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SNS ‘혐한 장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필터 버블’로 넷우익 취향에 맞는 혐한 콘텐츠 지속 공급
자정 작용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속 과당 경쟁 양상

  • 기사입력 2022.06.14 09:38
  • 최종수정 2022.06.14 12:29
  • 기자명 윤재언

미디어가 유저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늘 첨예한 쟁점이 돼 왔다. 그 자체가 상업적, 정치적 목적과 연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레거시 미디어, 즉 신문, 방송이 주로 문제의 중심이 됐다면, 최근엔 포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SNS)의 역할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특정 정보를 유저에게 보여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역시 결코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수만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필자는 한국 관련해 주로 페이스북과 포털 사이트, 각종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는 한편, 일본 정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동일한 소셜 미디어에서도 사용 언어와 기기(컴퓨터, 스마트폰)에 따라 알고리즘이 상이하게 작용해 완전히 다른 내용이 표시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에서 한국에 관심 있는 유저’에게 어떤 기사나 링크가 나타나는지를 중심으로, 일본 미디어상의 ‘혐한 비즈니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혐한 부추기는 일본 내 소셜 미디어의 ‘필터 버블’

미국 진보정치단체(무브온, MoveOn)를 이끈 엘리 프레이저는 저서 <필터 버블(The Filter Bubble)>에서 검색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개인의 정보습득환경을 제한하는지 논한다. 필터 버블의 논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구글은 특정 사안에 관심이 높은 사람에게 과거 성향을 바탕으로 비슷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공하고, 다른 정보는 추천하지 않는다. 창의성을 촉진시키는 온라인에서의 우연한 만남(serendipity)은 제한된다. 그럼으로써 유저가 가진 평소의 편향은 더 강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이란 당초의 예상은 필터 버블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와 관련해 필터 버블은 평소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착각을 낳는다. 문제는 필터 버블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가 단순히 정치적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적, 민족적 편견'까지 부추길 때 나타난다. 일본의 소셜 미디어는 현재 그 장이 되고 있다. 평소 한국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 유사한 정보를 반복,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필자는 페이스북 상에서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표시된 콘텐츠를 보고 있지만 특별히 차별적인 내용은 열람하고 있지 않다. ‘좋아요’를 누르는 일도 없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스마트폰 페이스북 앱 뉴스 피드에 아래 사진과 같은 콘텐츠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스마트폰은 언어 설정이 일본어로 돼 있다. 맨 위에 적힌 일본어는 ‘추천(おすすめ)’이라는 의미다.

 

페이스북 추천에 뜬 콘텐츠1
페이스북 추천에 뜬 콘텐츠1
'K국' 기사를 내건 예능뉴스트렌드 페이지
'K국' 기사를 내건 예능뉴스트렌드 페이지
혐한 콘텐츠 장사로 유명한 셰어 뉴스 재팬
혐한 콘텐츠 장사로 유명한 셰어 뉴스 재팬

맨 위 사진의 욱일기 표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극우 유저들을 만족시키는 내용이 가득한 페이지다. 해당 기사(?)는 우익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책조사위원장이 “수상이 돼도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제목을 내걸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예능 트렌드 뉴스(芸能トレンドニュース)’라는 페이지지만 ‘세계가 K국 야구를 추방하려고 움직이다’, ‘K국 대표의 있을 수 없는 야구 플레이에 비난의 물결’, 대략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K국(Kankoku의 줄임말)은 최근 유행하는 한국 비하 표현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 사진은 혐오 뉴스 근원으로 유명한 ‘셰어 뉴스 재팬’이라는 곳이다. 특히 트위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곳으로, 넷 우익들이 빈번히 리트윗하는 뉴스 사이트 가운데 하나다. 기사 제목은 ‘한국인이 신뢰하는 나라 톱은 미국…워스트 1, 2위는 중국과 일본’이다. 코멘트란은 볼 것도 없이 “우린 한국이 더 싫다”와 같은 일본 우익 성향 유저들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혐한 콘텐츠로 조회수를 늘리는 이들 페이지, 사이트는 완전한 가짜, 조작 뉴스를 전하지는 않는다. 대신 한국 이미지에 부정적이거나 일본 우익 유저들을 자극하는 뉴스를 재편집해 내보낸다. 아래 기사는 마른 오징어를 발로 밟았다는 한국 뉴스를 일본 유저들 입맛에 맞춰 다시 내보낸 혐한 비즈니스 페이지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중국 김치 제조 공정이라며 ‘알몸 배추’기사가 급속도로 퍼진 바 있는데, 이의 일본 버전이라고 봐도 될 듯싶다. 

 

마른 오징어 뉴스
마른 오징어 뉴스

한국의 어뷰징 매체들이 성이나 범죄 등 자극적인 내용을 주로 미끼로 삼는 데 비해(혐중 내용이 없다고 하긴 힘드나), 일본 매체들은 혐한을 주 상업 수단으로 삼는 셈이다. 일부 일본 야당 정치가들을 조롱하는 내용도 없지는 않지만 역시나 클릭을 늘리는 주된 수단은 한국이다. 

 

과당 경쟁 심화되는 미디어 업계 혐한 비즈니스 시장 

이런 마이너 온라인 미디어들 외에 주간지나 석간지 등 기존 미디어의 혐한 콘텐츠 경쟁도 심화된 상황이다. 최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산케이 그룹 타블로이드지 ‘석간 후지’다. 석간 후지는 산케이의 ‘매운맛’이라고 보면 되겠다. 필자는 트위터상에서 석간 후지를 팔로우하고 있고 적지 않게 체크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상위 화면에 자주 뜬다. 

최근 석간 후지 트위터 계정은 과도할 정도로 자주 정치적이고 차별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수준이다. 석간 후지가 올리는 트윗을 우익 유저들이 리트윗하고, 석간 후지는 주요 우익 유저들의 트윗을 리트윗한다. 이렇게 특정 메시지가 원을 그리며 소셜미디어 상에 퍼져 나간다. 아래 트위터 계정은 한국이 과거 동해에 산업폐기물을 버렸다는 내용의 ‘악한론(惡韓論)’ 연재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코멘트나 리트윗은 넷우익 유저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석간 후지의 악한론
석간 후지의 악한론

혐한 비즈니스가 돈줄이 되면서 정작 ‘극우 매체’의 대명사로 알려진 산케이신문은 최근 경영난에 빠져 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다른 신문사와 다르게 대부분의 기사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는 정책을 펴오기도 했는데, 그동안 그럭저럭 경영을 이어오다 2019년 적자를 기록했다. 51세 이상 사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이 때문에 채용 인원수는 역대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진 2명에 그쳤다. 2018년에 40명, 2017년에 54명을 뽑은 데 비하면 거의 형식적으로만 채용한 수준이다. 산케이 외에 더 자극적으로 혐한, 극우적 내용을 전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나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로 신문 광고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여전히 실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혐한 시장의 ‘과당경쟁’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미디어의 상업적 유인과 정치적 사상이 뒤섞인 가운데 일본 넷우익들은 혐한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신들만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이들이 ‘어둠의 한국 스토커’라 불리는 이유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정치적 고관여층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아베의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에 ‘좋아요’ 표시를 하고, 자민당 내 우익세력에게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문한다. 넷우익의 일본판 팬덤 정치다. 일본 야당이 대적할 만한 세력을 만들지 않는 한, 아마도 이들 넷우익의 한국 관심과 클릭수와 광고를 노리는 미디어의 공생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재언   sharply2u@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히토츠바시대 강사, 전 신문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자일을 뒤로 한 채 2015년 훌쩍 바다를 건넘. 2021년 히토츠바시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뒤 연구자의 길에 접어듦. 전공은 국제관계(국제정치경제)지만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정치 / 경제 / 사회(특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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