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학부모·교사·유치원까지...모두가 '만 5세 입학' 반대한 이유

집회현장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직접 들어보니

  • 기사입력 2022.08.08 12:20
  • 최종수정 2022.08.08 12:37
  • 기자명 이채리 기자

교육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조기 입학 추진이 졸속 논란으로 번지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일 정부청사에서 학부모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틀 뒤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겠으나 "당장 폐기할 뜻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 장차관의 엇박자 대응으로 논란은 재점화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등으로 구성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는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릴레이 집회를 이어갔다. <뉴스톱>은 집회 마지막 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확인했다. 

집회2
만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가 만5세 조기입학 정책 취소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촬영 이채리

◈ 소통? "간담회는 형식적인 장면에 불과" 

박 장관은 지난 2일 학부모 단체 간담회에서 눈 시울이 붉혀진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의 손을 재차 잡아당겨 다독이려 했고, 정 대표는 "제가 위로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라며 뿌리쳤다. 이날 정 대표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학생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뉴스톱>은 현장에서 정 대표를 만나 간담회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정 대표는 "간담회를 통해 부모를 위로하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주는 장관이 되는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산적해 있는 문제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체 의견 수렴 없는 발표로 부모들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서 간담회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박 장관에 대해 "카메라가 없을 때 긴밀하게 조금 더 듣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수많은 기자님들 앞에서 그냥 들으려는 제스처만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소통을 강조하고 좋은 제안을 해달라는 박 장관의 발언이 있었지만 폐기 시점을 두고서 장관과 차관의 발언은 교묘하게 어긋났다. 결국 간담회는 형식적인 자리로 끝난 셈이다. 

학부모 단체 대표가 시위 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가 용산 전쟁기념과 앞에서 만5세 취학 즉각 철회 피켓을 들고 있다. 촬영: 이채리

◈ 높아진 지적 능력? 유치원 교사 "발달 속도 달라"  

만 5세 입학 지지자들은 초등학교 연령 하향을 통해 사회 진출 시기를 1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전에 비해 높아진 아이들의 지적 능력과 교육 개선된 인프라를 근거로 들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5~6살 때의 학습 격차는 물론 훗날 대학입시, 취업 경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의무교육에 해당하지 않는 유치원을 염두에 둔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가정별 교육에 대한 관심과 유치원 진학 여부 등에 따라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교육계의 입장은 냉담하다. 충북에서 올라온 20대 유치원 교사는 "자신은 7세 유아반을 담당하고 있다"며 "유아들을 직접 가르쳐 보면 안다. 발달 속도가 빠른 아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느린 아이들도 있다"고 반박했다. 3~5세 유아를 위한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맞춰 놀이 위주로 짜여진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사렛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학교에서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준비없이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 자신이 속한 유아특수교육과 내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우세한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유치원 교사들의 고용불안 문제, 국공립 및 사립 어린이집, 유치원의 경영상의 어려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대선때 윤석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가 만 5세 입학이 대선공약이었다면 윤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촬영: 이채리
집회 참여자들이 만 5세 초등 취학 정책 취소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촬영: 이채리

◈ 초등학생 "초등학교 가면 놀 시간도 없다...동생들 억울할 것" 

초등학생의 입장은 어떨까. 허채이 용담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뉴스에서 연령 하향 소식을 접했다"며 "만약 7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간다면 학교에는 뾰족하고 딱딱한 물건들이 많아서 위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발단 단계를 고려해 조성된 교실 형태와 시설 환경이 7세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어 동년배인 정세인 학생은 "초등학교에 가면 더 바빠져 놀 시간도 없다"며 "초등학교에 빨리 오는 동생들은 많이 억울하고 속상할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갑자기 1학년이 되면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학교에 같이 다녀야 하는데 '야'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언니' '오빠'라고 부르기도 좀 그런 것 같다"며 7살 동생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초등학생들이 만5세 조기입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인(초등 4학년), 허채이(초등 4학년), 허탁(초등 6학년) 어린이. 촬영: 이채리
초등학생들이 만5세 조기입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인(초등 4학년), 허채이(초등 4학년), 허탁(초등 6학년) 어린이. 촬영: 이채리

◈ 정책 폐기 시사? "의견 수렴 없이 모든 게 결정된 듯한 워딩이 문제"

유윤식 교사노조연맹 정책위원장은 교육계 반발에 대해 "연령 하향 정책은 이전 정부에서도 입안했다가 무산된 정책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책을 추진해 유치원 및 초등 교사, 학부모들의 혼란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만 5세 입학은 윤 대통령의 공약도 아니고 교육부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를 해 추진해온 정책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집회에 참여한 30대 초등학교 교사는 "정책을 두고서 원칙과 의견 수렴 없이 계속 말이 바뀌는 것에 교사들은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 추진에 앞서 교육계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해명과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거센 비판에 정책 폐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박 장관이 부총리로서 경험이 부족해서, 아마추어라 그럴 수도 있는데 이런 정책 같은 카드를 꺼낼 때는 상당히 신중해야 하고, 논의 과정에 있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이해당사자와의 대화를 하거나 적어도 학부모들만이라도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려고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초반에 모두 결정된 것을 마치 바로 시행할 것 같은 워딩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육정책을 주관하는 수장으로서의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다. 


최근 교육부는 만 5세 입학 논란에 이어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방침'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예고 없이 외고 폐지 방침을 불쑥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검토와 의견 수렴 없이 결과만을 보여주려 한 태도는 정책 번복으로 이어졌다.

현재 박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의 행방을 감춘 상태다. 지난 4일 기자단을 상대로 한 브리핑 이후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급하게 빠져나갔고, 예정된 외부 일정은 모두 취소됐다. 박 장관은 후보 시절 논문 표절, 음주운전, 자녀 불법 입시 컨설팅 의혹, 조교 갑질 등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8일에는 자진사퇴론이 불거졌다. 만 5세 입학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은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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