선량한 이웃’ 사이를 넘나드는 캐릭터로 불린 그녀의 신들린 연기력만으로도 「미세스 노이지」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자, 이제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앞의 필모그래피와도 이어지는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감독님의 작품 중에는 주인공이 본인을 모델로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사례가 많습니다. <미세스 노이지>의 경우도 그런데요. 주인공은 육아와 사회활동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감독님도 2015년부터 엄마가 되셨고요. 다만 관건은 어디로부터 영화적 소재를 취하느냐는 것일 텐데요. 자신의 일상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맞추셨나요.

아마노 치히로

부부의 관계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저 한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체적인 차원에서 본 가정 본연의 자세, 여성의 입장에 대한 문제 등과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일본에는 아직도 ‘가사ㆍ육아는 아내의 몫’이라는 가치관이 뿌리 깊게 남아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여성, 특히 아이를 가진 여성의 대부분이 경력이나 아이냐를 놓고 딜레마에 빠지게 되죠. 당연히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요. 제 남편은 <미세스 노이지>의 주인공 남편보다는 나은데(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이후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어요. 이런 사회적 현실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홍상현

저도 포함되는 이야기입니다만, <미세스 노이지>를 본 관객들은 모두 하나의 작품 안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아마노 치히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이 <미세스 노이지>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거든요.

일상생활에서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을 목격했을 때, 사람에 따라 그 인상이나 수용방법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도 ‘사람 좋아 보이네’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쓴웃음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재미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이도 있겠죠. 모든 것은 수용자의 주관에 따라 결정되니까요.

‘이런 현상을 영상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사, 연기, 촬영기법 등에 대해 스태프ㆍ캐스트 등과 의논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주인공 ‘요시오카’로 분한 시노하라 유키코 배우의 강점으로“‘기쁘다’ 혹은 ‘슬프다’ 처럼 라벨링 된 감정표현이 아니라 마음의 ‘기미’를 절묘하게 연기”하는 섬세함을 꼽았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주인공 ‘요시오카’로 분한 시노하라 유키코 배우의 강점으로 “‘기쁘다’ 혹은 ‘슬프다’ 처럼 라벨링 된 감정표현이 아니라 마음의 ‘기미’를 절묘하게 연기”하는 섬세함을 꼽았다.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에서도 번역출판 된 『82년생 김지영』도 작가가 감독과 같은 나이로 감독과 비슷한 일을 했고, 공통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혹시 읽어보셨나요?

아마노 치히로

네. 물론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미덕은 그간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들도 ‘원래 그런 것’이라면서 지나쳐온 사회구조의 문제점들을 ‘피해자’의 존재와 더불어 두드러지게 보여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하나의 사회현상까지 나타났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주지요. 저 역시 깊이 공감하면서 눈물을 흘렸고요.

인간 이외의 동물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더라도 암컷과 수컷이 완전히 평등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 사례는 많지 않죠. 사마귀는 암컷이 수컷을 먹고, 일벌은 모두 암컷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성별 간에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자연 상태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불평등을 개선해가는 국면에 접어들어 있는 거지요. (웃음)

 

홍상현

7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도모구이>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2017년 한국 개봉작인 <행복목욕탕>에서도 모습을 보인 시노하라 유키코 배우가 이번에는 감독의 페르소나를 훌륭하게 연기해고 있습니다. 코미디 연기에 이렇게까지 재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요.

아마도 치히로

우선, 감독인 저의 페르소나라는 점과 관련해서 정정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 주인공에게는 제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만, 또한 전혀 다른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웃음)

시노하라 배우는 저와 원래부터 아는 사이고 연배도 비슷한데 제가 독립영화를 막 찍기 시작했을 무렵, 이미 영화계 구석구석에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꼭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서라도 워낙 훌륭한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 꼭 한 번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주어진 거죠.

그는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섬세하고 개성적인 배우에요. 이를테면 ‘기쁘다’ 혹은 ‘슬프다’처럼 라벨링(labeling) 된 감정표현이 아니라 마음의 ‘기미’를 절묘하게 연기합니다. 바로 이 점이 그의 가장 큰 매력이며,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힘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나라 소음 상해 사건”의 주부는 문제를 일으킬 당시 배우자와 아이가 병원에 입원 중이며, 딸 둘을 잃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중이 문제 삼은 것은 거칠어 보이는 그의 외모뿐.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묻는다. “당신은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나라 소음 상해 사건”의 주부는 문제를 일으킬 당시 배우자와 아이가 병원에 입원 중이며, 딸 둘을 잃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중이 문제 삼은 것은 거칠어 보이는 그의 외모뿐. 아마노 치히로 감독은 묻는다. “당신은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하지만 <미세스 노이지>의 타이틀 롤은 따로 있습니다. 미세스 노이지, 즉, 와카다 역의 오타카 요코 배우입니다. 어떻게 이런 보물 같은 배우를 찾아내셨는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는데요.

아마노 치히로

작품 구상할 무렵 배우워크숍을 주최하고 계시던 분께 말씀을 드렸었는데 “주인공 역에 ‘딱’인 배우가 있다”면서 오다카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후 캐스팅을 위한 배우 워크숍 오디션을 진행했더니 기쁘게도 바로 그 오다카 배우가 참가해주셨습니다.

 

홍상현

막상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눠보니 평소의 오다카 배우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시더라고요. ‘미세스 노이지’라는 걸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웃음)

아마노 치히로

제가 캐스팅을 하면서 의도한 바가 정확히 반영된 말씀을 해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요. (웃음)

평소의 오다카 배우는 무척 상냥하고, ‘양(陽)’의 인상이 아주 강한 여성이죠. 미세스 노이지로 분할 때도 이 부분이 살짝 살짝 눈에 보일 정도로.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숨기느냐가 큰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다카 배우와 충분히 대화하는 한편, 역할창조를 위해 남편으로 분한 배우를 불러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장면 이전에 일어난 사건을 설정해서 연습을 진행해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사람의 아들이 죽는 장면 등이 있었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녀를 낳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오다카 배우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역에 몰입하기 위해 아기용품 등을 마련하는 등 별도의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주었습니다.

특유의 자연스럽고도 안정감 있는 연기로 시선을 모은 나가오 타쿠마 배우. 그는 최근 일본의 인디영화 감독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배우의 한사람이다. 실제로 아마노 치히로 감독도 애초부터 그의 출연을 상정하고 「미세스 노이지」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특유의 자연스럽고도 안정감 있는 연기로 시선을 모은 나가오 타쿠마 배우. 그는 최근 일본의 인디영화 감독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배우의 한사람이다. 실제로 아마노 치히로 감독도 애초부터 그의 출연을 상정하고 「미세스 노이지」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C)2020 Mrs.Noisy Film Partners

홍상현

그리고 또 한 사람, <미세스 노이지>에 드라마로서의 밸런스를 유지시켜주는 인물로서 나가오 타쿠마 배우가 눈에 띱니다. 그의 캐릭터가 전체의 서사에서 나가오 배우의 캐릭터를 어떻게 위치시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마노 치히로

나가오 배우를 통해 그려보고자 했던 건 ‘우리 사회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미세스 노이지>에서 그가 보여주는 언동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추구하는 올바름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요. 이는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부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부부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장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며, 옳고 그름 또한 달라진다’는 거지요. 그런 맥락에서 주인공의 눈높이에서 보면 일방적으로 자신을 두둔하지는 않는 남편이 조금 심하게 비쳐질 수 있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홍상현

그렇군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관찰자. 비단 그런 자리매김 때문이 아니더라도 보면 단순한 주변인물로 끝났을 지도 모르는 캐릭터로 분한 연기력이 무척 눈에 띄던데요.

아마노 치히로

아마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아예 주인공의 남편 역할로 그 배우를 상정하고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나가오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단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감과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 아닐까 해요. 따라서 디렉션을 할 때도 기교를 부려 다른 인물을 연기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홍상현

<미세스 노이지>는 감독님의 상업영화 연출자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포부를 가지고 계신지요.

아마노 치히로

<미세스 노이지>를 연출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영화작가로서 어떤 주제를 그려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어서였습니다.

최근의 제 모습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남들로부터 주어지는 주제나 타이틀을 최대한 능숙하게 다루는 것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미세스 노이지>를 통해 비로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누군가가 원하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 만들고 싶은 작품에 온 힘들 다하는 자세 말이죠.

제가 요즈음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는, 사회의 ‘흑과 백 사이’ 다름 아닌 ‘회색’의 지점에 서있는 사건과 그 영향에 관한 것들입니다. 세상사의 수많은 것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에 영화를 통해 그려볼 수 있는 모티브는 무척이나 다양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미세스 노이즈>를 통해 배운 것만큼 반성할 지점도 많으니까 (웃음) 이를 양식으로 삼아 차기작으로 다시 부천에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2월 4일 극장에서 개봉한 「미세스 노이지」는 현재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SNS에서의 비난여론과 미디어 린치의 문제’를 제기한 걸작”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 레드카펫행사에서. (C)2019 TIFF
12월 4일 극장에서 개봉한 「미세스 노이지」는 현재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SNS에서의 비난여론과 미디어 린치의 문제’를 제기한 걸작”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 레드카펫행사에서. (C)2019 TIFF

“<미세스 노이지>는 공동주택의 문제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의 구조’라는,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를 그리는 작품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존재할망정 누군가와 싸워본 경험이 없는 현대인은 없죠. 해서, 누구나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두려움, 그리고 여기 뒤섞인 익살스러움을 만끽하는 경험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에도 제가 살고 있는 곳만큼이나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많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코로나 19 사태가 잦아든 뒤 꼭, 다시 한 번 한국 관객 여러분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12월 4일 극장에서 개봉한 <미세스 노이지는> 현재 전국 28개 스크린에서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SNS에서의 비난여론과 미디어 린치의 문제’를 제기한 걸작”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행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리지널시나리오를 동명소설로까지 펴낸 아마노 감독의 왕성한 창작력을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부디 국내 관객에게도 주어지기를. 해서, 영화제 초청을 계기로 계획되었다 좌절된 아마노 가족의 한국여행도 꼭 현실화 될 수 있기를.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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