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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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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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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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해 '후쿠시마 방사능 지도'를 그리다] ⑧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소송 원고단장 이토 타츠야씨 인터뷰

2020년 한국 국가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합니다. 원전사고 지역에서 약 67km 떨어진 후쿠시마 아즈마 스타디움에서도 경기가 열립니다. 한국 응원단 역시 이 지역을 방문해야 합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이후 최근까지 수 많은 한국 언론의 후쿠시마 방사능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8년째 똑같은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봐서는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후쿠시마 주요 지점 방사능을 직접 측정해 방사능 지도를 그렸습니다. 이 기사와 지도가 한국 국민과 정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입니다.

[모두를 위해 '후쿠시마 방사능 지도'를 그리다] 시리즈

"그래서, 후쿠시마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하다는 거야?"

JTBC는 왜 일본시민단체로부터 '방사능 편파보도' 항의를 받았나

③ 사고 5km 이내 높은 수치...후쿠시마 경기장 방사선은 '보통'

후쿠시마 음식 37개 측정...전체 방사선 이상 없어

⑤ '후쿠시마 방사능' 위험지역과 안전지역을 확인하다

⑥ "문제 없다"와 "끝났다" 사이에 '후쿠시마의 진실'이 있다

⑦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는 암이 아니다. 공동체와 산업의 파괴다"

⑧ "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우려"

⑨ "일본 방사능 데이터 은폐는 불가능하다. 민간에서 끊임없이 조사하기 때문"

⑩ [기고] 시민들이 측정해 만든 '일본 방사능 지도' 어디까지 믿을수 있나?

⑪ [팩트체크] 일본정부가 원전사고 뒤 방사능 기준치를 낮췄다?

⑫ 방사선 안전기준치와 선량한도치는 100배 차이가 난다

⑬ [팩트체크]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11배 큰 원전사고다?

⑭ [팩트체크] 후쿠시마 사고 후 도쿄전력 임원들 해외도피?

⑮ [팩트체크] ‘먹어서 응원하자’ 참여한 일본연예인 피폭?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현관의 문은 깨지고 / 냉장고의 도어는 뒤틀리고 / 테이블은 뒤집어지고 / 방의 칸막이는 떼어지고 / 책장은 쓰러지고 / 책들은 너덜너덜 / 방이라는 방은 발 딛을 자리도 없네

짐승들이 점령한 집이 된지 오래 / 아아, 그날 그때가 없었더라면하며 / 올해도 고향을 뒤로한다

마디마디에서 망향의 애한이 배어나오는 이 글은 문예지이와키 문학(3420199, 일본민주주의문학회 이와키 지부 발행)에 실린올해도 고향을 뒤로한다의 일부다.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에 거주하는 작가(소노베 아키라)2018423일 오쿠마초를 방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버려진 지인의 고향집 풍경을 적었다. 물론 그가 사는 이와키 시 주민들도 재난의 직접 피해자인 것은 다르지 않았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일, 미야기 앞바다와 이바라키 앞바다의 진원지 사이에 위치한 이와키 시에 진도 4이상의 지진동이 310초간 이어졌다동일본대지진이 관측된 지진계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북동부에는 국지적으로 진도 7규모의 지진동이 있었다. 지진동과 지진해일로 전파반파된 가옥은 4만 채 이상으로 센다이 시의 뒤를 잇는 규모였고, 지진해일과 산사태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00명을 넘어섰다. 악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이와키 시 북부가 옥내 대피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일상의 파괴를 의미하는 외출제한, 하지만 인구는 도리어 늘어났다 역사적경제적 연관성이 강한 후타바군 등에서 24천 명(20134월 현재)의 이재민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상정외(想定外)”라는 표현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상황. 혼돈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후쿠시마의료생활협동조합 와타리병원에서 첫 인터뷰를 진행한 다음날 아침. 이와키시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뉴스톱후쿠시마 특별취재팀(이하취재팀”)의 모두는 말이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흉흉한 이미지나 선량을 나타내는 낯선 단위 기호(unit symbol) 뒤에 가려진주민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여기에 한일 양국 정부 간 갈등으로 국민감정이 고조되었을 당시, ‘역병으로서의 방사능이라는 이미지에 인종혐오가 덧씌워진 데마고기로 온라인에 넘쳐나던 헤이트스피치의 기억이 침묵의 심도(depth)를 더해주었다.

지역 고교 교사, 지방의원 등을 거쳐 2003년 은퇴 이후 사회운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토 타츠야 씨(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필두대표위원이와키 시 하마도리의료생활협동조합 고문)와의 만남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역 고교 교사, 지방의원 등을 거쳐 2003년 은퇴 이후 사회운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토 타츠야 씨는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필두대표위원이자 이와키 시 하마도리의료생활협동조합의 고문을 맡고 있다.
지역 고교 교사, 지방의원 등을 거쳐 2003년 은퇴 이후 사회운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토 타츠야 씨는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필두대표위원이자 이와키 시 하마도리의료생활협동조합의 고문을 맡고 있다.

 

취재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만나 뵈러 오기 전까지, 우리는 사고를 전후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둘러싸고 존재했던 주민들의 활동상을 전혀 몰랐습니다. 우선 이 부분에 관한 설명부터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토 타츠야

주민 다수가 참여하는 활동과 제 개인적 활동으로 구분해서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우선 저는 19721973, 그러니까 현재를 기준으로 근 50년 전부터 원전 문제에 관여해왔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지어져 1972년 경 가동되었는데, 1원전이 생길 때만 해도 후쿠시마 주민의 문제의문제기, 혹은 반대가 표면화되지는 않았어요. 2원전 입지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쉽게 건설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원전이 사고를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요. 결국 제2원전 입지 공사가 시작되자 401명의 원고들이 모여 소송을 제기했지만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재판 이후 후쿠시마 현에원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 연락회라는 주민단체가 생겼습니다. 그 밖에도 몇 개의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저는 원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 연락회의 일원으로 원전에 대한 요망요구 활동을 벌이는 한편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관련한 도쿄전력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대해 도쿄지방재판소가 무죄를 선고하자 부당판결 플랜카드를 들고 항의하는 시민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홈페이지(http://genpatu.com/)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관련한 도쿄전력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대해 도쿄지방재판소가 무죄를 선고하자 부당판결 플랜카드를 들고 항의하는 시민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2011년 사고 이전에도 크고 작은 원전 사고 줄을 이어"

취재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전에도 작은 사고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이토 타츠야

1원전과 제2원전에 총 10기의 원자로가 있는데 여러 번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크고 작은 규모의 여러 가지 사고였는데요. 위기일발의 상황도 있었어요. 2원전 3호기에서 심장부의 재순환펌프가 고장 나는 사고는 물론, 제가 아는 것만 지진으로 여덟 번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도쿄전력과 정부에 원인규명을 촉구하고, 미리 손을 써야한다고 경고했는데 귀 기울이지 않더군요.

다수의 주민들 사이에는 안전신화가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불안해하는 사람은 언제나 일정한 비율로 존재했고, 원전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취재팀

기억하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원전 사고 직후의 상황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토 타츠야

사고가 일어난 직후인 312일 오후 5시 경 첫 번째 피난 주민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나라하마치의 하야카와 토쿠호라는 승려로, 제가 부대표를 맡고 있는 후쿠시마 연락회의 대표인데요. ‘모두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달려온 겁니다. 둘이 만나자마자 꺼낸 이야기가올 게 왔다는 거였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그토록 경고했건만 결국 이런 일이 벌어져 정말 유감스러웠습니다. 매순간 펼쳐지는 참상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괴로워했어요.

당시 하야카와 씨는 12명의 의지할 데 없는 장애인 분들을 데려왔습니다. 이와키 시에서도 대피 권고가 내려지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이곳에도 가족들과 단절된 13명의 장애인 분들이 계셨으니까요. 그렇게 모인 25명과 같이 TV를 보는데 체르노빌과 원전 사고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전에 두 번 체르노빌에 다녀왔거든요. 의논 끝에 하야카와 씨와 머물러 있기로 하고 집 옆에 마련돼 있던 작업장과 사무실 등을 수용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취재팀

이와키 시라고 해서 딱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토 타츠야

물론 이곳에서 사태를 지켜보기로 한 게 과연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갈등도 되었습니다. 사고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규정하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소속되어있는 원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 연락회 사무실에 방사선 측정기를 들여올 수 없어 사고 발생 10일 경과 시점까지 방사선 수치 측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통을 차단당했거든요. 도쿄 도와 인근 이바라키 현 까지는 괜찮았지만 이곳 이와키 시는 원전과 가까운 곳이라 구호물자가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겁니다. 아는 운송회사 기사님께 따로 부탁해서 측정기를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민 60% 이상이 원전 반대"

취재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주민여론은 확실하게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이토 타츠야

원전은 필요하다, 찬성한다던 사람들조차 원전이 사고를 일으키면 후쿠시마가 날아가 버릴 만큼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으니까요. 국민 대다수도 이런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여론조사를 하면 60퍼센트 이상이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지요. 따라서 탈원전 운동도 힘을 받는 상황이고요. 도쿄에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책임자를 맡고 있는 원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 연락회도 이 원전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의 가맹단체입니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원전을 없애고 재가동을 중단시키자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모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난 8년간 쉬지 않고 운동에 앞장서 왔고요.

이토 타츠야 씨가 필두대표위원을 맡고 있는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는 현재도 매주 금요일마다 총리관저 앞 시위를 진행한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홈페이지(http://genpatu.com/)
이토 타츠야 씨가 필두대표위원을 맡고 있는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는 현재도 매주 금요일마다 총리관저 앞 시위를 진행한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취재팀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의 주민 이주 상황은 어땠습니까? , 현재 돌아오신 분들은 얼마나 되나요?

이토 타츠야

후쿠시마 현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 피난 지역에 약 147천 명 정도가 계셨는데 그중 현 시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신 분들이 약 5만 명, 3분의 1 정도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피난 중이던 분들 가운데 이른바피난에 따른 관련사로 숨진 분들이 2,279명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진해일로 돌아가신 분들의 사인을직접사라고 하는데 1,605명이죠.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따른 피난상황으로 몸 상태가 나빠지거나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고독사가 70명에 자살도 103명에 달합니다. 장기피난이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거지요.

이밖에도 자주(自主) 피난이라고 해서 피난 지시 구역 밖의 사람들도 얼마 전까지 8만 명 정도 있었습니다. 그중 몇 분이나 돌아오셨는지 정부도 행정당국도 통계수치를 발표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헤아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 인상 줄 것"

취재팀

도쿄올림픽의 일부 경기가 후쿠시마에서 열릴 예정인데요.

이토 타츠야

후쿠시마 주민 전체를 놓고 보면 올림픽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작다고 생각합니다. , 후쿠시마 현 내에서 어떠한 행사를 진행하면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올림픽을 이용해서 후쿠시마 현이 멋지게 부흥되었으며,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완전히 종식됐다는 식의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절대 이런 식으로 올림픽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국민들조차 일의 본질을 모르게 되고 국제적으로도 그렇게 될 테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고 수습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진정한 부흥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J 빌리지라 불리는 축구 주경기장에서 성화 봉송이 진행됩니다. 이것이 후쿠시마 현에 북돋워주는 일면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것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식으로 사실을 은폐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데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런 캠페인이 이미 시작되었고요.

 

취재팀

국가의 책임 방기와 연관되는 말씀이신데, 도쿄올림픽이 후쿠시마 부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토 타츠야

일부에서 경기장을 준비하거나, 전국적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방문할 테니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의도 하에 올림픽을 겨냥한 미화작업을 진행하거나, 건물을 짓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제한적인 이야기이며, 실상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상점가는 궤멸상태, 거주지도 황폐화된 채 버려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제 처가가 나미에마치에 있는데요. 원래 21천명이 살던 동네에 현재 몇 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저녁이 되면 사실상 거리가 텅 비어버려요.

후쿠시마 현에서 오랫동안 주민의 생활을 지탱해온 기초는 농업, 임업, 수산업과 같은 1차 산업이었습니다. 이것이 원전사고로 인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공중에 방출되고 지면에 떨어지는 환경오염은 1차 산업에 치명적이니까요. 현재 농업이나 임업은 311 이전과 비교할 때 8할 정도가 복구되었습니다. 하지만 연안 어업의 어획량은 (이전의) 1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다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데 심각한 건, 곧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데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어업 기술을 가진 후계자가 얼마나 될지조차 위태롭고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거지요.

 

취재팀

그렇다면 후쿠시마 부흥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토 타츠야

생활의 부흥입니다. 일터를 빼앗긴 분들도 많지만, 설령 새로운 일을 구했을 지라도 수입이 줄어든 분들이 많습니다. 피난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지역도 농업, 임업, 어업이 영향을 받거나, 옛날처럼 현지의 생산품이 팔리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는 이를 동일본대지진 이전으로 되돌림으로써 후쿠시마 주민들의 생활을 재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도쿄전력이 법적책임 인정하고 배상하도록 소송중"

취재팀

(원전 사고 피해의 완전 배상을 요구하는) 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단장을 맡고 계신 것도 그런 맥락인가요.

이토 타츠야

그렇습니다. 이 원고단에는 10,574명의 이와키 시민이 참가하고 있는데, 목표는 정부와 도쿄전력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입은 다양한 피해에 대한 보상배상 요구입니다.

 

취재팀

정부가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뭘까요.

이토 타츠야

국가가 이번 사고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겁니다. 이는 소송을 진행해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쿄전력도 정부도 도의적인 책임이라면 몰라도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특별히 잘못은 하지 않았다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도쿄전력은 원전을 추진해왔고, 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말해왔거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토 타츠야 씨는 근 50년 전부터 지역의 원전이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위험성을 경고하며 조사를 진행해왔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홈페이지(http://genpatu.com/)
이토 타츠야 씨는 근 50년 전부터 지역의 원전이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위험성을 경고하며 조사를 진행해왔다. 출전: 원전 문제 주민운동 전국연락센터

 

"한국도 사고 발생 뒤 원전 없애겠다고 하면 늦는다"

취재팀

마지막으로 후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얻은 교훈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토 타츠야

피폭자의 한사람, 심한 피해를 입은 이와키 시민, 후쿠시마 주민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다시 말해, 과혹사고(severe accident)의 피해를 입기 전에 원전을 없애는 것이 하나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온 세계에도, 한국에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를 일으켜 몹시 고통 받고, 손해를 보고 나서 한국도 원전을 없애겠다고 하면 늦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정부가 재가동을 열심히 추진 중인데, 이를 즉각 중단시키고 다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12개 도현의 원전을 전부 없애야합니다. 다른 하나는 원전 문제를 에너지 문제나 경제 문제에만 국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윤리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윤리 문제를 중시해서 탈원전을 결정했지만, 나라마다 이렇게 심각한 피해,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초래하는 원전을 단순히 에너지가 부족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추진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를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주민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그리고 한국의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약 2.5킬로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가옥. 주변이 아직까지 귀환곤란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까닭에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당시 소개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촬영: 취재팀 박강수)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약 4킬로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가옥. 주변이 아직까지 귀환곤란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까닭에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당시 소개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촬영: 취재팀 박강수)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이동해야 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취재팀을 배웅하며 마지막 인터뷰가 예정된 도쿄로 향하는 길을 설명하던 이토 씨에게 물었다. 정말 생활을 되돌릴 희망은 있는 거냐고.

이토 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사회적 환경을 원래대로 회복해 생활이 가능하도록 여전히 실직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일자리는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해변으로, 가을에는 버섯을 따러 다니던 모습을 보기 힘들어지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현실을 되돌리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때쯤 필설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이 전해져왔다. 어느새 취재팀은 삶의 황혼에서 수 십 년 세월을 돌이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기를 빌고 있었다. 이토 씨 자택 인근 희망의 숲 복지회 식당에서 하루 일을 시작하던 25명 중 몇 사람이 미소로 인사를 건넨 것은 바로 그 때다.

 

*후쿠시마·도쿄 방사능 특별취재팀: 김준일·송영훈·지윤성·홍상현·강양구·김성수·박강수
*취재에 도움을 준 단체: 일본 최대 진보언론 <신문 아카하타>, 일본 방사능 측정 시민단체 <세이프캐스트>, 방사능 측정장비 기업 <램텍><써모피셔사이언티픽>

이 인터뷰는 일본 최대 진보매체신문 아카하타 편집국의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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