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트체크] 실내 동물원에 '갇힌' 사자...법 사각지대?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4.07 09: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해 도심을 활보하다 붙잡혀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 얼룩말 ‘세로’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후 세로가 부모를 잃고 캥거루와 싸우는 등 방황을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동물원 측은 세로를 위해 암컷 짝을 만들어주고, 울타리를 더 높이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야생동물을 가둬놓고 전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최근 SNS에서 대구의 한 실내 동물원의 열악한 상황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게시글에는 '대구 실내동물원 끔찍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글과 함께 백사자 한 마리가 유리 벽에 갇혀 힘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이 첨부됐다.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이런 좁은 공간에, 햇볕 하나 안 드는 조명 밑에 사자를 가둬놓고 돈을 받는 곳이 있다”며, “작은 구멍으로 음식을 집어넣고 저 큰 야생동물이 힘없이 핥아먹는 것을 즐기며 입장권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커피숍만 한 공간만 있어도 이런 장사를 해대는데 야생동물전시 규제법이 없나?"라며 분노했다. 해당 게시글은 현재 177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야생동물전시 규제법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봤다.

 


◆2016년 ‘동물원법’ 제정됐지만… “태부족”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5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동안 국내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 조항이 없었다. 때문에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박물관의 한 종류나 공원시설로 분류돼 왔다. 이후 전시동물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잇따르자, 장하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 제정안’이 3년간의 국회 계류 끝에 통과된 것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상당수 내용이 축소되거나 빠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동물원 또는 수족관을 운영하려는 자는 해당 소재지의 시도지사에게 시설의 명칭, 소재지, 전문인력의 현황 등을 ‘등록’만 하면 해당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보유 생물에 대해 생물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적정한 서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적정한 서식 환경’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고 이를 어길시 과태료나 벌칙도 없다.

 

환경부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
환경부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

심지어 야외 방사장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규정이 빠지면서, 무분별한 실내 동물원 등록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환경부가 2020년 12월에 내놓은 조사에 따르면, 법 제정 이후 오히려 실내 동물원의 숫자는 12개에서 46개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식 등록을 하지 않고 야생동물 전시 및 체험 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희귀·멸종위기 야생동물 사육 규정도 모호

해당 실내동물원 홈페이지 갈무리
해당 실내동물원 홈페이지 갈무리

 

논란이 된 동물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에는 백사자, 포큐파인, 긴팔원숭이, 자카스펭귄,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서벌캣 등 다양한 희귀 야생 동물 100여 종이 총 3500마리 이상 전시돼 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중 일부에 대해 사육 면적 등 설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동물원이 보유 중인 동물 중 백사자의 경우, 마리당 사육면적은  넓이 14㎡, 높이 2.5m이며, 알락꼬리 원숭이는 마리당 넓이 5.3㎡, 높이 3m의 사육 면적을 보장해야 한다. 한 마리가 추가될 때마다 35%씩 면적을 넓혀야 한다. 해당 규정만 지키면 멸종위기 동물도 사육이 가능했던 것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3조의7 관련 사육시설 설치기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3조의7 관련 사육시설 설치기준

문제는 이렇게 면적을 규정한 동물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면적 외에 이들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사육 환경에 대해서는 규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규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면적이 야생 동물에게 충분하지 않고, 동물원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체험 금지, 허가제 전환”… 동물원법 개정

현행 동물원법이 사육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섰다. 결국 지난해 11월, 동물원과 수족관을 기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해당 법안은 공포 후 1년 뒤인 올해 12월 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동물원과 수족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식환경과 전문인력, 보유 동물의 질병 및 안전관리 계획, 휴·폐원 시 동물 관리계획을 갖춘 뒤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미 등록된 동물원은 6년 이내에 허가 기준을 갖춰야 한다.

또한, 동물을 동물원·수족관 외 장소로 이동해 전시하는 이른바 ‘이동식 동물원’이 금지되고,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공포·스트레스를 가하는 올라타기·만지기·먹이주기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문제가 된 대구 실내동물원 네이버 이미지 검색 결과
문제가 된 대구 실내동물원 네이버 이미지 검색 결과

 

이와 함께 국회에선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의결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수공통감염병 전파 가능성이 작은 종이나 공익 목적 시설 외에 동물원과 수족관이 아닌 곳에서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게 금지된다. 현재 동물원·수족관이 아니면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사업자에는 5년간 유예기간이 부여된다.

이 밖에도 전시하면 스트레스 등으로 폐사하거나 질병에 걸릴 우려가 있는 종은 동물원·수족관이 보유할 수 없도록 했고, 법정 관리 야생동물에 해당하는 동물이 아닌 야생동물을 '지정 관리 야생동물'로 묶고 수입을 금지한 뒤 안전성이 입증된 야생동물만 백색목록에 올려 수입을 허가하는 '백색목록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문제들이 대다수 정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은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관건은 앞으로 개정안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여부”라며 “동물원 허가 시 필요한 안전관리나 전문 인력 기준 등이 앞으로 하위 법령 정비 과정에서 다뤄질 텐데,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게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자체에서도 현장에서 제대로 개정안이 적용되기 위해 적극적인 지도와 홍보가 필요하다”며 “시행 이후에는 관리·감독 주체로서 지자체가 지속적인 지도점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기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상 등록 기준을 갖춘 실내 동물원에서의 야생동물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운영은 가능하다. 다만, 해당 법률이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지난해 말 개정돼 올해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먹이주기 등 동물 체험이 금지되고, 등록만으로 운영이 가능했던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허가를 위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또한, 그동안 등록을 하지 않고 야생동물을 전시해온 시설의 운영도 금지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