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⑥ 앤디 워홀 명언 추적기

  • 기사입력 2019.12.17 10:30
  • 최종수정 2021.01.27 18:25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

-앤디 워홀

 

용례

미국의 예술가 앤디 워홀의 말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 산업에 대한 조소 같기도 하고 현대 예술에 대한 선동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앤디 워홀의 작품들, 캠벨 수프캔이나 실크스크린의 마릴린 먼로만큼이나 유명하다. KBS, 한국경제신문, 중앙일보, 주간경향, GQ코리아 등 매체에서 다채롭게 인용되었다. ‘똥을 싸도’라는 표현 탓인지 인용문의 뉘앙스는 언제나 감탄과 조롱 사이를 오간다. 2015년 6월 지드래곤이 현대미술작가들과 협업해 전시회를 열자 이를 두고 ‘똥을 싸도 박수 받는 지드래곤’이라는 제목을 한 취재수첩 형식의 기사가 실렸다. 몇 달 뒤 지드래곤은 빅뱅의 노래 ‘쩔어’에서 “막 똥을 싸도 박수갈채를 받지(Yes, I’m famous)”라는 가사로 위 기사를 되받았다.

유튜브 'BIGBANG(GD&T.O.P) - 쩔어(ZUTTER) M/V' 장면 캡처. 해당 노랫말에서 지드래곤은 앤디 워홀의 명언으로 알려진 문장을 비틀어 인용했다.
유튜브 'BIGBANG(GD&T.O.P) - 쩔어(ZUTTER) M/V' 장면 캡처. 해당 노랫말에서 지드래곤은 앤디 워홀의 명언으로 알려진 문장을 비틀어 인용했다.

 

실상

앤디 워홀의 말이라는 근거가 없다. 이 명언의 원문(이어야 하는)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이 실린 영어권 자료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구글 검색 결과 영어 문장이 쓰인 가장 오래된 게시물은 2013년 것으로 네이버 블로그 글이다. 순수한 ‘한국산’ 명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로 검색을 해보면 이 명언을 앤디 워홀의 말로 소개하는 글보다 ‘알고 보니 앤디 워홀의 말이 아니더라’라는 내용을 담은 글이 더 많이 나온다. 이 중 문장의 출처나 기원을 명시한 게시물은 없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고, 영어 문장을 쳐도 한국어 글만 나오고, 어쩌다 와전된 모양’이라는 설명뿐이다. 네이버 검색 결과 이 명언을 워홀의 것으로 소개하는 게시물은 2012년부터 발견된다. 출처는 오리무중이다.

앤디 워홀이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제작한 '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 연작. 캔버스 표면에 금속성 연료를 취하고 그 위에 오줌을 누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이팅에 대한 패러디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워홀의 작품 활동이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라는 문구가 그의 것으로 굳어지는 데 일정 부분 기여를 했을 것이다.
앤디 워홀이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제작한 '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 연작. 캔버스 표면에 금속성 연료를 취하고 그 위에 오줌을 누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워홀의 작품 활동은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라는 문장을 스스로 실현한 것처럼도 보인다.

 

한편 이 문장의 원류가 워홀의 또 다른 명언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안에 유명해질 것이다”에 있다고 말하는 기사들이 있다. 이 문장의 원래 버전은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해 질 것이다(In the future everybody will be world famous for fifteen minutes)”이다. 명언 팩트체크 사이트 쿼트 인베스티게이터(Quate investigator, 이하 QI)에 따르면 이 격언은 1968년 앤디 워홀의 전시가 열렸던 스톡홀름 근대 미술관의 카탈로그에 실렸고 그보다 앞서 한 해 전 타임지에 워홀의 말로 인용된 바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말의 저작권이 일부 앤디 워홀 팩토리의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나단 핀켈스타인(Nathan Finkelstein)에 있다고 설명한다. 1966년 앤디 워홀과 사진을 찍으려 사람들이 몰리자 워홀이 ‘모두들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는 투의 말을 했고 이에 대해 사진을 찍어주던 나단이 “네, 약 15분 동안이요”라고 대꾸했다는 내용이다. 엄밀히 따질 때 워홀의 명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QI의 조사내용을 보면 워홀은 1979년 ‘앤디 워홀의 폭로’라는 제목의 자전 에세이에 이런 구절을 써놓았다고 한다. “그곳은 60년대에 한 나의 예언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가 마침내 실현된 장소다. 나는 이 문장이 질렸기 때문에 더는 쓰지 않는다. 나의 새로운 문장은 이것이다, ‘15분 안에 모두가 유명해질 것이다(In fifteen minutes everybody will be famous.)” 문장의 의미가 조금 수정되었고 수정 전후 버전 모두 워홀 자신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알려진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와 ‘모두가 15분 안에 유명해질 것이다’는 워홀의 명언이 확실해 보인다. 다만 이 문장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는 의미로 둔갑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뉴스톱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소한 온라인 상에서 이 말이 워홀의 것으로 유통된 것은 2012년부터이고 가장 오래된 기록은 트위터에 있다.

앤디 워홀의 발언만을 올리는 가상 계정 ‘@ndwarhol_Kbot’이 생성 직후 2011년 11월 25일에 (트위터가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11년 1월 19일이다) 올린 첫번째 트윗에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해당 계정은 이후 주기적으로 같은 트윗을 반복해 올리며 앤디 워홀의 명언을 퍼뜨려 왔다.

트위터 검색 사이트 트윗덱(tweetdeck) 캡처. 앤디 워홀의 명언을 주기적으로 올리는 트위터 계정의 활동을 볼 수 있다.
트위터 검색 사이트 트윗덱(tweetdeck) 캡처. 앤디 워홀의 명언을 주기적으로 올리는 트위터 계정의 활동을 볼 수 있다.

앤디 워홀 본인만큼 유명한 명언은 워홀의 것이 아니었다. 제조지가 한국인데 그 경위를 파악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 진상을 알리는 기사와 게시물 다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이 현대 예술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거나 앤디 워홀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절묘하게 대변하였으니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잘못 퍼진 문장의 의의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나 ‘가짜명언’이 아무도 모르게 퍼져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정황은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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