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의사가 내 얘기를 SNS에..." 문제 없을까?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3.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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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자신의 유튜브에 당시 응급실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을 찍어 올려 논란을 빚었다. 영상에서 해당 간호사는 “벌써 네 번째 심정지 환자가 도착했다”며 응급실 풍경을 비추고, 직접 자신의 피 묻은 장갑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시청자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를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도와주려고가 아닌 영상을 건지기 위해 출근한 것 같다”며 비난했다.

#2. 지난 2018년 강서구에서 발생한 PC방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를 치료했던 의사가 자신의 SNS에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글을 올렸다. 해당 의사는 글에서 “억측으로 돌아다니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의 엄중한 처벌과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회적으로 재발이 방지되기를 누구보다도 강력히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글이 화제를 모으며 심신미약자 감형 반대 여론을 키웠지만, 의료계에서는 의료윤리와 환자의 개인정보를 누설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한 간호사가 올린 영상 일부
이태원 참사 당시 한 간호사가 올린 영상 일부

최근 의료인들의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환자들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의료인들은 방송에 출연하거나, 개인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환자들의 이야기를 일화로 풀어내기도 하고,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출판하거나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한다. 이 경우 출연료나 원고료 등 수익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환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익명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질병의 종류나 치료 과정에서의 개인적 사정 등에 따라 당사자가 특정되기도 하고, 특정되기 쉬운 특이한 질병이나 안타까운 사연은 더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환자의 개인 정보를 활용한 의료인들의 개인적인 활동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뉴스톱이 따져봤다.

 


 

◆의료법, 윤리강령 따져보니

의료법 제19조 2항에는 “의료기관 인증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그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강령>에서도 제9조(의무기록 등의 정확한 기록) 3항에서 “의사는 환자의 동의나 법률적 근거 없이 제3자에게 환자의 진료에 관한 사항을 알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17조 1항 “의사는 그 직무상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보호하여야 한다”, 제17조(환자 비밀의 보호) 5항 “의사는 의학적 조사 및 연구 등을 수행함에 있어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통해서도 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어 제32조(대중매체의 부당한 이용 금지) 3항에서는 “의사는 방송 등 대중매체 참여를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광고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한국간호사윤리지침 역시 제11조(비밀 유지)에 “간호사는 간호대상자의 비밀을 유지하며 간호에 필요한 정보 공유만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의협, 의사 '방송 출연 & SNS 가이드라인' 제정하기도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15년, “의사 신분으로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등 간접, 과장, 허위 광고를 일삼는 일부 의사들, 소위 쇼닥터에 대한 자정활동 차원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은 △'의사는 의학적 지식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여야 한다' △'의사는 방송 출연의 대가로 금품 등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아서는 아니 된다'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2021년에는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협은 “의사의 소셜미디어 사용은 작성 즉시 그 내용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그 내용을 추후 취소하거나 수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해당 의사와 환자 사이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은 물론, 심한 경우에는 의료전문가 전체의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 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① 의사는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령과 의사윤리지침이 소셜미디어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며, 식별 가능한 환자 정보를 소셜 미디어에 게시해서는 아니 된다’, ② 교육이나 학술교류 또는 동료 의사와의 정보교환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경우에도 의사는 개인정보 보호 및 비밀 보장을 위한 의사윤리지침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실제 처벌 사례

의사의 환자 정보 공개가 실제 법적 처벌로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 2020년,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의 이야기를 인용해 책을 출판한 김모 교수는 책에 인용된 당사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문제가 된 책은 2017년 출간된 책으로, 저자인 교수는 피해자가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의 다발성 경화증에 직업적 요인이 크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써준 인물이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평소에 쓴 '이소정'이라는 가명으로 저서에 관련 내용을 서술했다. 이후 피해자는 해당 표현을 삭제·수정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해당 교수 등을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 교수는 "책에 나온 건 직업병 피해자가 스스로 언론과 SNS에 유포한 내용의 일부고 '이소정'이라는 가명을 통해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의 가명과 개인정보가 담긴 사례를 책에 적시하면서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원고의 인격권·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성명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혐의 입증 어려워… "윤리적 자성 필요"

그러나 이는 특수한 사례이고, 대부분의 경우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법조계의 해석이다. 의료인 출신의 김정민 법무법인 ‘고도’ 의료팀 총괄팀장은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가명을 사용하거나 사진을 모자이크 하더라도 누구인지 명확하게 특정이 되는 특수한 경우에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당사자를 한 사람으로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거나, 당사자임을 증명할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경우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즉, 의료법 위반 여지는 있지만, 이를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한 의사협회의 노력도 진행 중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대변인은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의료나 의사 콘텐츠를 방송 상업화 하는 경향이 많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이러한 문제를 극심하게 겪고 있다”며, “무분별하게 환자의 이야기를 도구화하고, 특히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의사들의 행동은 명백한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에서는 2018년에 ‘쇼닥터 및 의사의 SNS 가이드라인’을 전 세계 최초로 세계의사회(WMA)에 안건으로 올려서 통과시키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고, 현장에도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의과대학 자체에 SNS 사용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해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의사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의협 차원에서 조치하고 있지만 워낙 사례가 많다 보니 모두 막을 순 없는 게 현실”이라며, "공익적 목적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환자 보호를 우선시 하는, 의사 개개인의 윤리적 자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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