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침몰하는 배에서 함장은 내리면 안 된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6.1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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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함장은 배에서 내리면 안 돼” 발언
타이타닉호·일본 항공모함 선장...함께 수장된 사례
국내 지침상 “충분한 인명구조 후 퇴선 가능”
이탈리아, 일본 등 법으로 선장 구조조치 의무 명시
해외에서도 구조조치 없이 퇴선했다가 징역형 선고

침몰하는 배의 함장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지난 5일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민주당 혁신기구 수장으로 임명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과거 ‘천안함 자폭’ 발언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무슨 낯짝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거냐.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며 “원래 함장은 배에서 내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권 대변인은 7일 오전 국회에서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고 사과했다. 권 대변인이 발언을 철회했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은 “군인이라면 경계에 실패”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권 대변인을 두둔하기도 했다.

천안함 관련 발언으로 민주당 권칠승 대변인이 논란을 빚자 최원일 전 함장을 만나 사과했다는 소식을 담은 방송 리포트. 출처=채널A
천안함 관련 발언으로 민주당 권칠승 대변인이 논란을 빚자 최원일 전 함장을 만나 사과했다는 소식을 담은 방송 리포트. 출처=채널A

배가 침몰할 때 함장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함장은 마지막까지 배에서 내려서는 안 되는 걸까? 이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이 된다. 현행 지침과 관행상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했다.

 

◈"함장은 배와 함께 남는다" 출처는?

침몰하는 배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게 전통이라는 통념이 있다. 선장이 해상 사고 시 죽음을 각오하고 배를 끝까지 지키는 걸 미덕처럼 그리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 중에는 영화로도 유명한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가 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군 해군 제독 야마구치 다몬 등 일부 장군들이 침몰하는 항공모함과 함께 가라앉았던 사례도 있다.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 모습. 출처=KBS뉴스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 모습. 출처=KBS뉴스

2014년 박영선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이 쓴 논문에 따르면, 이런 전통은 해난구조제도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위기 상황에서 모든 선원이 배에서 내렸으나 선박이 침몰하지 않았을 때, 선박을 구조한 자가 배에 남은 화물과 그 배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배와 배 화물이 개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선장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과거 토리 캐니언호(Torry Canyon), 아모코 카디즈호(Amoco Cadiz) 오염 사고에서 선장이 최후까지 남았다고 한다.

 

◈"인명구조 전, 퇴선 안 돼"

위험 상황 속 선장 의무는 여러 규정에 나온다. 해군 함정 ‘함장’은 해군 내부 지침을 따른다. 해군 공보실 관계자는 15일 통화에서 “(해군 규정상) 함장은 어느 부분에 대해서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는 내용은 있지만 “비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배 밖으로 탈출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해군 관계자는 “배마다 상황이 달라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군함 말고 다른 배의 규정도 있다. 해양경찰이 타는 해양경비함정 관련 규정은 함장의 구조조치 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함정 운영관리 규칙 제20조를 보면 “함·정장은 함정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예방조치와 인명 및 재산 보호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나온다.

민간 배 선장 의무는 선원법 제10조에 나온다. 선장은 화물을 싣고 내릴 때까지, 탑승객이 타고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면 안 된다. 다만 기상 이상 등 일부 사유가 있을 때는 가능하다. 이때 선장 직무를 대행할 사람을 직원 중에 지정하면 된다.

선원법 제11조에는 선박 위험시 조치 의무가 나온다.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인명구조를 다 하기 전에 선박을 떠나면 안 된다. 다만 해당 법률은 인명구조 이행의 기준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선원법에 나온 선박 위험시 조치 내용 갈무리. 출처=선원법
선원법에 나온 선박 위험시 조치 내용 갈무리. 출처=선원법

충분한 '인명구조 조치'의 기준점은 아직 모호하다. 해양 사고 발생 시 선장 등 직무 변론을 맡는 박영선 심판변론인은 14일 통화에서 “(선원법에 구조조치 이행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기준이 없을 때는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다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변론인은 “민법상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장이 배를 먼저 나왔다고 지탄받은 사례는 명백히 구조조치를 안 한 경우다. 2014년 세월호 이준석 선장 행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선장은 승객이 익사할 수밖에 없음이 예견됐음에도 퇴선 조치를 하지 않고 먼저 배에서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11월 이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4년 4월 20일 미 언론 뉴욕타임스가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탈출을 비난한 사실을 보도한 YTN 리포트 화면 갈무리. 출처=YTN
2014년 4월 20일 미 언론 뉴욕타임스가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탈출을 비난한 사실을 보도한 YTN 리포트 화면 갈무리. 출처=YTN

 

◈해외에서도 선장 의무 명시

해외에도 침몰 등 선박 위험시 선장의 직무상 의무를 규정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다. 일본 선원법 제11조(재선의무)는 "선장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여객이 내릴 때까지 선박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한다. 제11조~제14조 내용은 비상시 인명 구조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박영선이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선장이 선박을 버리고 가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선박 위험시 선장이 탑승객을 두고 침몰 전 미리 배에서 내리면 주의 의무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다. 이탈리아 해상법 1097조는 "조기 퇴선한 선장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미국 해양 사상자 지원 및 정보 관련 의무(46 U.S. Code § 2303, 2304)는 선박충돌 시 상대 선박에 대한 구조지원, 바다에서 조난자 지원 의무를 명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선장이 선박 운항에 관해 능력이 부족할 때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또한 같은 규정의 다른 조항을 보면 "선장, 기관사, 도선사 등이 선박에서 직무상 부적절, 과실 또는 부주의로 인명이 사망하면 벌금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2014년 <뉴욕타임스>는 미 해군의 경우 1814년 규정에 따라 선장은 최대한 선박에 오래 남아 해양구조를 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법령은 아니지만 선장이 관행적으로 참조하는 지침서도 있다. 미국 상선사관지침서(Merchant Marine Officers' Handbook)는 위기 시 선장의 5가지 책임을 명시했다. 특히 선장이 배에서 최후로 떠나야 한다는 내용이 가장 먼저 규정됐다.

미군 상선사관지침서에 나온 선장의 5가지 책임 내용. 출처=박영선 논문(2014)
미군 상선사관지침서에 나온 선장의 5가지 책임 내용. 출처=박영선 논문(2014)

영국은 실정법 대신 관행으로 구조조치 의무를 강조해왔다. 2012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탈출할 때까지 선장이 선박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19세기 중반에 확립되었다. 선장이 침몰까지 계속 있어야 하는 건 아니더라도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구조 없이 퇴선한 선장은 처벌...전 세계 공통

해외에서도 선장이 구조조치를 하지 않고 일찍 배에서 내려 처벌된 사례가 있다. 1990년 4월 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덴마크 프레딕션 항로를 오가던 스캔디내비안 스타호는 운항 중에 불이 났다. 당시 선장은 비상경보를 울리고 퇴선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새벽에 난 화재 가운데 다수 승객은 비상경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돼 158명이 숨졌다.

당시 선장은 승객들이 화재를 피하고 있는데 선원과 함께 배에서 빠져나왔다.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년 뒤 덴마크 코펜하겐 해사법원은 부적절한 보안 조치를 이유로 선장에게 유죄를 인정해 총 60일 구금 판결을 했다.

2012년 1월에는 이탈리아 국적의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4252명의 손님을 태우고 기글리오 섬의 산호초에 닿아 침수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퇴선 명령이 내려졌지만, 심한 경사와 어둠 때문에 탈출이 어려워 총 32명이 사망했다.

당시 선장은 많은 손님이 남아있던 시간에 먼저 구명정을 타고 육지로 나왔다. 이 선장은 자신이 헛디뎌 구명정으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연안경비대는 선장에게 선박으로 복귀해 탈출작업을 지휘할 것을 요구했지만 선장은 거절했다. 이듬해부터 선장은 이탈리아 형법과 항해법에 따라 과실치사, 조기퇴선 등 5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이탈리아 법원은 그에게 징역 16년 형을 선고했다.

코스트 콩코르디아호 침몰 소식을 다룬 영국 언론  인터넷 기사 화면 갈무리
코스트 콩코르디아호 침몰 소식을 다룬 영국 언론 인터넷 기사 화면 갈무리

정리하면,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이 구조조치를 다 해야 하는 건 전 세계 공통 의무다. 국내에서는 해군함, 해양경찰, 민간선 각각 별도 규정으로 선장의 구조조치 의무를 명시한다. 선장은 구조조치는 최대한 많은 탑승객과 화물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배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충분한 조치가 된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구조조치를 충분히 했다면, 선장도 대피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선장이 조기 퇴선해 처벌된 사례는 대개 탑승객 대피가 절반도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선장이 육지로 나온 사례들이다.

그러면 최원일 천안함장은 침몰하는 배에서 머물며 천안함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았으니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당시 언론보도와 생존한 천안함 장병들 증언에 따르면 최원일 함장은 천안함이 폭발했을 당시 함수에서 모든 생존 승조원들을 구조하는 것을 지휘했고 해양경찰이 구조를 위해 출동했을 때 맨 마지막으로 퇴함했다. 천안함과 운명을 같이 하려고 했지만 부하들이 억지로 끌고 나왔다는 생존 병사의 증언도 남아 있다. 

당시 부하 병사 구조를 지휘한 뒤 해경에 의해 구조된 최원일 전 천안함장 사례는 명백히 구조 책임을 방기한 세월호 선장과는 다르다. 그리고 평시에 예고되지 않은 잠수함의 어뢰 공격은 첨단 소나(수중 음향탐지기) 장치가 있지 않는 이상 방어가 쉽지 않다는 것이 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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