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조리흄은 1급 발암물질?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1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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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전국 14개 시도교육청 급식종사자 2만4065명 검진 중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31명이 폐암으로 확진됐고, 139명은 폐암 의심 판정을 받았습니다. 단지 급식실에서 조리를 했을 뿐인데 왜 이들은 암에 걸렸을까요? 교육부는 대책으로 환기설비와 조리방법을 개선하겠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식당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가정에서 조리하는 분들은 괜찮은 걸까요? 폐암 발생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조리 흄(cooking fumes)은 1급 발암물질이라고 다수의 언론에서 보도했는데요. 이건 사실일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와 함께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출처: 다음 뉴스검색
출처: 다음 뉴스검색

◈조리 흄이란?

조리 흄은 일반적으로 기름을 사용해 볶거나 튀기는 요리를 할 때 배출되는 배출물을 말합니다. 영단어 흄(fume)의 사전적 의미는 매연 혹은 (유독) 가스를 의미합니다. 산업안전 현장과 관련 학과에서 통용되는 의미로는 흄은 금속 등 고체가 순간적으로 고온을 받아 기체가 됐다가 냉각되면서 만들어진 미세한  입자를 뜻합니다.  대표적인 게 용접 흄(welding fume)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조리 흄은 고체가 기체로 변했다가 다시 고체가 된 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름을 사용한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을 ‘조리 흄’이라고 부릅니다.

튀김, 볶음, 구이 과정에서 기름이 에어로졸 형태로 분산되기도 하고, 연소 부산물과 가스상 유기 오염물질, 조리과정에서 식재료가 뿜어내는 수증기가 발생합니다. 조리 과정, 특히 튀기거나 볶는 요리는 실내공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 입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다환방향족탄소(PAHs), 포름알데하이드, 아세트알데하이드, 아크릴아마이드, 아크로레인 등의 발암물질도 만들어냅니다.

이런 유해한 물질이 조리과정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유해물질로부터 작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겁니다.

 

◈팩트체크, 조리흄은 1급 발암물질?

아시아경제, 이데일리, 대한급식신문 등은 조리 흄에 대해 1급 발암물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WHO(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발암물질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IARC는 발암물질을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인과관계가 규명된 정도에 따라 1, 2A, 2B, 3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그룹1은 ‘인체 발암성(Carcinogenic to humans)’, 그룹 2A는 ‘거의 확실히 인체 발암 가능(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 그룹 2B는 ‘발암 가능성 있음(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 입니다. 우리말로 옮길 때는 1군(群) 또는 1그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바람직합니다. ‘1급 발암물질’이 주는 강력한 어감 때문에 ‘1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정확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게다가 이 조리 흄은 1그룹으로 분류돼 있지도 않습니다. 아시아경제는 <[뉴스속 용어]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유발 '조리흄'> 보도를 통해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고 보도합니다.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그러나 IARC는 2010년 보고서를 통해 “가정에서의 고체연료 사용과 고온에서의 튀김 요리”의 발암 위험성을 분석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IARC는 고온의 튀김요리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질을 2A군으로 분류합니다. 인체에 암을 일으킨다는 제한적인 증거가 있고, 정제되지 않은 고온의 유채씨 기름에서 유발된 배출물이 실험동물에게 암을 유발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밝힙니다.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왜 급식실이 위험한가

급식실은 단시간에 많은 양의 조리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급식실 종사자들은 별다른 보호대책이 없다면 대량의 유해물질에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해물질과 건강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은 위해성 평가라고 부르는데요. 물질고유의 독성과 피해자의 노출량, 노출 정도 등을 고려해 평가합니다. 물질 고유의 독성이 강할수록, 피해자의 노출이 지속적으로 장시간 이뤄졌을 때 건강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그래서 급식실 종사자들의 건강 위험성에 관한 문제제기가 진작부터 있어왔습니다. 이번 교육부 실태조사도 이런 배경에서 진행된 겁니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팀은 <조리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2019년 진행된 이 연구는 학교 내 급식환경의 공기질 유해물질 노출수준을 정량적으로 확인하고 환기에 대한 사례평가를 진행했습니다. 24곳의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시 공기질 작업환경 평가를 실시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조리과정의 공기질 평가에서 일부조리과정에서 일산화탄소는 단기간노출기준인 200ppm을 초과하는 사례가 확인되었으며 이산화탄소 순간발생량이 8,888ppm이상의 측정 한계치 이상의 고농도로 상승함으로 화학적 질식제와 단순질식제로 복합작용을 통한 중독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라고 밝힙니다. 미세먼지(PM2.5, PM10)의 미세분진 발생형태 평가에서는 일부 조리환경에서 실내공기질관리법상의 유지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식당, 가정도 위험?

급식실 종사자들이 폐암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이번 교육부 발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식당의 주방 종사자들, 또는 가정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직업환경보건 연구자인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교수(환경보건학과)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중식당의 경우를 보면 환기가 잘 안 되는 좁은 조리장에서 강한 화력으로 볶고 튀기는 요리를 하고 있다”며 “학교 급식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조리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가정에선 어떨까요? 가정에서 이뤄지는 조리와 건강 피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성 폐암 환자의 90% 정도가 비흡연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회는 2017년부터 2년간 전국 10개 대학병원에서 비흡연여성폐암 환자 478명과 비흡연여성 환자 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설문결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일주일에 4일 이상 겪는 경우 3일 이하인 여성에 비해서 폐암 발생률이 1.5배 높았습니다. 주방이 분리되어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요리를 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서 1.4배 높았고, 요리시에 눈이 자주 따갑거나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환기가 안되는 경우 폐암 발생율이 각각 5.8배, 2.4배로 높았습니다. 이 경우 튀기거나 부침 요리 등의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출처: 국립환경과학원
출처: 국립환경과학원

◈해결방안 최우선은 환기

교육부는 ‘학교급식실 조리환경 개선 방안’으로 가장 먼저 환기설비 개선을 꼽았습니다.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면 유해물질로 인한 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에 배치돼 있는 조리실을 지상으로 옮기거나, 불충분한 배기시설 용량을 확충하고, 급기 시설을 갖춰 배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는 조리방법 및 식단 개선이 등장합니다. 튀기거나 볶는 요리를 프라이팬이나 웍을 이용해서 하는 것보다 오븐을 이용해 조리하도록 조리법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방법을 적용하면 조리하는 사람이 불 앞에 들러붙어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유해물질 노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븐에 적절한 환기시설을 배치한다면 조리 공간의 오염도를 낮출 수 있기도 하죠. 다음은 개인보호구 개선입니다. 오염물질을 걸러줄 수 있는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을 참고하면 우리 가정에서도 조리 과정에서의 유해물질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조리할 때는 항상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합니다. 레인지후드 등 기계식 환기 장치가 있다면 꼭 가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리 방법도 튀기거나 볶는 등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보다는 찌는 요리가 유해물질을 덜 배출합니다. 꼭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요리라면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을 사용하면 유해물질 노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프라이팬 앞에 달라붙어서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를 하면 오븐 또는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할 때보다 유해물질 노출량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에서 펴낸 실내공기질 관리 가이드라인을 한 번씩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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