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같이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100년' 하와이 왕국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8.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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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하와이 왕조 개창자 카메하메하 1세

앞서 우리는 ‘시드마이어의 문명’ 게임 시리즈가 다루는 비서구, 비유럽권의 역사 중 서아프리카를 다룬 문명인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와 송가이 제국의 아스키아를 살펴본 바 있었다. 게임 ‘문명’ 시리즈가 다루는 비서구권의 문명은 한 두 개가 아니어서 그것만으로도 1년간 이야기할 수도 있을 만큼 많은 분량이겠지만, 그 모두를 다 다루는 건 지루해지기도 하고 또 그 정도의 분량이라면 차라리 역사를 다루는 코너가 어울릴 정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건드리지는 않으려 한다.

비서구권 문명 이야기의 마지막은 여름철을 맞아 우리에게 해외 휴양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하와이의 이야기다. 훌라춤, 야자수, 해변과 수상스포츠로만 알려져 있는 하와이지만, 그곳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삶을 살아온 터전이라는 사실은 멀리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쉽사리 와닿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광지건 산업단지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는 어지간하면 사람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하와이도 단지 미국에 합병된 이후의 이야기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하와이에 있는 카메하메하 1세 동상.

문명 5편의 주력문명, 폴리네시아의 카메하메하 1세

‘시드마이어의 문명’ 제 5편의 확장팩에는 폴리네시아 문명이 주력 문명으로 등장한다. 단지 면적으로만 치면 태평양의 대부분을 덮을 정도로 방대하지만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육지는 매우 적고,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폴리네시아는 일반적인 대규모 문명이 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통일 왕조를 구축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하와이다.

폴리네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단일 왕조 체제를 구축한 하와이 왕국은 다른 지역의 문명들에 비해서는 그 성립의 시기가 늦은 편이었다. 군도 형태의 특성상 한 군데로 힘이 몰리기 어려웠던 하와이는 주요 섬들에서 적당한 영역을 차지하는 부족들의 모임 형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폴리네시아 특유의 정치체제는 유럽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서부터 변화를 맞는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은 처음 하와이 제도에 발을 디디면서 이 섬들을 샌드위치 제도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이후 제임스 쿡은 하와이 거주민들과 교역을 시작하는데, 이 때 만난 이들 중 한 명은 서양인들이 가져온 머스킷총과 대양 항해가 가능한 거대한 배들의 가치를 알아본다. 하와이 왕조의 개창자가 되는 카메하메하 1세의 이야기다.

하와이 왕국을 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와이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출처: tatyanachanel 블로그

하와이 여러 부족장 중 한 명의 아들로 태어난 카메하메하는 가장 빠르게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소유자였다. 당시 빅아일랜드 최대 부족이었던 족장 알라파이의 궁정에서 관료로 일하던 그는 알라파이 사후 점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 가며 다른 빅아일랜드 부족장들의 지지 속에 빅아일랜드 전체를 자신의 통제 하에 넣으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야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서양의 무기와 기술이 들어왔다.

머스킷총을 구입하고 병사들에게 운용법을 훈련시켰으며, 영국 선원들을 군사고문으로 임명해 전체적인 조련을 맡겼다. 서양식 전함의 건설 또한 카누 중심으로 움직이던 하와이 제도의 제해권을 뒤집을 새로운 요소였고, 여기에 대포까지 포함되면서 카메하메하 1세의 군대는 좀처럼 넘기 힘든 거대한 벽으로 다른 부족장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1791년 사촌이었던 케우아 쿠아훌라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카메하메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유일한 통치자로 군림한다. 이후 지속적인 군대와 조직의 근대화를 거친 그는 1795년부터 마우이 섬과 오하우 섬의 정복에 나섰고, 마침내 1810년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적대 세력이었던 카우아이의 족장 카우무알리가 그의 현대화된 군대를 보고 별다른 저항 없이 수하로 복속하게 되면서 하와이 최초의 통일 왕조인 카메하메하 왕조가 들어서기에 이른다.

 

근대왕국의 성립과 몰락이 존재했던 하와이의 역사

하와이 제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카메하메하의 치적은 단지 군사적 역량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군주제 국가가 없었던 하와이에 중앙집권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단지 군사적 통일 뿐 아니라 제도와 도량형, 문화와 경제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카메하메하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빠르게 제도 개혁에 손을 대었다.

폴리네시아 특유의 식인과 같은 행위가 금지되었고, 성문법을 제정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법 체계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부러진 노의 법’ 이라는 유명한 법률이 등장하는데, 전시에도 노인과 여성, 어린이와 같은 약자가 항시 보호되어야 함을 못박은 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워낙 인구밀도가 낮아 인적 자원이 대륙에 비해 더욱 소중했을 제도 중심 국가에서 이 법의 이유는 조금 더 남달랐을 것이다. 하와이 통일은 이렇게 여러 가지 사회제도적 측면에서의 개선을 이뤄 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단지 서구의 화약무기 유입과 같은 단편적인 맥락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1893년 하와이 왕국은 멸망한다. 사진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친위대가 무장해제되는 모습이다. 이후 하와이 공화국이 잠시 있었지만 곧 미국에 합병된다. ⓒwikimedia

그러나 뒤늦게 세워진 왕조는 그리 오래 가기는 어려웠다. 제국주의 시대 미국의 확장정책을 맞은 하와이 왕국은 곧바로 미국의 함포외교 아래 포획당했고, 제 50번째 주로 미국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비록 길지 않은 왕조의 역사였지만, 단지 관광지로만 여겨지던 하와이 또한 엄연히 근대적 국가가 존재했던 땅이었고 상당한 수준의 왕국 발전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은 자칫 하와이로 휴양을 떠나는 우리에겐 쉽게 잊혀지곤 하는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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