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미국·일본 연장근로 한도 없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3.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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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의 연장근로 제한 느슨한 건 사실이지만 보완장치 많아
노동시간 긴 한국에 적용하기에 무리

6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발표 직후 경영계는 환영하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정부는 일주일에 최대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현 제도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여러 경영자 단체는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계에서는 그동안 구인난과 초과 근로에 시달려 주52시간제 준수가 어려웠다며 노동시간 규제 개편을 반겼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1

개편의 핵심 내용은 일주일로 묶인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늘리는 겁니다. 기본 40시간 근로에 최대 연장 12시간 일하는 ‘주 52시간제’의 틀은 유지됩니다. 대신 노사 합의를 거쳐 ‘주’ 단위 연장근로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주 단위로 12시간씩 묶여있던 연장근로 시간을 당겨쓸 수 있게 한 겁니다.

일이 몰리는 주에는 연장근로 시간을 집중적으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연장근로의 총량은 ‘월’ 단위로 52시간, ‘분기’ 단위 140시간, ‘반기’로는 250시간, '연'으로는 440시간까지로 한도가 정해집니다. 일하는 날에는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해야 합니다. 휴식을 보장할 때 1주 최대 근무시간의 상한선은 69시간입니다. 휴식이 없다면 1주 근무시간은 산재 과로인정 기준 평균인 ‘64시간’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6일 논평을 통해 연장근로 상한을 풀자고 제안했습니다. 중기중앙회는 “업무량 폭증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국과 같이 연장근로 한도를 규정하지 않거나 일본과 같이 월 최대 100시간 연장근로 및 연 최대 720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등 노사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연장근로한도 확대를 추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6일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미국과 일본처럼 연장근로 추가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힘. 중소기업중앙회 논평 갈무리
6일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미국과 일본처럼 연장근로 추가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힘. 중소기업중앙회 논평 갈무리

해당 논평을 인용한 기사가 나오자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인력을 갈아 넣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톱>은 “미국의 연장근로 한도가 없다”는 주장과 “일본은 월 최대 100시간, 연 최대 720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중기중앙회 주장을 확인했습니다. 

 

◈연장근로 제한 규정 없는 미국…추가 근로수당 통상임금 1.5배 지급

먼저 미국의 제도를 살펴봤습니다. 미국의 근로시간법제를 연구한 단국대 신동윤 교수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최대근로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할증임금이 붙습니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The Fair Labor Standards Act) 제7조를 보면 사용자는 초과근로를 한 사람에게 1.5배 이상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주간 4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에 나오는 초과근로수당 관련 내용. 세계법제정보센터 공정근로기준법 번역본 갈무리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에 나오는 초과근로수당 관련 내용. 세계법제정보센터 공정근로기준법 번역본 갈무리

다만 1일 근로시간은 규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정근로기준법에는 법정근로시간 이상 노동에 더 많은 ‘임금’을 주도록 하라고 되어있지만, ‘근로시간 상한’ 내용은 없습니다. 일일 근로시간 상한도 나오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또는 휴일 근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중기중앙회의 첫 번째 주장인 “미국은 연장근로 한도가 없다”는 것은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대신 미국은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1.5배 이상 비율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고용된 상태에서 초과근로가 없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지급 받는 시간급을 말합니다. 사용자가 고의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1만 달러 이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 금고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과근로수당을 반복적 또는 고의로 위반한 사용자는 민사 벌금을 낼 수도 있습니다. 

단국대 법학과 신동윤 교수는 <뉴스톱>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추가근로수당 미지급에 대한 처벌 규정 때문에 장시간 노동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점차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면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한다는 근로시간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므로 그 틀을 벗어난 노동시간 산정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몇몇 유형 근로자의 경우 초과근로수당과 최저임금 모두 적용하지 않거나 초과근로수당만 적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직업군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이 있습니다. 급여가 일정 금액을 넘는 고위관리직·행정직·전문직·외근판매·컴퓨터 관련 직업·고액소득자는 초과근로수당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제도를 통해 사용자는 근로시간으로 성과를 평가받기 어려운 직군의 근로자에게 업무시간을 배분하는 재량권을 주고 근로자는 성과에 따라 생산성을 평가받고 보상받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근로시간 적용 제외 제도를 비교해놓은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보도자료 내용 재가공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근로시간 적용 제외 제도를 비교해놓은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보도자료 내용 재가공

다만 이 제도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인정받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서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제도의 문제점으로 전문직과 고소득자의 구분점이 모호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같은 토론회에서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역시 제도 도입 후 폐해가 심각하여 초과근무수당 지급제외 대상의 축소 등 보완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도 적용 대상의 급여 기준은 바뀌고 있습니다. 기준소득은 2020년 1월부터 주당 455달러에서 주당 684달러로 상향됐습니다. 뒤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수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불가피할 때만” 월간 100시간, 연간 720시간 허용한 일본

두 번째로 “일본은 월 최대 100시간, 연 최대 720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확인해봤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일본의 노동시간 단축 추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일본은 초과노동시간 상한규제 법률안을 통해 연장근로 시간을 규제합니다. 초과노동시간은 원칙적으로 월간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넘어선 안 됩니다. 

다만 갑작스럽게 업무량이 늘 때는 이 기준을 넘겨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 연장근로의 상한선은 연간 720시간까지입니다. 연간 720시간 안에서 1달 100시간 밑으로 일해야 하며, 2개월에서 6개월간 월평균 80시간까지만 일해야 하는 세부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논문 내용에 언급된 대로 중기중앙청의 “일본 연장근로 상한선 월간 100시간, 연간 최대 720시간” 근로 가능 여부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초과노동시간 상한규제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1달 100시간, 1년 720시간 안쪽으로 안내되어 있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8년 '일본의 노동시간 단축 추진 현황 및 시사점' 갈무리
일본의 초과노동시간 상한규제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1달 100시간, 1년 720시간 안쪽으로 안내되어 있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8년 '일본의 노동시간 단축 추진 현황 및 시사점' 갈무리

일본은 근무간 휴식시간 확보를 의무화했습니다. 사용자는 노동자 건강과 복지를 위해 업무를 마친 날부터 그다음 날 업무 시작 때까지 일정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부여해야 합니다. 연차휴가 사용도 의무화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연장노동에 대해 50% 할증률을 적용합니다. 이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같습니다. 

일본도 미국과 비슷한 제도가 있습니다. 일본의 ‘재량간주근로시간제도’는 화이트칼라 직종의 경우 업무재량권을 늘려 연장근로의 제한이 없도록 했습니다. 정영훈 한국노동연구원 전 연구위원은 지난해 7월 ‘월간 노동리뷰’에서 “이 제도가 재량성이 제대로 부여되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적용되는 점이 있다”며 “‘공짜 연장근로’와 초장시간 근로가 조장되고 있다는 비판이 여전히 강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근로자 결정권 보장 상황, 노동시간 등에 대한 조사, 근로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하지만 일본·미국은 우리보다 연간 근로시간 적어

종합해보면, 중기중앙회의 “미국 연장근로 상한 없다”는 주장과 일본의 “연장 근로 상한이 월 100시간, 연 720시간”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다만 이 제도를 중기중앙회 주장처럼 곧장 한국의 근로현장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도 한국은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5인 이상 사업체에서 2017년 2,014시간에서 매년 줄어 2021년 1,952시간까지 점차 줄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5위입니다. 앞서 예시로 든 미국은 1,791시간, 일본은 1,607시간으로 우리보다 연간 노동시간이 적습니다.

OECD 주요국의 연간 근로시간을 나타낸 자료. 2020년 한국은 1,908시간까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보다 높음.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22년 7월호 갈무리
OECD 주요국의 연간 근로시간을 나타낸 자료. 2020년 한국은 1,908시간까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보다 높음.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22년 7월호 갈무리

장시간 노동은 건강에 영향도 줍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2020년에 발표한 공동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노동 때문에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2,61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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