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대한민국에 '불가촉천민'이 있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4.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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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의 이야기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는 악습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높은 등급인 사제(브라만), 왕족과 무사(크샤트리아), 서민과 농공상인(바이샤), 노예(수드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카스트제도는 윤회를 믿는 인도인들이 현세에 열심히 자신의 신분에서 살면 다음에 태어날 때는 높은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카스트제도에도 포함되지 못한 ‘불가촉천민’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람과 동물의 분뇨, 쓰레기를 치우고 온갖 더러운 일을 합니다. 이들을 ‘달리트(dalit)’라고 불립니다.

우리나라에 인도의 달리트가 있다면 아마도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태헌 전국환경노조 위원장)

 

오늘 팩트체크 해볼 주제는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는 불가촉천민인가” 입니다.

◈2023 대한민국에 불가촉천민은 있나?

한반도에서는 조선말기인 고종 31년, 그러니까 1894년에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됐습니다. 무려 129년이나 됐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3년 대한민국의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이라고 부릅니다.

환경기초시설은 쓰레기소각장, 음식물류 폐기물 처리장, 재활용 선별장, 공공하수시설 이런 곳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우리 생활이 유지가 되지 않는 중요한 시설들이죠. 그래서 환경기초시설이라고 부르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환경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김태헌 전국환경노조위원장은 “혹자는 너무 자학적 표현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물론 동의합니다만 현실적 시각에서 환경기초시설의 산업을 들여다보면 틀리다고 주장할 수만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전국환경노조는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의 노조입니다. 2017년 5월 마포자원회수시설 노동자 32명이 결성했구요. 2018년10월 마포자원회수시설과 강남자원회수시설이 연합해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고 합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노조이구요. 14개 지자체, 18개 시설 노동자 약700명이 가입했다고 합니다.

출처: 전국환경노조, 용혜인 의원실
출처: 전국환경노조, 용혜인 의원실

◈환경기초시설의 임금착복과 열악한 노동환경

이분들은 ▲민간수탁사의 임금 착복 관행 ▲혐오시설근무수당 미지급 ▲불완전한 고용승계 ▲열악한 복지 ▲위험한 작업환경 ▲산재사고 빈발과 은폐 ▲재입찰 과정에서 소외 ▲개선의지 없는 지자체와 손놓은 지방정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구내식당이 없습니다. 작업하다가 바닥재 같은 이물질이 몸에 묻은 상태로 외부식당으로 나갈 수도 없죠. 유해물질 전파 우려 때문에요. 그리고 적절한 휴게실이 없다고 합니다. 세척시설도 터무니없이 부족한데요. 갈아입고 집에 가져가서 빨래하면 되지 하실 분 계실지 모르지만, 오염된 작업복은 집으로 가져가 세탁할 경우 이물질이 다른 가족의 옷으로 옮겨가거나 알 수 없는 오염물질, 유해물질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시설 내에서 세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임금 착복 관행인데요. 즉, 발주처(지자체)에서는 한국엔지니어링 협회 노임단가로 지급받아서 정작 현장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만 지급하고 차액은 착복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고용당국의 조사가 시급해보입니다. 지자체에서 환경기초시설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장려수당이나 혐오시설근무수당을 주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노동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사례도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전국환경노조, 용혜인 의원실
출처: 전국환경노조, 용혜인 의원실

◈이것은 ‘느린 재난’이다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은 장기간 야간 근무로 인한 수면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등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작업장 특성 상 다이옥신,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부유세균, 미세먼지 등 여러가지 유해물질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연관된 암 발병 사례도 여럿 보고되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환경기초시설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금현아 박사과정 연구원은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분들의 작업 환경은 하나의 느린 재난”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진행되고 있는 위해를 일컫는 용어인데요. 대개 특정한 힘 혹은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건강 위협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금 연구원은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해서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건강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가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앓게 된 시점에서야 그것을 문제시하며, 그마저도 “사고”라고 부르고 급히 수습한 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상화”하기에 바쁜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재빨리 닥쳐오지 않았다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환경기초시실은 민간에 위탁되나?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유로서 비용절감, 행정능률향상, 전문성 제고, 행정조직 비대화 방지, 책임 외주화 등이 거론됩니다. 그러나 민간위탁 대상사무의 선정이나 수탁기관의 선정, 예산집행의 부적절, 관리감독의 부실, 성과 평가 부재 또는 부실과 함께 재계약에 반영되지 않는 문제 등 재위탁, 재계약 시스템의 미흡, 부정부패, 고용승계 문제, 열악한 노동조건 등의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는데요. 폐기물관리법에는 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해 위임, 위탁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있고, “효율적인 관리 운영 능력이 있는 자”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민간위탁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되고 있는지 등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위원은 “현재의 위탁관리회사들은 단순히 인력공급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이 보유한 인력이 아니라 기존 인력을 대부분 승계해서 운영하고 있고. 시설과 장비는 지자체가 소유이고, 위탁업체는 별도의 기술투자 없이 인력관리업무만을 담당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생활폐기물 처리시설을 지자체가 직영하거나 또는 시설관리공단(환경시설공단 신설 포함)이 운영할 경우 노동자의 고용이 안정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가 숙련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시설 운영에도 기술적으로 도움이 된다고도 주장합니다. 위탁을 직영 또는 공영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노무비와 경비는 동일하더라도 일반관리비의 일부와 업체 이윤, 부가세를 절감할 수 있어, 전체 비용의 21.1% 정도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절감된 예산의 일부를 “처우개선”“안전보건 비용”으로 사용한다면 노동조건과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구요.

 

◈왜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는 주목받지 못했나?

남 연구원은 “사회기반시설 유지 보수의 측면이 폐기물 처리의 비가시성과 맞물려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폐기물은 누구나 배출하지만, 폐기물을 처리는 특정한 사람들의 몫으로 여겨지며,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는 건데요. 비교적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처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더욱 열악하게 마련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요. 관심을 덜 받는 거죠.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는 환경기초시설은 심지어는 하남시처럼 전체 시설이 지하화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의 생활권과 멀리 떨어진, 즉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진 공간에서 작업자들의 노동 환경은 더욱 더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출처: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출처: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다음달 1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환경기초시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립니다. 용 의원은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며 당장 휴게시설 전수조사와 임금착복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토론회에 노동부와 환경부에서도 참여한다고 하니,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국회의 입법조치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대한민국에 불가촉천민이 있다? 이 주제에 대한 팩트체크 판정은 독자 여러분들께 맡깁니다. '사실' 또는 '사실 아님' 당신의 결론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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