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 69시간 근무는 오해? 놓친 건 그게 아니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3.03.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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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개편안에 대한 지지여론이 기대에 못 미치자, 정부와 여당에서는 당초 계획한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3일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다룬 일부 언론보도가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가정에 기초한 왜곡된 주장이라며 설명자료를 냈다.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은 16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그간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주52시간제의 경직성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며,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시간의 단위 기간을 ‘월·분기·반기·년’ 중 노사 합의를 통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도 토론회와 방송을 통해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로 관리하던 것을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자는 것인데, 69시간 프레임에 빠져서 갇혀 있다”며, “노동계에서 계속 69시간 프레임을 갖고 나오니까 다들 거기에 갇혀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개편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하는 대신 초과 근무한 부분에 대해 근로자가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주52시간제 안에서는 일감이 몰릴 때 근로자가 원해도 일을 할 수 없고, 사업주 또한 특정 시기에 몰리는 일감을 소화할 수 없어 경영상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보면 정부의 해명처럼 초과근무만 늘어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부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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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연평균 17일의 연차 휴가를 받고도 실제로는 11.6일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조직 규모가 300인 이상인 사업장은 사용 휴가 횟수가 약 12일이었지만, 임시·일용 근로자는 약 6일, 시간제 근로자 등 5인 미만 규모의 조직이나 특수형태근로자·플랫폼 종사자는 약 9일이었다.

또,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21년 일가족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연차유급휴가 소진율은 평균 58.7%로 드러났다. 게다가 75.3%였던 2019년에 비해 17%가량 줄어든 수치다. 연차를 실제로 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이 39.9%로 가장 많았다. 그 결과 2021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인 1617시간보다 무려 311시간이나 더 많은 1928시간이었다.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길었다.

주 52시간이 법제화된 지금도 초과노동과 공짜야근에 시달리고 주어진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데 휴가를 몰아서 길게 쓰거나 유급으로 받는 게 가능하겠냐는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근로시간 조정은 노사합의를 통해서만 적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회사와의 각종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 노동자 비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 OECD평균은 32.1% , 영국 26.9%, 독일 54%, 프랑스 98%인데 한국은 14.8%였다.

또한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1년 기준 14.2%였으며, 사업장 규모별로는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이 46.3%, 100~299명 10.4%, 30~99명 1.6%, 30명 미만 0.2%로 나타났다. 노조도 없고 단체협약 적용도 못 받는 사업장은 누가 노동자를 대표해 업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협상에 참여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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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편안에 대해 대기업보다는 주로 중소기업이 더 반기고 있다는 온라인 게시글에는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표현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 구인난을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1조는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제50조에는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정부와 여당은 개편안의 취지가 노동 환경의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집단에만 맞춘 개선이 아니길, 개선보다는 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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