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정권 '재보선 신승'은 한일정상회담 덕분?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05.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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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승 예상한 선거구에서 접전 잇따라
한일정상회담 이후 지지율 상승세도 영향
추후 정부 비판세력 집결 가능성도

지난달에 끝난 일본 지자체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기시다 정권에 어떤 의미였을까? 첫째는 적어도 정권에 큰 타격이 갈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 둘째는 간사이를 중심으로 한 일본유신회(간사이 지역 내에서는 오사카유신회로 활동)의 기세가 상당하고 자민당이 압승하지는 못해, 당장 해산 및 총선거는 쉽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한일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상승세에 있었던 것이 작용했고, 후자는 그럼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결집할 가능성을 내포한 결과라고 봐도 되겠다.

유신회 외 야당의 선거 및 집권 전략이 부재하고 지리멸렬한 상황도 선거 승리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선거 뒤 내각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점(일부 조사에서는 지지가 비지지를 다시 역전)에서 자체 동력도 있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구 다섯 곳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자민당이 4승 1패라는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향후 과제가 오히려 명확해졌다.

유신회 후보에게 자리를 내준 와카야마는 원래 보수 야당(국민민주당) 지역구였다고 해도, 야당 분열이 일어난 지바에서 가까스로 이겼고, 보수 기반이 강한 야마구치에서마저 야당 후보와 의외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과 자민당 내부에서도 당장 해산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지방의회선거에서 강세를 보여온 연립여당 공명당이 부진했던 것도 부정적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아래에서 와카야마를 제외한 선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습 어필’하다가 역풍 분 야마구치 

우선 아래 NHK 야마구치 2구 선거 결과부터 확인해보자(이하 선거결과는 NHK 참조).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가 건강 문제로 사실상 정계 은퇴를 한 뒤 31세 아들에게 대물림한 선거구다.

결과는 아들인 기시 노부치요가 52.5%, 민주당 정권에서 법무상(장관)을 지낸 히라오카 히데오가 47.5%로 접전이었다. 당초 자민당에게 질 것이란 생각은 아예 없었고, 오히려 어떻게 더 표차를 벌릴지가 쟁점이었던 곳이다. 그러다 언론사에서 발표되는 정세조사(여론조사에 취재를 가미)에서 역전되는 결과까지 나오면서 위기감이 급속하게 번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기시 노부치요의 ‘자질’ 문제였다. 당초 출마 선언을 할 때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책과 공약이 아닌 ‘가계도’(아래 그림)를 내걸어 세습 정치에 비교적 관용적인 일본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부정적인 첫 인상은 후지테레비 기자 출신인 노부치요의 자질 문제로 옮겨져 아래와 같은 현장 중계 영상이 발굴되기에 이른다. 사고 현장을 연결했는데 취재가 덜 된 건지, 긴장한 건지 제대로 말을 못하는 모습이다. 

 

낙승을 예견했던 자민당 지도부와 현지 지원자들은 실제 선거전이 시작되자 당혹해하기 시작한다.

내부에서 “연설이 별로다”, “하는 말에 알맹이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히라오카 후보는 오랜 기간 야마구치에서 활동한 야당 정치가였기에 선거 운동이 전략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야당 입헌민주당은 히라오카의 승산이 높지 않다고 보고, 당 차원에서 공인(공천)하거나 지원(추천)하지 않았는데 이게 패배의 요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야당의 전면 지원이 없었음에도 노부치요 후보가 위기에 몰린 것이다. 

아베 신조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이웃 선거구(야마구치4구)에서도 자민당 후보가 63.5%로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만약 기시다 정권이 내림세에 있었다면, 즉 구도가 불리했다면 야마구치 선거구 하나가 야당에 넘어가는 참변이 벌어질 수 있었다.

 

야당 분열에도 박빙까지 몰린 지바 선거구

자민당 의원이 회계 부정 문제로 사직한 수도권 지바 선거구도 박빙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자민당 34세 신인 후보가 30.6%를 얻으며 신승했다.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유신회, 공산당 등 주요 야당에서 모두 후보를 낸 상황이었다.

언론사 정세조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입헌민주당과 자민당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가 전해졌었고, 결과적으로 3포인트차로 겨우 따돌린 상황이 됐다. 

 

입헌민주당이나 공산당 같은 리버럴 혹은 혁신계열 야당에 부정적이면서도, 자민당은 찍기 싫은 유권자가 다수 유신회나 국민민주당에 표를 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유신회나 공산당을 제외한 입헌, 국민의 구 민주당계열 단일화만이라도 이뤄졌다면 자민당의 승리는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바 지역구는 수도권 민심이 반드시 기시다 정권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지표이자, 중의원 해산의 가능성을 낮춰주는 지표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접전 끝에 야당 의석 뺏은 참의원 오이타 선거구

벳푸, 유후인 등으로 유명한 오이타 선거구는 전통적으로 사회당(후신은 사민당) 계열이 의석을 점유해온 곳이었다. 여전히 지역 내 노조 등 혁신, 리버럴계 후원 조직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야당 단일화가 가능했던 것도 중앙노동조직(렌고)의 적극적인 노력이 작용했다. 당장 직전에도 리버럴계 무소속 후보가 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공석이 생긴 곳이었는데, 사민당 출신 입헌민주당 후보가 패했다.

 

양당 후보가 득표율로는 동률이었으나 표수에서 341표 차이로 아깝게 패했다.

자민당 후보는 도쿄 긴자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이른바 ‘긴자 마마’출신의 무명이었다. 일하면서 육아를 했던 경험으로 여성층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시다가 직접 두 차례나 오이타 선거구를 찾았을 정도로 공을 들인 점도 결과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지사 선거에서도 야당계 후보가 패한 만큼, 리버럴계 및 혁신계 야당이 향후 오이타 지역 기반을 어떻게 되살릴지가 과제가 됐다.

 

총선 승산 높지 않은 상황에서 해산 주저하는 자민당 분위기 

이처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상황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결코 자민당이 넉넉하게 이긴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 전체적으로 간사이 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의회에서도 유신회의 기세가 명확하게 확인됐다.

만약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내림세에 있었다거나, 부정적인 이슈가 있었다면 더욱 어려운 선거가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민당 내에서도 서서히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이달에 있을 방한과 직전의 화이트리스트 복귀는 어려운 선거에서 한숨 돌린 기시다가 작으나마 한국에 응답을 하려는 움직임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확실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기시다가 한국 여론을 만족시켜 줄 무언가 구체적인 것으로 보답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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