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이참에 탈성장?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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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이참에 탈성장?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 박재용
  • 승인 2020.04.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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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의 과학체크] 코로나, 기후 위기 그리고 노동

1.

코로나로 전 세계의 생산과 소비가 주춤거리고 있다. 어떤 이는 IMF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하다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이는 20세기 초 대불황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 주장한다.

한편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그 빈 공간에 자연이 들어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베네치아의 운하에 돌고래가 돌아왔다는 건 거짓뉴스로 밝혀졌지만 인간 활동이 주춤해진 틈을 타 농경지와 도심지에 야생동물이 모이는 모습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었다는 뉴스도 있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에 따르면 33일부터 41일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최소 25% 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석탄 사용량 감소가 눈에 띠는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유와 철강 생산 감소, 항공편의 감축, 자동차 운행 축소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

지금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주춤해졌지만 인간 활동에 의한 지구 온난화는 기후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부족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이제 다들 알고 있듯이 당면 과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여 향후 10년에서 15년 정도 뒤에는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를 이루는 것이다. 방법은 에너지 부문과 산업 부문에서 획기적인 감축이다. 이 두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몇 가지 달성해야할 과제가 있다.

먼저 에너지 부문을 살펴보자면 기존의 화석연료를 통한 발전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즉 석탄, 석유, 천연가스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즉 태양광발전과 풍력 발전 등의 성장세를 볼 때 중단되는 화석연료의 빈틈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전기 에너지 생산의 절대량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 소비 자체가 줄어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할 곳은 어디인가? 산업부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가장 많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플라스틱 제조, 알루미늄, 제지 산업 등이 전기소비를 줄여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들 산업의 생산량이 준다는 건 뭘 의미할까? 즉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현재 수준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저성장이거나 제로성장, 어떤 의미에서는 역성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 문제니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현재의 성장률을 낮추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탈성장이라 하자.

그린 뉴딜이라는 용어가 기후위기와 붙어서 회자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 등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자는 뜻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유럽에서도 많이들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수준에서 봤을 때 그린뉴딜로 인한 경제 성장 효과는 우리가 이뤄야할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위한 탈성장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는 극히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3.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스포츠도 공연도 강연도 모두 취소되었고, 공장 가동률도 떨어졌다. 삶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제외한 영역에서 급속히 경제 활동이 줄어들자 경제를 전망하는 유수의 기관들이 전 세계 경제가 역성장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보다 오히려 코로나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탈성장이 현실화된 모양새다. 다만 다른 것은 탈성장은 10년 어쩌면 몇 십 년 동안 지속하자는 주장이고 현재 상황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의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잘 살펴보면 탈성장이 만들 미래를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탈성장은 어떤 이에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버스 몇 정거장 거리는 걸어가고, 차를 가지는 것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가까운 곳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사고, 1회용품을 쓰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시장을 갈 때도 천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내가 조금 불편하고 귀찮고 힘들더라도 그를 감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탈성장의 진짜 모습은 실업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직업을 잃고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이 3월 마지막 주에 660만 명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평균 20만 여건이었던 것이 30배 가가이 늘어난 것이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일리엄 로저스 전 미국 노동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3.5%에 불과하던 미국 실업률이 17%에 도달했다고 계산했다. 특히 흑인의 실업률은 5.8%에서 19%로 급등했다. 이런 상황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이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피트니스 센터의 PT강사, 식당의 종업원, 학교의 방과후 교사 등에서 실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행업, 운수업, 서비스업, 제조업 등 거의 산업 부문 전반에서 손쉬운 비정규직부터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한 각급 정부가 긴급 재정을 운영하고 현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유예하고 기업에 대출과 신용 보증을 서는 등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로 인한 한시적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탈성장은 말 그대로 성장을 멈추자는 것이고, 성장이 멈춰진 곳에선 실업이 시작된다.

 

 

4.

기후위기는 불평등하게 다가오지만,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것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탈성장을 공론화하자면 노동을 어떻게 사회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대책에서부터라야 한다.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한 비상행동은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에 맞물려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 가동을 중단할 때, 자동차 생산이, 플라스틱 생산이, 1회용품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우선 1인당 노동시간 감소가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1인당 노동시간에서만큼은 OECD에서 1,2위를 다투니 그만큼 줄일 여지가 많다. 1인당 노동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더 많은 고용이 가능하다. 서로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노동자 수입 감소를 의미한다. 이 감소분을 노동자가 모두 감수할 순 없을 것이다. 특히나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감소분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는 감소분의 상당량을 자신이 감수하더라도 저소득 노동자의 경우에는 이 감소분의 대부분을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로 1인당 노동시간의 단축을 전제로 한 기본소득이 논의될 수도 있다.

하지만 탈성장이라는 전제 아래 매출과 수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기업과 세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고 시민들은 이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고자 해야 한다.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탈성장을 우리나라만 받아들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과 중국, 인도, 유럽,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상위권을 접하는 나라들 모두가 이 해결에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남아있다. 이는 단순히 각국 정부를 설득하고 압박해서-물론 이 자체도 아주 힘든 일이겠지만- 될 일이 아니고 그 나라의 시민들이 받아들이고 납득해야 하는 문제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살펴보면 우리가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회로는 없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외면할 순 없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인류의 번영 뒤에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온 빚을 이제 일순간에 갚아야 할 상황이고, 외면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실질적으로 더 평등해져야 하고, 더 공정해져야 한다. 이 정의로운 전환이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로 인한 고통 이상의 고통을 요구하더라도 말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열린 논의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기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외침만으로는 어떤 희망도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들이 감수해야할 고통이 무엇인지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힘들더라도 토론하고 설득하고 기업과 정부를 압박하면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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