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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ㆍ연예는 예술인데 게임은 왜 예술이 아닐까[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법이 규정하는 예술의 범위

조금 식상한 질문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

‘게임은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이제 좀 식상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한때 게임이 예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될 때도 적지 않은 이들이 주장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사행성이 넘실거리는 게임만 제작되고 유행하는 현실 속에서 게임의 예술성에 대한 강조는 결국 그런 게임산업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액세서리로만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고, 대답의 가짓수 이상으로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하는 지금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한 수준에 머무르고 말 확률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관련 글을 써오면서도 이게 굳이 예술의 이름을 달아야 하는 당위인지에 대해서 또한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조금 좁혀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 제도 하에서 게임은 예술인가?’ 정도를 질문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확인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무의미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예술인경력증명에 게임종사자는 포함될 수 있는가?

한국의 사회 제도가 특정 분야에 대한 예술여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를 판단하기에 좋은 방식이 하나 있는데, ‘예술활동증명’이라는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국가는 예술 진흥을 위해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고 예술종사자의 경력 증명 등을 합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경력 증명을 인정받으면 창작준비금 지원, 의료비 지원, 산재보험 지원, 각종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의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예술인패스 발급 등의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관하여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사실상 특정 활동을 수행하는 이가 제도적 측면에서 예술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별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만약 게임 관련 종사자가 예술인 경력증명을 받을 수 있다면 한국의 제도는 게임을 예술의 범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에 방문해서 자격증명 요건을 살펴보면 크게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에 대해 경력증명이 제공됨을 알 수 있다. 분야는 총 11가지로, 문학 / 사진 / 건축 / 미술 / 국악 / 무용 / 연극 / 음악 / 영화 / 만화 / 연예가 포함된다. 보시다시피, 게임은 포함되지 않는다.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캡쳐. 예술분야엔 문학, 사진, 건축, 미술, 국악, 무용, 연극, 음악, 영화, 만화, 연예 등 11개 분야가 포함된다.

기본 항목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사이트는 예술인 복지법 제 2조에 의거한 예술인의 정의를 허용하고 있다. 이 법은 예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한 예술인의 정의를 따르는데, 시행령의 각 호에 따르면 저작권법에 의해 인정받는 공표된 저작물의 보유자, 예술활동을 통한 소득이 있는 자를 예술인의 범주로 포함한다. 그렇다면 굳이 11개 항목에 게임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토대로 예술경력증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게임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종사자는 아니지만, 2014년부터 약 4년에 걸쳐 게임에 관련된 이런저런 글들을 여러 매체에 기고해 왔고, 1권의 비평서와 2권의 게임문화 관련 서적의 저자로 등재되어 있는 상태다. 위 11개 항목의 각 호에서는 해당 분야의 창작자 뿐 아니라 비평가 또한 범주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경력을 활용해 평론가의 형태로 예술인 경력증명의 신청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 보았다. 직접 신청하기는 좀 민망해서 1:1 문의란을 통해 게임 부문의 기고활동에 대한 예술경력증명 신청가능여부를 문의했고, 답변을 받았다.

답변은 기대 이상으로 정확했다. 게임분야는 통상 예술 분야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인정하는 부분은 게임 안의 일러스트레이션 / 디자인 등 시각예술 분야 종사자의 경우에 한해 이뤄지는 모양이다. 비평은 인정되지 않는다. (왜 비단 게임분야만 안되는 건지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추후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재미있는 점은 게임 자체로는 예술인 경력증명이 인정되지 않으나, 디자인 영역의 작업자는 등록가능하다는 점이다. 오페라를 예로 들면, 오페라 연출은 해당되지 않으나 무대미술은 등록가능한 것과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종합콘텐츠로서 게임이라는 틀 전체는 아직 제도적 측면에서 예술의 범주로 인정되지 않지만, 그 게임의 내부에 포함되는 음악, 미술 등의 개별영역에서의 작가들은 예술인경력증명의 대상이 됨을 알 수 있었다.

예술활동증명방법 인포그래픽. 출처:한국예술인복지재단

게임은 예술이 아니지만,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예술로 간주된다

예술인복지재단의 답변은 게임의 예술적 지위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것은 재단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예술인복지법 2조가 규정하는 예술인의 범주는 문화예술진흥법의 정의를 따르고, 여기에 게임이 없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현행법은 예술의 범주를 순수예술만으로 좁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법상의 예술 카테고리인 ‘연예’ 는 방송과 공연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에 따라 탤런트, 개그맨, MC, 방송작가, 비평가 및 기술스태프까지 모두가 예술인경력증명의 대상에 포함된다. 게임의 예술 여부에 대한 가치판단을 뒤로 하고, 게임을 예술로 명문화한다면 방송 종사자들과 같은 형태의 경력증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게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해 입장이 없는 편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확인가능한 것은, 현행 제도 하에서 한국의 법률은 게임을 예술의 범주에 넣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게임은 예술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게임을 구성하는 게임 내의 여러 다른 예술양식들은 개별적으로 예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인복지재단의 공식 답변을 통해 확인된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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