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사교육 지출 26조원 '사돌봄'이 문제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0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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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사교육 대책의 총체적 실패
윤석열 공약 '초등 전일제 교육' 시범운영

딸아이가 3학년이 됐습니다. 큰일입니다. 돌봄교실이 막혔습니다. 학교 돌봄교실은 2학년까지만 받아주기 때문입니다. 3학년은 알아서 돌봄이죠. 저희는 부부가 모두 직장에 다닙니다. 조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에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는 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3학년 어린이를 혼자 두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뉴스톱이 알아봤습니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왜 힘들게 학원을 보내니?

2학년 때 딸아이는 정규수업+돌봄교실+태권도장+피아노학원 코스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러면 얼추 퇴근 시간과 아이의 하원 시간이 맞아 떨어집니다.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는 거죠. 태권도장셔틀 버스가 학교 앞에서 아이를 태워가기 때문에 걱정도 덜 수 있습니다.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같은 건물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갑니다. 다행히 딸 아이는 태권도도, 피아노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6시인데요.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는 저는 아침 일찍 출근해 오후에도 일찍 퇴근합니다. 퇴근길에 아이 학원에 들러 함께 퇴근하는 거죠. 이런 모습을 보고 제 어머님이자 아이의 할머님은 “왜 애 힘들게 학원을 두개나 보내냐. 너무 밖에 오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손녀의 건강을 염려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모를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일과표를 짜지 않으면 아이 돌봐주실 분을 고용하지 않는 한 돌봄 공백이 발생합니다.

사교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보육’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 학년이 올라가면서 징검다리 하나가 빠져버린 겁니다. 그만큼 공백이 생긴 거죠. 다행히 방과 후 교실이 있어서 몇 시간씩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서실이나, 운동장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발생합니다.

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사교육비 26조원… SOC 국가예산 25조원

교육부는 지난 7일 2022년 사교육비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2021년 대비 10.8% 늘었습니다. 사교육 참여율은 78.3%로 전년 대비 2.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초중고 학생 10명 중 8명 정도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뜻이죠.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1인당 내는 비용은 52.4만원이었습니다. 2021년보다 7.9% 올랐습니다. 전체 사교육비 26조원 가운데 초등학생 11.9조원, 중학생 7.1조원, 고등학생 7조원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사교육비 지출 총액을 살펴보면 대체로 20조원 안팎에서 횡보 흐름을 나타내다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잠시 위축된 듯 보이다가 2021년 23.4조원, 지난해 26조원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수능에서 EBS 출제 비중을 높이고, 방과 후 학교를 추진하는 등 입시 관련 사교육 비용 줄이기 대책에 골몰했습니다. 그러나 학생 수는 줄어들어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정책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방과후 학교 참여율은 2007년 38.2%였는데요. 2013년 60.2%까지 높아졌다가 점차 하락해서 2019년 48.4%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9.5%까지 하락했죠. 이때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고 비대면 수업하는 학교도 많았으니까요. 2021년에는 28.9%, 2022년엔 36.2%로 회복하는 추세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고등학생들의 방과후 학교 참여율인데요. 2010년에는 79%로 최고점을 찍었는데 2019년에는 47.7%까지 떨어집니다. 2020년에는 12.0%로 하락했구요. 지난해에는 30.6%에 그쳤습니다. EBS교육 참여율은 고교생 기준 2007년 41%였고 이후 대체로 40% 초중반대를 기록했는데요. 2016년 이후 30%대로 떨어져 지난해는 30.5%에 그쳤습니다. 고교생 10명 중 3명만 EBS교육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동안 내놨던 사교육비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겁니다.

올해 우리나라 지출예산 규모가 638조원입니다. 사회간접자본이라고 하죠. 도로 깔고 다리 놓고 이런 것들요. 여기에 배정된 예산이 25조원입니다.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 예산 규모가 딱 26조원이네요. 대단한 금액입니다. 저출생, 자살률과 함께 현재 상태의 사교육 대책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출처: 2022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통계청
출처: 2022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통계청

 

◈통계로 드러나는 사보육 실태

사교육비 지출액을 학교급(초중고) 별로 나눠보면 초등학생의 사교육비가 가장 많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들의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일단 초등학생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이니까 학생수가 더 많습니다. 중고생은 3학년까지 밖에 없으니까요.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따져보면 초등학생은 37.2만원, 중학생 43.7만원, 고등학생 42.2만원입니다. 인 평균으로 따지면 중학생이 가장 많습니다.

총액으로 따져 초등생들의 사교육비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돌봄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교육 수강 목적을 따져봅니다. 초등생들은 일반교과에서 보육, 불안심리, 친구사귀기 등으로 응답한 비율이 18%였구요, 예체능 및 취미 교양 관련 사교육 부문은 보육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7%입니다. 중고생은 이런 비율이 1~5% 정도로 낮습니다. 사교육 참여율을 살펴보면 초등학생이 85.2%로 가장 높습니다. 중학생은 76.2%, 고등학생은 66%로 나타납니다.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가장 높은 것 역시 우리 공교육이 돌봄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죠.

 

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윤석열 “초등 전일제 교육” 공약 어떻게?

윤석열 정부는 초등전일제 교육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인데요. 방과후 교육활동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초등 전일제 학교’를 운영하고,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20시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입니다. 이걸 교육부는 ‘늘봄학교’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올해는 다섯 개 지역의 학교 214곳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기존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학생 입장에선 돌봄교실에서 받아주는 인원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불만이 있었구요. 그래서 해마다 돌봄교실 추첨 장소에 가면 떨어졌다고 울먹이는 부모들도 볼 수 있었죠. 돌봄교실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도 있었구요. 학교 측은 돌봄교실 때문에 교원 업무가 늘어난다는 불만도 제기됐습니다.

늘봄학교를 추진하면서 단위학교 중심으로 운영되던 방과후학교를 교육(지원)청 중심의 지역단위 운영체제로 개편할 예정인데요. 이렇게 되면 기존 단위학교에서 처리하던 강사ㆍ업체 선정 및 계약체결, 수강신청 및 강좌, 회계처리 등을 센터 전담인력이 수행해서 학교 측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고 소양이 계발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가기 위한 선행 학습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돌봄 체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서 학원비를 지출하는 것도 사회적 낭비라고 볼 수 있죠. 이런 돈 아껴서 돈이 더 의미있는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라가 해야할 일인 것 같습니다. 교육부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마련해 발표한다고 하니까 한 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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