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바라보는 중대재해처벌법 1·2호 판결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5.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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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1, 2호 사건의 1심 판결을 보고 나온 재계의 반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1·2호 판결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경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과도한 처벌규정에도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 입증에 대한 철저한 법리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며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중한 처벌이 부과되지 않도록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하는 등 정부가 하루빨리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총은 또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 불명▲형사처벌의 핵심요건인 범죄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합리적 근거 부재▲원청의 중처법상 의무이행 범위에 대한 확대해석으로 혼란 야기▲유죄선고 시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인해 중한 형량 선고 우려▲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형사처벌 가능성 증대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원청 사업주 스스로 공소사실 인정한 1,2호 사건

2023년 4월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에 벌금 3000만 원을, 대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5월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B씨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이에 검찰은 원청 기업인 온유파트너스와 대표 A씨에 대해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등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2023년 4월 26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형사1부(강지웅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2호 판결을 선고했다. 도급업체인 한국제강 대표에게 징역 1년의 실형선고와 함께 법정구속을 했고, 한국제강에도 1억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2022년 3월 한국제강 공장에서 협력업체 근로자C씨가 원격조종기로 크레인을 조작하던 중 섬유 벨트가 끊어지면서 떨어진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C씨의 다리가 끼면서 동맥 손상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 사고였다. 법원은 한국제강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보건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따른 조치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의무위반이 있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피고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범죄사실에 대한 다툼 없이 한 차례 공판이 진행된 뒤 1심 선고에 이르렀다.

출처:안전보건공단
출처:안전보건공단

◈사업주 의무 위반이 피해자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인가?

경총은 이 사건들을 분석하며 “인과관계 입증에 대한 철저한 법리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6조는 “제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제2호가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4조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ㆍ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망사고 발생과 관련한 내용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1·2호 사건의 1심 판결을 통해 사업장의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거나, 이행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산재 사망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1호 사건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종사자가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하였다”라고 적시했다. 사업주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 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아 피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2호 사건 재판부도 “피고인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하였다”고 적시했다.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책임자등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거나, 도급 등을 받는 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절차를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하청업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게 사망사고가 발생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 것이다.

 

◈경총, “검찰이 오해했다”

경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원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상 의무의행 범위에 대한 확대해석으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청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하청업체의 안전조치 의무를 원청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로 잘못 이해해 기소했고, 법리 다툼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경총은 “하청근로자에 대한 안전대 지급 등의 의무이행 주체는 하청업체 사업주이지,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준수 할 의무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또 경총은 “원청의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장 전체에 적용하는 업무매뉴얼(절차서)를 작성할 의무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두 사건 모두 원청 사업주인 피고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다투지 않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에 대한 참회의 마음이었는지, 형량 줄이기 전략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들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바람에 중대재해처벌법의 논쟁 지점이 되고 있는 사업주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법리 적용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

판례가 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법률이다. 산업 현장에서 원청·사업주의 산재예방 책임을 강화하고, 산재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도해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경총은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중한 처벌이 부과되지 않도록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하는 등 정부가 하루빨리 중처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현장을 신속히 개선해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들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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