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후쿠시마 사고 후 도쿄전력 임원들 해외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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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후쿠시마 사고 후 도쿄전력 임원들 해외도피?
  • 박강수 팩트체커
  • 승인 2020.01.0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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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사능 루머 팩트체크 ③

2020년 한국 국가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합니다. 원전사고 지역에서 약 67km 떨어진 후쿠시마 아즈마 스타디움에서도 경기가 열립니다. 한국 응원단 역시 이 지역을 방문해야 합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이후 최근까지 수 많은 한국 언론의 후쿠시마 방사능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8년째 똑같은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봐서는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후쿠시마 주요 지점 방사능을 직접 측정해 방사능 지도를 그렸습니다. 이 기사와 지도가 한국 국민과 정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입니다.

[모두를 위해 '후쿠시마 방사능 지도'를 그리다] 시리즈

"그래서, 후쿠시마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안전하다는 거야?"

JTBC는 왜 일본시민단체로부터 '방사능 편파보도' 항의를 받았나

③ 사고 5km 이내 높은 수치...후쿠시마 경기장 방사선은 '보통'

후쿠시마 음식 37개 측정...전체 방사선 이상 없어

⑤ '후쿠시마 방사능' 위험지역과 안전지역을 확인하다

⑥ "문제 없다"와 "끝났다" 사이에 '후쿠시마의 진실'이 있다

⑦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는 암이 아니다. 공동체와 산업의 파괴다"

⑧ "도쿄올림픽 후쿠시마 경기, 원전사고 종식되었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우려"

⑨ "일본 방사능 데이터 은폐는 불가능하다. 민간에서 끊임없이 조사하기 때문"

⑩ [기고] 시민들이 측정해 만든 '일본 방사능 지도' 어디까지 믿을수 있나?

⑪ [팩트체크] 일본정부가 원전사고 뒤 방사능 기준치를 낮췄다?

⑫ 방사선 안전기준치와 선량한도치는 100배 차이가 난다

⑬ [팩트체크]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11배 큰 원전사고다?

⑭ [팩트체크] 후쿠시마 사고 후 도쿄전력 임원들 해외도피?

⑮ [팩트체크] ‘먹어서 응원하자’ 참여한 일본연예인 피폭?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9월 19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도쿄전력 경영진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공판이 시작된 지 2년 3개월여만의 결론이다. 죄목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2008년 쓰나미로 인한 원전 위험성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원전 운영에 조치를 취하지 않아 2011년 사고 당시 발전소 인근 병원 등 입원환자 44명을 숨지게 한 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기소장의 골자다.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첫 형사재판이다.

2012년 첫 고소가 이루어진 이래 검찰이 두 번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를 검찰심사회에 의뢰해 강제기소하며 시민들이 끌고 왔다. 재판부는 "경영진에서 쓰나미 대비 조치를 내렸다고 해도 사고 전에 완비됐을 가능성이 분명치 않고 사고를 피하기 위해 원전 운전을 멈추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 3명은 도쿄전력의 가쓰마타 쓰네히사 전 회장, 다케쿠로 이치로 전 부사장,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가쓰마타 전 회장 등을 비롯한 도쿄전력 임원진이 사고 이후 가족과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오늘의 유머, 뽐뿌, 에펨코리아,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루리웹 등 다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같은 형식과 내용의 글이 발견된다. 특히 위 판결이 내려지기 약 두 달 전인 7월 20일을 전후해 왕성하게 유포된 정황이 있다. 당장 해외도피 중인 사람이 재판에 출석해 선고를 받았다는 점과 어느 한국 언론도 도피 관련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도쿄전력의 임원들은 일본 땅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했을까. 뉴스톱에서 이 소문을 추적했다.

한국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된 '도쿄전력 임원 해외도피' 게시물
한국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된 '도쿄전력 임원 해외도피' 게시물

 

유포된 사진과 이름부터 맞지 않아

해외도피 소문을 나르는 게시물들은 일정한 내용과 형식을 공유한다. 도쿄전력 임원진 중 다섯의 사진이 상단에 병치되어 있고 그 밑으로 6개의 이름과 사고 이후 도쿄전력에서 사임하고 낙하산 인사 등으로 맡게 된 새 직책, 그리고 “현재, 가족과 함께 해외거주”라는 문구가 빠짐없이 첨가되어 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다음과 같다.

가쓰마타 쓰네히사(勝俣恒久)전 회장, 시미즈 마사타카(水正孝)전 사장, 다케이 마사루(武井優)부사장, 미야모토 후미아키(宮本史昭)상무, 기무라 시게루(木村滋)이사, 후지와라 마키오(藤原万喜夫)감사. 마지막 후지와라 마키오를 제외한 다섯은 사진도 함께 돌고 있다. 문제는 이 중 일부의 사진과 이름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게시물에 포함된 도쿄전력 임원들 사진으로 왼쪽부터 가쓰마타 쓰네히사(勝俣恒久)전 회장, 시미즈 마사타카(清水正孝)전 사장, 다케이 마사루(武井優)부사장, 미야모토 후미아키(宮本史昭)상무, 기무라 시게루(木村滋)이사라고 써 있다.
게시물에 포함된 도쿄전력 임원들 사진으로 왼쪽부터 가쓰마타 쓰네히사(勝俣恒久)회장, 시미즈 마사타카(清水正孝)사장, 다케이 마사루(武井優)부사장, 미야모토 후미아키(宮本史昭)상무, 기무라 시게루(木村滋)이사라고 써 있다.

가운데 인물사진 상단에는 ‘다케이 마사루 부사장(武井優副社長)’이라고 적혀 있으나 이 인물은 사실 무토 사카에(武藤榮) 부사장이다. 무토 부사장은 기소된 경영진 3명 중 한 사람으로 2008년 쓰나미 위험성 관련 보고가 있었던 간부 회의의 주요 참석자다. 반면 다케이 마사루 전 부사장은 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에 해당한다.

왼쪽은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의 사진이고 다케이 마사루 전 부사장은 오른쪽 사진 인물 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람이다. 아사히 신문 기사 캡처.
왼쪽은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의 사진이고 다케이 마사루 전 부사장은 오른쪽 사진 인물 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람이다. 아사히 신문 기사 캡처.

또한 다섯 사진 중 맨 오른쪽 인물은 적혀있기로는 ‘기무라 시게루 이사(木村滋取締役)’지만 실은 이시다 토오루(石田徹)라는 사람이다. 이시다 토오루는 2010년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 장관에서 퇴임해 2011년 1월 1일 도쿄 전력 고문으로 취임했으며 후쿠시마 사고 후 한 달여만인 4월 18일 사퇴했다. 기무라 시게루 전 이사는 아래 사진 속 인물로 추정된다.

왼쪽은 이시다 토오루 전 자원에너지청 장관이고 오른쪽이 기무라 시게루 전 이사다. 일본어 블로그 캡처.
왼쪽은 이시다 토오루 전 자원에너지청 장관이고 오른쪽이 기무라 시게루 전 이사다. 일본어 블로그 캡처.

 

출처는 일본인 발명가 이이야마 이치로의 개인 홈페이지

이러한 사진 속 인물과 이름 사이 혼선은 번역 및 편집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 임원들이 사고 후 책임을 팽개치고 해외에서 유유자적 중이라는 주장은 일본에서 먼저 돌았다. 2013년 9월경 일본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사진만 없다 뿐 한국에 퍼진 게시물과 똑 같은 내용이 써있다. 위 글들을 접하고 게시물 속 인물들이 새로 부임한 곳에 직접 연락해 사실 확인을 시도한 블로거도 있다. 2013년 11월 26일에 올라온 이 블로그 글의 결론은 “낙하산 인사는 사실이지만 해외 도피는 헛소문”이라는 것이다.

일련의 일본어 게시물과 일부 한국어 게시물에서 출처로 지목된 곳은 ‘이이야마 이치로의 LittleHP’라는 개인 홈페이지다. 시사 이슈 관련 글을 모아놓은 ‘てげてげ(테게테게)’라는 항목에 문제의 원본 게시물이 있다. 2013년 8월 9일자로 올라온 해당 글에는 자극적인 ‘WANTED’ 간판과 함께 가쓰마타 전 회장과 시미즈 전 사장의 사진이 있고 앞선 글들과 같이 도쿄전력 임원 6명의 퇴임 후 부임 직책과 해외 도주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무기징역을 받아 지금쯤 형을 살고 있어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실제로는 전부 바다 건너편으로 도망갔다”고 이이야마씨는 써두었다. 사실의 출처나 본인의 취재 여부는 나와 있지 않다.

가쓰마타 전 회장(아래쪽 사진 중 왼쪽)과 시미즈 전 사장(오른쪽)의 사진과 함께 도쿄전력 임원들이 처벌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캡처.
가쓰마타 전 회장(아래쪽 사진 중 왼쪽)과 시미즈 전 사장(오른쪽)의 사진과 함께 도쿄전력 임원들이 처벌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캡처.

홈페이지의 주인인 이이야마 이치로는 유산균 배양 장치 등을 개발한 발명가로 알려져 있으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유산균을 섭취하면 방사선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여 트위터 등에서 화제를 낳았다. 관련 연구를 지속해 온 것으로 보이며 2018년 7월 20일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망 후 올해 초에는 유고집 격인 ‘김정은 통일조선 왕이 되다!! – 이이야마 이치로 최종 강의(金正恩が統一朝鮮王になる!!―飯山一郎最終講義)’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홈페이지에도 간간히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의 급진적인 주장과 행보로 미루어보아 홈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대문과 그의 부고 소식.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캡처.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대문과 그의 부고 소식. 이이야마 이치로 홈페이지 캡처.

 

절반의 사실에 섞어 넣은 ‘가짜뉴스’

열거된 도쿄전력 임원들의 실거주지를 확인하지 않는 한 이 주장을 100%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일본 언론도 관련 기사를 내지 않은 점과 출처의 신빙성 등을 고려할 때 근거 없는 낭설에 가까워 보인다. 가쓰마타 전 회장의 경우에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현주거지가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라는 서술이 있으나 출처는 모 황색지이다. 해외 도피 소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닛칸 겐다이’의 반박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9월 도쿄지방재판소 선고심에 출석했다.

많은 거짓말과 가짜뉴스가 그러하듯 이이야마 이치로의 ‘도쿄전력 임원 해외도피’ 주장에도 절반의 사실이 섞여 있다. 임원진 다수가 퇴임 후 에너지 관련 회사에 부임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의 2012년 6월 26일자 기사를 보면 가쓰마타 회장은 일본원자력발전 주식회사에, 다케이 마사루 부사장은 아라비아석유공사에, 미야모토 후키아키 상무는 닛폰필드엔지니어링에, 기무라 시게루 이사는 전기사업연합회에, 후지와라 마키오 감사는 간토정기공사에 각각 사외이사나 감사, 사장으로 부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소문 속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이야마씨는 이러한 뉴스 속 정보를 가져와 ‘가족과 해외 주거 중’이라는 글귀만 얹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엉터리 편집을 거쳐 잘못된 사진과 한국에 퍼졌다. 이이야마씨의 글이 올라온 것은 2013년 8월 9일이다. 한국에서는 나무위키의 전신 격인 리그베다위키에 같은 내용이 가공돼 실리면서 ‘2013년 8월 8일 기준’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재난 이후에는 언제나 유언비어와 혼란이 뒤따른다. 이 거짓 정보들은 재난 수습과 진상 파악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실제 도쿄전력 경영진을 형사법정에 세운 것은 ‘해외도피’와 같은 한가한 루머가 아니라 일본 시민들의 끈질긴 실천이었다. 재판은 항소심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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