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휴가 장려한다는 기업, 진심일까?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4.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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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전경련의 내수활성화 동참 권고

주요 경제단체들이 회원사들에게 내수 활성화에 동참해 달라고 권고했다. 수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원자재 가격 급등에 위축된 소비 심리가 지역상권과 영세 소상공인을 한계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내수 활성화 대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이번 권고를 내놨지만 기업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출처: 한국경총
출처: 한국경총

◈직원들 연차휴가 보내시고, 행사는 국내에서 하세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3일 회원사들에 내수 활성화에 동참해 달라는 권고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회원사에 협조 요청한 주요 사항은 ▲ 임직원의 연차휴가 사용 촉진과 휴가 시 국내 여행 ▲ 임직원 휴가 기간의 연중 분산 ▲ 세미나 연수 등 회의·행사의 국내 주요 관광지 활용 ▲ 인센티브 성격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의 국내 전환▲ 명절선물, 기념품 등 우리 농산물 보내기 등이다. 전경련 추광호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경기 불황과 고물가·고금리로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서 지역경제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회원사들이 캠페인에 동참해 실물경기 회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근로자 연차휴가 사용 촉진과 국내 여행 장려 등을 통해 내수 진작에 협조할 것을 요청하는 권고문을 회원사들에 보냈다. 경총은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업무 효율화를 통해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줄여 여가 생활을 통해 내수가 촉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기업 연수나 교육 프로그램, 워크숍, 세미나 등 각종 행사는 가급적 국내에서 개최하고, 노사 협의를 통해 휴가비 일부를 국내 숙박시설 이용권이나 지역 관광 상품권 등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앞으로도 내수 진작에 우리 기업들이 동참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들을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출처: 기획재정부
출처: 기획재정부

◈과연 공문 한 장에 기업이 움직일까?

전경련과 경총은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경제5단체로 묶이는 경제단체이다. 여기에 한국중견기업연합회를 포함해 경제6단체로 불리기도 한다. 전경련은 대기업을 대표하는 한국 경제계의 대표단체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며 삼성 등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하는 등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하고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총은 전경련 내 고용 업무 담당 부서였다가. 1970년 별도의 단체로 독립했다. 이후 노사 관계 전담 사용자 단체로 기능하다가 2018년 정관개정을 통해 업무 영역을 경제·사회 이슈까지 확장해 종합경제단체로서의 역할을 정립했다.

전경련은 대기업 중심으로 회원사 450곳이 가입돼 있다. 경총은 다양한 규모의 기업 4253곳이 회원사다. 경제단체들의 권고대로 회원사들이 따라 움직인다면 그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권고’일 뿐 회원사에 대한 강제력은 없다. 인력 사정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연차휴가를 소진하라고 하는 것은 기업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연차휴가 소진율은 조사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2021년 기준 58.7~76.9%로 나타난다. 기업체노동비용조사 시범조사에 따르면 2021년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는(소진율 100%) 기업체는 40.9%에 불과하다.

 

◈정부 내수 활성화 대책 보조 맞추기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내수 활성화 대책의 상당부분을 국내 관광 활성화에 할애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은 많이 찾을 수 있는 방안도 일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핵심은 내국인들이 관광지를 찾아 지갑을 열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 마중물 역할을 정부가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대체공휴일을 부처님오신날과 크리스마스로 확대하고, 공무원 연가사용, 학교 재량휴업 촉진 등 공공과 민간의 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밝혔다.

휴가를 쓰든 말든 선택은 개별 노동자의 몫이다. 그러나 노동 현장의 휴가 사용 실태는 여유롭지않다. 정부는 재계의 요청을 받아 근로시간 연장을 추진하는 중이다. 내수활성화를 위해 휴가 사용을 장려하겠다는 대책은 근로시간 연장 움직임과는 모순된 방향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에선 노무 수령 거부와 맞물린 연차 사용 촉진제를 사용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휴가 계획서(또는 연차 소진 계획서)를 제출하고 부서장의 승인을 받는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공짜 근로’가 만연한 게 현실이다. 기업들은 서슬퍼런 정부가 휴가 사용을 권장하라고 하니 여기에 보조를 맞추는 형국이다. 과연 진정성있게 그들의 임직원에게 휴가 사용을 장려하고, 직원들은 동료 상사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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