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일본 사회 침묵 이유는 '동조압력'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08.3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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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 '의식적 무관심'과 여론 조사의 높은 방류 찬성
‘후쿠시마 농어업민 vs 소비자’ 구도 생기며 목소리 내기 어려운 상황
일본 국내 여론만으로 오염수 방류 뒤집히기는 어려워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지난 8월 24일 결국 부지 근처에 쌓여있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기시다 정권 차원에서 보자면 낮은 지지율에 당분간 중의원 해산(=선거 실시)이 어려워진 점, 과거 강력한 반대자로 여겨졌던 한국이 묵인 내지는 찬성으로 돌아선 점, 방류에 대한 국내 여론의 찬성이 높은 점 등이 고려됐다고 생각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라는 판단이 있었으리라 본다(참고로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언론이 ‘처리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처리 효과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확실치 않기에 한국에서 쓰는 ‘오염수’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

일본 여론의 높은 오염수 방류 찬성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일본 여론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듯 찬성이 대체로 높다.

지난 27일 발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기시다 정권의 방류 결정에 대해 ‘평가한다’는 입장이 57%를 기록했다. ‘평가하지 않는다’는 32%에 머물렀다. 같은 날 마이니치신문에서도 ‘평가’가 49%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29%에 그쳤다. ‘모르겠다’는 22%였다.

이달 중순의 교도통신 보도를 근거로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 여론도 반반으로 갈렸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다른 조사는 일정하게 찬성이 높다는 점에서 교도통신 조사가 튄 것으로 보인다. 방류에 관한 정부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으나 그것이 반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당사자임에도 왜 반대하지 않는 것일까?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주로 일본 시민들의 낮은 정치적 참여의식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고, 보수 진영은 일본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사람들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그 뒤의 원전 피해에 둔감해지면서 문제의식이 옅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둔감해진 문제의식 자체는 뚜렷한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해 있다기보다, 단지 시간이 지나 명확히 눈에 보이는 피해가 드러나지 않자 그저 익숙해진 것이라고 봐야 할 듯싶다. 

필자는 일본 신문을 구독해 하루치도 빼지 않고 읽고 있다. 소셜 미디어(주로 X)에서도 빈번하게 일본 내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최근 1년, 적어도 8월 한달 동안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오염수 방류 관련해 국민을 설득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방류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 특히 정부 관계자가 익명으로 등장하는 보도가 다수 있었고, 일본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전할 뿐이었다. 일본 정부가 해온 '정책결정방식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기시다 정권에서는 특히 민감한 정책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정해져 왔다. 다만 처음에 반발이 적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는 지지율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책 결정방식이 여론에 그다지 우호적으로 비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찬성이 다소 높다는 점이 원전 재건설이나 방위비 증액 등 다른 이슈와 차별점이다. 이 역시 방류 찬성이 많은 이유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가 된다.

정부와 도쿄전력 빠진 채 '후쿠시마 농어업민 대 소비자' 구도 형성

후쿠시마 문제 관련해 흔히 쓰이고, 최근 한국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 ‘소문피해’, 일본어로 ‘풍평피해(風評被害)’라는 말이다. 멀쩡한 물건 혹은 식품임에도 이른바 '가짜 뉴스'나 '헛소문' 때문에 안 팔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말의 전제는 해당 농수산물이 애초에 안전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고, 주요한 근거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신뢰도가 된다.

그렇기에 애초 소문피해는 '소비자와 정부, 도쿄전력 사이의 문제'였어야 했고, 후쿠시마 농어업민은 피해자로서 정부와 도쿄전력과 대립하는 입장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후쿠시마 원전과 식품 문제는 일본 정부의 ‘먹어서 응원하자’나 ‘후쿠시마산 식품 보상 지원’등 과학(조정된 방사능 물질 기준치 이하)을 내세운 일종의 정치 캠페인(아래 사진)을 거치며, 논쟁의 구조가 ‘소비자와 후쿠시마 현지 농어민’으로 바뀌고 말았다.

정부와 그 뒤에 숨은 도쿄전력(과거 민영 기업이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손해배상·폐로등지원기구’라는 정부 기금이 과반수 지분을 보유해 지금은 사실상 국영기업)은 논쟁에서 빠졌다. 

 

2018년 3월 후쿠시마를 방문해 수산물을 시식하는 아베 전 총리(출처: 수상관저, https://www.kantei.go.jp/jp/98_abe/actions/201803/10fukushima.html)
2018년 3월 후쿠시마를 방문해 수산물을 시식하는 아베 전 총리(출처: 수상관저, https://www.kantei.go.jp/jp/98_abe/actions/201803/10fukushima.html)

이러한 구도 하에서 의구심이 있는 시민들마저 적극적으로 후쿠시마산 식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졌다.

일본인이 많이 쓰는 X(구 트위터)에서도 유명 인사 등이 후쿠시마 식자재 문제를 제기하면, 넷우익으로 추정되는 계정이나 후쿠시마 현지 주민이나 단체들(주로 자민당 지지쪽이 목소리가 큰 것으로 보임)이 소문피해와 다른 지역민들의 ‘후쿠시마현민에 대한 차별의식’과 '과학적 근거'를 주장하며 대대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후쿠시마 현지 농수산물 문제에 대해 어느샌가 입을 닫기 시작했고, 해당 이슈는 일본 사회에서 쉽게 거론하기 어려운 ‘조용한 터부’가 되어갔다.

강한 동조압력에 일본 여론으로 방류 문제 뒤집기 힘들어

일본에서 자조적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 ‘동조압력’이다. 한국도 눈치 사회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개인적으로 10여년 가까이 산 경험으로 느끼기에 일본 사회가 한 수 위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미 자유화된 마스크 착용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마스크를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고 발표했고, 5월 이후 감염병 등급을 신종 독감급으로 낮췄다. 5월 이후 필자는 일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더이상 써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다. 

그러나 일본 거리 상황은 다소 다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5월에 보도한 ‘역시나 동조압력? 사라지지 않는 마스크의 배경’이라는 기사를 보면 4월 여론조사에서 69%가 ‘마스크 착용횟수가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마이니치신문 6월 보도에서는 ‘착용하고 있다’가 48%로 이전보다는 줄었지만 ‘착용하는 때가 줄었다’ 47%보다 여전히 많았다. 이 같은 마스크 착용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주변의 반응과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는 동조압력의 영향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일본 사회 내 강한 동조압력이 후쿠시마 ‘풍평피해’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즉 후쿠시마산 식품을 대놓고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면, 사회 내 형성돼 있는 ‘후쿠시마 농어업민 대 소비자’라는 구도 속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차별 행위’라는 기묘한 비판이 나오게 된다. 즉 식품 문제 제기가 차별의식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기에 후쿠시마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실시되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보다 ‘별 수 없다’는 일종의 동조압력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여전히 일부 식품(주로 오이와 복숭아, 쌀) 외에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슈퍼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후쿠시마산 수산물은 거의 본 적이 없고, 그나마 가까운 미야기와 지바산 정도가 한계다.

참고로 필자는 인근 유기농 채소 업체에서 매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후쿠시마산 유기농 야채가 배달돼 온 적이 없었다. 여전히 후쿠시마산의 안전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조용히' 거부하는 상황이라고도 하겠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 내부 여론으로 오염수 방류 정책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후쿠시마 현지 어민들의 반발은 있으나 이 역시 얼마나 정책 변경에 영향이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후쿠시마현 내 중의원(하원) 다섯 개 선거구 중 셋은 야당 입헌민주당 의석이다. 그 중에는 원전이 위치한 곳도 포함돼 있다. 오염수를 계속 쌓아둘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야당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방류를 막기도 어렵고, 실제 그럴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입헌민주당 대표 이즈미 겐타는 방류가 시작되자 도쿄 내 후쿠시마현 안테나숍에서 해산물을 구입해 먹는 쇼를 펼치고 X에 '먹어서 응원, 사서 응원'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아래 사진). 기시다도 이에 발맞춰 식사 영상을 공개했다(아래 영상).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 대표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구입해 요리하는 모습(출처: https://twitter.com/izmkenta)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 대표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구입해 요리하는 모습(출처: https://twitter.com/izmkenta)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 대표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구입해 요리하는 모습(출처: https://twitter.com/izmkenta)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 대표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구입해 요리하는 모습(출처: https://twitter.com/izmkenta)

기시다 총리의 후쿠시마산 먹방

 

이처럼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일본 사회에 퍼진 터부와 체념, 목소리를 내는 게 차별의식으로 연결되는 기묘한 상호황 속에 큰 계기가 있지 않는 한 방류 정책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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