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반론] '멍청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나라는 있다

장영욱 위원의 반론 <팩트가 틀린 '스웨덴 집단면역 비판'은 이제 그만>에 대한 간략한 팩트체크

  • 기사입력 2020.10.19 12:48
  • 최종수정 2020.10.20 14:24
  • 기자명 더사실포럼

최근 기고한 <‘스웨덴 집단면역 이야기’는 이제 그만!> 칼럼에 대한 대외경제연구원 장영욱 부연구위원의 반론 <팩트가 틀린 '스웨덴 집단면역 비판'은 이제 그만>이 뉴스톱에 게재되었다.  거두절미하고 반론에서 언급한 세 꼭지를 다시 살펴본다.


1. 스웨덴은 감염확산을 방치한 적이 없는가?

장영욱 위원은 이에 대해 스웨덴 정부가 내놓은 주요 조치를 나열하며 스웨덴도 나름의 감염 확산 방지 정책을 폈다고 썼다. 그러나 정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초반부터 맹점이 많이 보이는 지나치게 느슨한 방역이었다. 3월 11일 500인 이상 공적 모임이 금지되고 3월 27일 다시 50인 이상 공적 모임 금지로 정책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사적 모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고가 없었다. 50인 이상 공적 모임 금지도 학교, 도서관, 기업 이벤트, 수영장, 쇼핑몰과 같은 장소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느슨하고 빈틈 많은 정책에 감염확산을 방치하고 집단 면역에 더 빨리 이르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는가? 정보 공개 원칙에 따라 공개된 스웨덴 공중보건 관료들의 이메일과 스웨덴 기자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들의 목표가 집단 면역 형성이었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스웨덴 정부의 수석 역학자(공중보건청장은 요한 칼슨) 안데르스 텡넬이 핀란드 방역 담당자 미카 살미넨에게 포워딩한 이메일에서 “한 가지 요점은 학교를 열어서 집단 면역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살미넨이 핀란드 모델 상 학교를 닫는 게 “노년층 감염 위험”을 10% 줄일 수 있다고 하자 텡넬은 “10% (노인을 보호하는 일)가 (학교를 닫을만한)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스웨덴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스웨덴 과학자들은 이 지점에서 정부가 학교를 여는 방식으로 집단 면역을 꾀하는 위험한 실험을 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웨덴 학교에서는 지난 봄과 이번 가을에 다수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나타났다. 장영욱 위원의 반론과 달리 스웨덴 정부의 공식 보고자료만 가지고는 실상을 알기 어렵다. 스웨덴 공중보건청에서 내놓은 보고서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생 확진자 수를 비교하여 (핀란드에서) 학교를 닫은 게 확진자 수에 미친 영향이 거의 없었다고 결론 내리고 있지만 당시 스웨덴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검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잘못된 비교다. 전문가들은 동기간 스웨덴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어린이 수가 핀란드의 7배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스웨덴 학교에서 코로나19 감염확산이 거의 방치된 수준이었음을 지적한다. 이 정도면 “의료체계 수준 안에서 감염 확산을 통제하면서 그 결과로 집단 면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 면역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더 가깝다.

 

2. 중환자실 환자수의 증가폭 문제

스웨덴 일일 확진자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 환자수의 증가폭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젊은 확진자 비중이 늘어서 그렇다는 치료 추측도 가능하지만 중환자실 환자수 증가나 사망자 수 증가는 확진자 수 증가와 동시에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사망자 수 증가는 확진자 수 증가에 비해 한 달까지 더 늦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추이를 보일지 더 지켜봐야 한다. 스웨덴에서 검사 수를 늘려서 확진자 수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있으나 여전히 스웨덴의 검사 수는 이웃 덴마크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방역이 스웨덴 정부가 홍보하는 만큼 성공적이지 않으며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10월 12일자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의 코로나19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미국의 60.3명에 맞먹는 57.4명으로 대표적 실패 국가에 속한다.  가장 최악의 대응으로 국민, 특히 노년층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 미국보다 10만명당 사망자 수가 낮다는 이유로 스웨덴의 정책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인권을 짖밟는 그 어떤 국가도, 가장 악랄한 국가를 예로 들며 자신들의 정치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최악의 사례는 언제든 찾아낼 수 있다. 최악을 근거로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는 논증은 악랄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또한 “뒤늦게 봉쇄 정책을 편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은 물론 초기부터 강력히 대응한 벨기에, 미국, 남미 국가들도 스웨덴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장영욱 위원의 글과는 달리 스웨덴, 미국, 영국, 브라질, 멕시코는 봉쇄, 검사 및 추적과 같은 방역 조치를 늦게 하여 인구당 사망자 수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6월 7일 이후 자료를 보면 이탈리아(3.1), 영국(5.0), 스페인(4.6)의 10만 명당 사망자 수가 스웨덴(10.3)보다 낮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수. 미국의 사망자수(649명)는 유럽연합(338명)의 2배에 가깝다. 스웨덴의 경우 570명으로 유럽연합보다는 미국에 가깝다. 출처: 미국과학자연합(FAS)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수. 미국의 사망자수(649명)는 유럽연합(338명)의 2배에 가깝다. 스웨덴의 경우 570명으로 유럽연합보다는 미국에 가깝다. 출처: 미국과학자연합(FAS)

 

 

3. 스웨덴 정부는 과학자의 의견을 배척하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스웨덴 정부가 과학자 의견을 배척한 적이 없다는 장영욱 위원의 반론과 달리 스웨덴 정부는 지금까지도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웃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는 그래도 대중교통 이용시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스웨덴은 여전히 보건 의료 종사자가 아니면 마스크를 쓰지 않도록 권고한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나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패를 거울삼아 끊임없이 정책을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고집이 지나치다.

스웨덴 정부에서 자신들의 방역을 성공사례로 포장하며 세계에 자랑하고 있지만 스웨덴 방역은 세계가 따르지 말아야 할 처참한 실패 사례를 남겼다. 장영욱 위원이 한겨레 칼럼에 쓴 것처럼 “이유 없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는 없다.”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을 죽이는 나라가 있을 뿐이다. 스웨덴 정부가 포장한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의 실패를 거울 삼아 앞으로의 방역을 고민하는 게 낫다.

 

'스웨덴 코로나19 대응은 재앙이다.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어선 안된다' 제목의 타임지 기사 표지.
'스웨덴 코로나19 대응은 재앙이다.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어선 안된다' 제목의 타임지 기사 표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실험을 하는 나라는 없어야 한다

장영욱 위원의 반론이 나온 바로 그 날, 전세계 수십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가장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인 란셋 Lancet에 <우리는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 COVID-10 판데믹에 관한 과학적 합의-Scientific consensus on the COVID-19 pandemic: we need to act now>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글에는 소위 ‘집단면역’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에 대한 경고가 적혀 있는데, 공중보건학, 역학, 의학, 사회학, 바이러스학, 정신의학, 보건정책 및 수학적 모델링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지금까지 집단면역을 통한 방역을 주장한 이들에게는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저자들은 집단면역을 통한 방역이라는 아이디어가 아주 위험하며 과학에 의해 전혀 지지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현재까지 자연적인 감염을 통해 집단면역 상태에 이른다는 모든 전략은 실패했다고 못박는다. 특히 상대적으로 안전한 젊은 연령층을 감염시킨다는 - 중학교 아래는 모두 등교를 허용한 스웨덴의 경우를 연상케 하는 - 아이디어는 오히려 이동성이 활발한 젊은층의 감염을 통해 더욱 폭발적인 판데믹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는 완벽한 환상일 뿐이다.

Lancet 학술지에 2020년 10월 15일에 발표된 성명서.
Lancet 학술지에 2020년 10월 15일에 발표된 성명서.

 

과학에는 하나의 결론만 존재하지 않는다?

장영욱 위원은 지속적으로 스웨덴 정부가 느슨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열하며, 스웨덴의 전략을 변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웨덴이 시종일관 느슨한 정책을 펴는 이유로 첫째, 강제성을 띠는 정책을 최소화했고, 둘째, 제한된 가용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한 것 뿐이며, 셋째, 방역과 일상의 조화를 추구했고, 넷째, 장기화를 염두에 둔 정책을 펼쳤다고 설명한다 . 즉, 스웨덴 정부는 코로나 판데믹이 장기화될 것임을 미리 알고, 바이러스와 함께 살기 위한 정책을 기조로 정하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의료자원을 배분하면서, 국민을 동요시키지 않고 강제성을 최소화하는 침착한 정책을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엄청난 숫자의 스웨덴 국민이 죽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스웨덴과 정치적으로 혼란상태인 미국과 일본 등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와 전세계가 1차 확산 시기에 강력한 조치를 취했고 이를 통해 확산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장영욱 위원은 지금 가장 예외적인 스웨덴의 전략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학적 방역을 선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스웨덴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그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왜곡까지 감행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하나의 결론만 있는 게 아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고, 특히 전혀 새로운 감염병인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최적의 정책 조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느슨한 대응에도 패착이 있었지만 강력한 봉쇄가 답이라고 볼 수도 없다.”

 

과학에는 하나의 결론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하나의 결론을 추구한다. 만약 어떤 과학자가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두 개의 이론이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장영욱 위원이 말하는 사회과학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건 물리학만을 대상으로 과도한 일반화를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아주 상식적인 지식이다. 과학의 발전과정에는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실험결과들이 출몰하게 되는 때가 있고, 쿤은 이를 이상현상이라고 불렀고 이를 통해 위기가 출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상현상까지를 포괄해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며, 이 과정에서 패러다임 이동이 일어난다. 쿤은 과학자들이 마치 종교적인 개종을 하듯이 패러다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인다는 무리수까지 써가며, 과학자들이 단 하나의 결론만을 추종한다는 걸 설명하려 했다.

물론 과학자들 사이에는 언제든 이견이 존재한다. 같은 현상을 발견했으면서도 서로 다른 이론을 만든 사례를 과학사에 넘친다. 하지만 과학사는 그런 이견이 언제나 하나의 이론의 승리로 끝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즉, 자연과학은 지극히 답답할 정도로 단 하나의 결론을 추구한다. 그건 결론이 여러개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결론이 하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방법론의 고집이 답답할지는 모르지만, 자연과학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만들어 논문을 출판해본 과학자들은 당연히 아는 상식이다. 과학은 단 하나의 결론을 추구한다. 하지만 정책은 아닐 수 있다. 정책이 과학적이면 가장 좋겠지만, 정책은 과학이 아닌 정치와 현실의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장영욱 위원이 정책에 하나의 결론만 있는게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면, 그 수많은 복잡한 변수와 변동성을 두고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결론이 여럿일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영욱 위원은 발언은 1990년대 서구에서 ‘과학전쟁’을 일으킨 ‘상대주의 과학사회학’을 떠올리게 한다 . 당시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를 통해 유명해진 이 논쟁에는 현장과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 그리고 과학사회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과학의 성격을 두고 벌어진 이 논쟁은 스트롱프로그램이라 불리던 급진적 과학사회학 진영의 패퇴로 끝났다. “과학은 하나의 결론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발언을 사회과학자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주장하려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 놓인 수 많은 다리와 가교들을 뛰어넘을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과학에 하나의 결론이 있느냐 마느냐는 주장은,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실험을 감행한 스웨덴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과는 하등 관계 없는 일이다.

 

스웨덴의 실패는, 방역에 대한 대응이 지나치게 과학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영욱 위원은 스웨덴 정부의 느슨한 대응이 찬반이 있는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저울질을 해서 최선의 결론에 이르는 과학적 방법론과 닮은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결론은 스웨덴 정부가 과학자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찬반이 있는 문제를 놓고 저울질해 더 근거가 탄탄하다고 여긴 대응방식을 스웨덴 맥락에 맞게 적용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실패를 거울삼아 끊임없이 정책을 업데이트했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사회"과학"을 전공한 필자가 생각하기에 스웨덴 정부는 과학을 따르고 있다. 오히려 자기가 보기에 올바른 의견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웨덴 정부가 "과학을 철저히 무시했다"라고 말하는 게 비과학적인 태도이다 (트럼프나 공화당 의원 예도 제시했는데 이들이 스웨덴 전략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도 의문이다.).”

 

이 설명만 놓고 본다면, 노벨상을 시상하는 과학의 성지 스웨덴의 정책은 열린토론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이상처럼 보인다. 그럴 수 있다. 스웨덴 정부는 정말 쿨하게 어차피 장기적인 추세로 갈 것이 뻔한 이번 판데믹에 대한 방역 정책을 과학적으로 느긋하게 결정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정책의 과학성이 심각한 문제다. 우선 그 정책의 중심에서 사람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방역정책은 과학만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책은 정치와 현실의 영역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근거에 기반한 정책, 과학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번 코로나 판데믹처럼 빠른 시간 안에 가장 과학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정치의 영역이다. 바로 그 정치의 측면에서 스웨덴은 철저히 실패했다. 게다가 수많은 노인의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과학적 실험을 수행한 정부라면, 그런 정부는 국가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 나치의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차별에도 우생학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물론 우생학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비판이 존재했지만, ‘과학에는 하나의 결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장영욱 위원의 의견에 따른다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치의 우생학적 해석이 그저 과학에 존재하는 하나의 예외라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하나의 결론을 두고 다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을 걸린 일을 두고 그럴 수는 없다.

스웨덴의 과학적 방역 대책은, 그 대책이 지나치게 과학적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스웨덴의 방역 대책이 비과학적이었다고 해서 비판하는게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방역은 과학만의 영역이 아니다. 방역에는 과학적 근거와 의학적 실천 그리고 정치적 의사결정이 모두 포함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1차확산을 막는 시점에서, 스웨덴은 과학적 예측을 통해 느슨하고 쿨한 방역을 시행했다. 그리고 수많은 노인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과학이 성공한 자리에서 스웨덴이 실패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와 방역의 컨트롤타워가, 과학이 아니라 가장 상식적인 이웃나라 국가들의 대응만 따라했어도, 잃을 필요가 없는 목숨들이었다. 그런 실패한 국가의 정책을, 굳이 과학이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개념을 빌려가며, 사회과학자가 굳이 나서 변호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사회과학자의 과학적 태도는, 과학 이외의 다른 그 어떤 영역의 진리도 모두 거부하는 위계적인 태도인 것인지, 사회과학자 장영욱 위원의 글에서 자연과학자의 글보다 더 진한 과학주의자의 냄새가 난다.

오히려 얼마전 방송에서 홍기빈 박사가 스웨덴이 저렇게까지 과학을 들먹이며 느슨한 방역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복지하고 성장이 꼭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나라”인 스웨덴은 성장이 멈추면 복지가 멈출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경제성장률이 멈추는 것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정치인들 사이에 퍼져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훨씬 상식적으로 다가온다 . 만약 이런 오래된 복지국가의 일상이 락다운 등으로 인해 흔들릴 것이라는 이유로 스웨덴의 방역 정책이 짜인 것이라면, 그건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런 정책적 결론을 굳이 상관도 없는 과학을 들먹이며 변호하는 것이, 도대체 이 시점에 왜 필요한 일인지 알 수 없다. 과학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과학자들이 다루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원자나 생명체에 국한되고, 복잡한 대상을 다루더라도 실험이 가능한 영역에 한정된다. 사회문제와 정치처럼 변수의 복잡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에도 자연과학의 원리가 통용될 수 있느냐는 여전히 열린 문제다. 코로나19의 방역문제는 바로 그런 영역에 존재한다. 장영욱 위원이 스웨덴 문서를 남들보다 더 깊이 추적하고 분석해서 하나의 논증을 만들어 나가는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논증을 과학으로 포장할 이유도, 자신의 논증이 더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연과학이던 사회과학이던 혹은 국민의 상식이건 상관 없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이 사태를 막아야만 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더 과학적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스웨덴의 실패를 방어하지도,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스웨덴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건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편집자 주: 스웨덴 정부가 조만간 노-락다운 전략 (No-lockdown strategy)을 포기하고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채택할 것이라는 보도가 18일 나왔다)

Sweden is moving away from its no-lockdown strategy and preparing strict new rules amid rising coronavirus cases. 비즈니스 인사이더 10월 18일 기사.
Sweden is moving away from its no-lockdown strategy and preparing strict new rules amid rising coronavirus cases. 비즈니스 인사이더 10월 18일 기사.

 


이 글은 정재훈 약사와 김우재 박사가 같이 썼다. 필자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약사로 일했다. 다수의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필자 김우재는 초파리 박사'로 유명한 행동유전학자다. 포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UCSF에서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대가인 유넝 잔에게 사사했다. 오타와대학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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