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선풍기 전자파 논란... 25cm의 비밀

각자도생 조장하는 정부

  • 기사입력 2022.08.05 10:15
  • 기자명 선정수 기자

2018년 손선풍기 전자파 논란에 이어 올해는 목걸이 선풍기 전자파 논란이 불거졌다. 두 건 모두 비슷한 전개다.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수거해 전자파를 측정해 결과를 발표했는데, 정부는 기준치 이내여서 괜찮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톱이 휴대용 선풍기 전자파 논란에 대해 알아봤다.

출처: 환경보건시민센터
출처: 환경보건시민센터

◈시민단체 "목걸이 선풍기 전자파 위험"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22년 7월26일 ‘휴대용 선풍기 전자파’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센터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목걸이형 선풍기 4개와 손선풍기 6개를 구입해 제품별, 이격거리별 전자파 수준을 측정했다.

그 결과 4종류의 목걸이형 선풍기에서 평균 188.77mG, 30.38~421.20mG의 전자파가 측정됐다. 이 수치를 두고 센터는 “전체평균 188.77mG는 WHO의 발암가능물질 지정 배경 연구값인 4mG의 47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가장 높은 수치는 421.20mG 로 목걸이형 선풍기 1의 날개쪽 2단계 세기 때였으며 WHO의 발암가능물질 지정 배경 연구값인 4mG 의 105배”라고 강조했다.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극저주파 자기장은 IARC가 정한 발암물질 2B그룹이다.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왜 4mG인가? 전자파 발암가능 기준점

송전선과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극저주파(ELF:Extremely Low Frequency)로 분류된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ELF를 발암물질 2B군으로 지정했다. 암 유발 가능 그룹(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이다. 인체에 암을 일으킨다는 제한적인 증거가 존재하고, 동물실험에선 발암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고압송전로 전자파로 인해 소아백혈병이 유발된다는 기존 역학조사 결과가 ELF를 발암물질로 지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고압송전선로 전자파 노출과 소아백혈병과의 관련성은 1979년에 첫 보고된 이후 지속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존연구들을 모아서 종합평가한(pooled analyses) 보고서 2개가 중요한 판단근거가 됐다. 하나는 9개의 잘 연구된 보고를 종합한 것으로, 4mG(밀리가우스)를 기준으로 이하 노출에서는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았지만 이상노출에서 위험도가 2배 초과했다. 15개의 연구를 종합한 다른 하나는 3mG이상 노출시 상대위험도가 1.7배 증가한다고 평가됐다.

이런 이유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극저주파 노출기준을 4mG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 과기정통부 "해당 제품 인체보호기준 충족"

전자파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즉각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 안전기준 충족' 보도자료를 내고 반박했다. 과기부는 1일 시중에 유통 중인 휴대용 목・손선풍기(목선풍기 9대, 손선풍기 11대)에 대한 전자파 측정 결과, 측정한 제품 모두 인체보호기준을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과기정통부는 “측정 결과 휴대용 목·손 선풍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국제적으로 권고된 인체보호기준의 37~2.2% 수준으로 나타나 인체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준용하는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은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가 만든 것으로 0~300GHz까지는 500을 주파수값으로 나눠서 구한다. 대역별로 30㎐는 1666mG, 60㎐는 833mG, 200㎐는 250mG, 800㎐는 62.5mG 등으로 구해진다.

출처: 네덜란드
출처: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원

◈전자파 기준 해외사례 확인해보니

다른 나라들은 전자파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정부는 “대부분 국가에서 ICNIRP의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반면, 시민단체와 학계는 “우리나라 과기부는 ICNIRP의 1998년 참고 기준을 인체 보호 기준으로 바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ICNIRP 참고 기준 자체를 만성 질병 위험 평가 기준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문헌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국립전파연구원이 2016년 12월 발간한 ‘전자파 인체안전 이슈 조사 연구’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전자파 노출 기준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는 ICNIRP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고 ICNIRP 기준을 참고해 더 강하게 적용하는 국가도 있는데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그러하다. 또한 독자적으로 기준을 정하여 적용하는 국가도 있는데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이 해당되며 특히 일본은 ICNIRP 기준치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은 IEEE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런 내용은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원이 펴낸 ‘세계의 전자기파 정책 비교’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벨기에,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베니아, 러시아, 스위스 등은 ICNRP 기준보다 강화된 기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대부분은 ICNRP 기준을 따른다.

그러나 환경보건 시민단체와 학계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ICNIRP 참고 기준 자체를 만성 질병 위험 평가 기준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 등은 2018년 10월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휴대용 손 선풍기의 극저주파 자기장 발생 수준 평가와 쟁점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ICNIRP 참고 기준은 최고치로서 어떤 순간이라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기준은 짧은 시간 신경과 근육 자극, 망막에서의 섬광, 그리고 중추신경계 신경세포 활성에서 변화와 같은 급성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안전 계수를 5까지 고려하여 설정한 한계값으로, 중대한 건강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기준이다. 이 기준은 호르몬 영향, 인체 항상성 교란 등에 장기간 노출되어 일어나는 암 등 만성 질병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평균하거나 누적해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출처: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
출처: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

 

◈사전 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

서로가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전자파 관련 국제기구의 가이드라인을 ‘인체보호기준’으로 준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는 전자파의 발암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만성 건강 영향을 회피하기 위해 이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기구들은 어떤 입장일까? ICNIRP는 2010년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역학 연구는 일일 만성 저강도(0.3~0.4T 또는 그 이상) 전력 주파수 자기장 노출이 소아 백혈병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일관되게 발견했다. IARC는 이런 영역을 발암 가능성이 있다고 분류했다. 그러나 자기장과 소아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립되지 않았으며, 다른 장기적 영향은 확립되지 않았다. 확립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 영향(소아 백혈병 위험 증가: 편집자주)이 근본적인 제한사항에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WHO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정책 입안자는 일반 대중과 근로자 모두를 위한 극저주파 현장 노출에 대한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 노출 수준과 과학적 검토 원칙 모두에 대한 최선의 지침은 국제 지침이다.

• 정책 입안자는 모든 선원의 현장 측정을 포함하는 극저주파 보호 프로그램을 수립하여 일반 대중이나 근로자에 대한 피폭 한도가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전력의 건강, 사회 및 경제적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 한, 노출을 줄이기 위한 초저비용 예방 절차를 구현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 정책입안자들과 지역사회 계획자들은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고 가전제품을 포함한 새로운 장비를 설계할 때 매우 저비용의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 장비나 기기에 대한 극저주파 노출을 줄이기 위한 엔지니어링 관행의 변경은 안전성 향상과 같은 기타 추가 이점을 제공하거나 비용이 거의 또는 전혀 들지 않는 경우에 고려되어야 한다. 극저주파의 만성 건강 영향에 대해서는 인과관계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맥락에서 극저주파에 대한 우려보다는 전력 사용의 이익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반면 보건환경 시민단체와 학계의 주장은 위해성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리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쪽이다. 박동욱 교수는 “극저주파 자기장을 포함한 전자파로 인한 발암 등 건강 위험을 연구한 결과들은 아직 일관되지 않고 연관은 물론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일정 기간 건강 위험 논란이 된 후 피해 사례가 많아지고 과학적 조사 방법이 더해지면서 결국은 건강 위험이 확실하게 드러난 사례는 매우 많다. 담배, DDT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석면, 벤젠, 납 등 대부분 인체 발암 인자들이 그렇다”고 지적한다.

 

◈결국 개인이 25cm 이상 거리두고 사용해야

전자제품에서 발생되는 자기장의 강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줄어든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전기·전자제품을 사용할 때 가급적 멀리 떨어지라고 권장하는 것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손선풍기를 사용할 때는 최소 25cm 이상 떨어지라고 권한다. 제품 구조상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없는 목걸이형 선풍기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등 건강 취약 계층은 더 조심해야 한다. 2003년 이탈리아는 극저주파 자기장 기준을 50Hz 주파수를 근거로 자의적으로 두 가지로 나눴다. 주의 기준(attention value)은 ICNIPR 참고 기준의 10%인 10µT로 설정하고 어린이 놀이 시설, 학교, 주거지 등의 특별 장소와 하루 4시간 이상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되는 기존 시설에 적용했다. 제한적 목표 기준(restrictive quality goals)은 3µT로 설정하고 새 건물과 시설 등에 적용했다.

스위스는 가장 엄격한 인체 보호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다. 극저주파 자기장이 1μT가 넘는 지역에 유치원, 초등학교, 병원과 같은 민감 시설이 신설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극저주파 자기장이 0.4μT이 넘는 곳에 학교 등 어린이가 상당 시간 머무르는 시설을 신설하지 않도록 지자체에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를 살펴보자. 2015년 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이슈와 논점'에는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의 현황과 개선 과제'라는 글이 실렸다. 이동영 입법조사관보는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 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 등은 한 목소리로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전주의적 접근방법에 따라 전자파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더 찾고,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렇게 하는 것이 전자파의 잠재적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국민 의 전자파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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