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도장찍는 기계 보급이 날인문화 개선이래요"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5.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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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T기업 취업한 한국청년이 느낀 타산지석

한국무역협회가 10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만기 부회장은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경우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를 존중하면서 조직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조장하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기다”라는 뜻이므로 잘못된 단어 선택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장려’하거나 ‘보장’하는 게 합당한 말인 것 같다.

정만기 부회장의 의도를 헤아려 다시 문장을 만들어보면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경우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를 존중하면서 조직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독려해야 한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일본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조직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독려해야 한다고 하는 걸까? 국제 뉴스에 관심이 많거나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알아챘을 거다. 일본의 느린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는 거다.

정 부회장은 9일 일본 도쿄에서 무역아카데미 IT 마스터 과정 수료 후 일본 기업에 취업한 한국 청년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 부회장은 청년들과 일본 취업 이유, 일본 기업 근로∙임금조건, 조직 문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한 청년들은 라쿠텐, 일본 IBM, LINE 등 일본 IT 기업에서 근무하는 IT 마스터 과정 수료생 7명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취업경험과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본 IT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참석자들의 발언이다. 참석자들은 일본 기업에 만연한 경직된 조직 문화와 관료주의가 일본 기업과 경제의 저성장의 근본 이유라고 짚었다. 참석자들은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직원과 리더 간 소통 부재 속 리더 중심으로 중요한 전략적 의사가 결정되는 기업의 의사결정구조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혁신 부재를 꼽았다.

IT 기업은 빠른 의사 결정과 사업 추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일본 기업에서는 디테일을 중시하는 불필요한 보고 서류 작성 등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 제때에 의사 결정과 시장 수요 대응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퇴행적 문화가 일본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어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지연시키고 발전 정체를 가져온다고 짚었다.

출처: 일본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출처: 일본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참석자들이 꼽은 사례로는 ▲디지털화 확산 추진 속 우편 또는 팩스 중심의 업무 처리 만연 ▲날인 문화 ▲정부 행정의 비효율성 등이 제시됐다. 일본 기업들은 상품 광고를 낼 때 ‘구매의뢰서는 팩스로 보내주세요’라고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본 주재 한국 기관들조차 사무용품 주문은 주로 팩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유별난 일본의 ‘도장 사랑’도 문제로 꼽혔다. 참석자들은 “일본에선 도장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날인 문화개선을 위해서는 전자 서명 활용이 필요하나 일본에서는 전자 서명 대신 도장 찍는 기계 발명과 도입으로 도장 찍는 시간 단축을 날인 문화 개선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정부 인·허가의 경우 신청 접수에 3개월, 허가 검토에 또 다른 3개월이 걸리는 등 신규 사업을 위한 정부 인허가 획득에 2∼3년이 소요되면서 스타트업 창업마저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퇴행적 문화와 사회적 정체로 인해 일본에서는 ‘일이 없으면 그에 상응하여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토리(さとり, 깨달음, 득도)’ 세대가 확산되고 있어 경제 활동이나 소비 활동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운둔형 외톨이)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일부 인사들이  한국 젊은 세대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또는 가치 및 취향에 따른 소비를 ’허세‘라고 지적하는 것과 비교된다. 일본 일부 언론은 이들이 점심값을 아껴서 고가 브랜드를 구매하고, 값비싼 오마카세 요리를 소비하는 등의 소비행태를 비판적인 논조로 지적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 SC IT마스터 과정은 ICT 인력 양성 및 해외취업 지원을 통한 청년 실업 해소를 목적으로 2001년에 개설되어 22년 동안 모두 2852명의 수료자를 배출했으며, 수료자의 96.7%인 2757명이 해외에 취업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약 74%가 일본에 취업해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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