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그늘] ①전국 지자체, 코로나19 잡는다며 살충제 뿌렸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6.2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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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의 그늘,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① 229개 지자체 방역소독실태 전수조사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세종시, 제주시, 서귀포시 포함)를 전수조사한 결과 4곳(1.7%)만이 질병관리본부의 방역소독 지침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99곳(43.2%)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소독약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소독법인 ‘헝겊에 소독약 묻혀 닦기’ 대신 약품을 뿌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톱은 일선 지자체의 코로나19 방역 소독 실태를 [K-방역의 뒷면,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로 4회에 걸쳐 기록한다. 왜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은 효과 없는 소독약과 소독 방식을 선택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반드시 재연될 향후 감염병 사태에서 방역 소독이 전시행정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다.

[K-방역의 그늘,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 

① 전국 지자체, 코로나19 잡는다며 살충제 뿌렸다 

길거리 소독, 세금을 '길에 뿌린' 지자체

'소독약 뿌리는 장면' 반복 보도, 언론도 공범

뿌리면 오히려 위험하다...닦고 문 열고 손 씻기!

◈미생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잡는다?

부산 남구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소독용으로 유용미생물(EM)을 사용했다. 2월28일부터 5월15일까지 88차례나 썼다. 같은 기간 모두 327회 코로나19 방역 소독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26.9%를 EM이 차지한 것이다.  EM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는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효과가 있는 소독제 성분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기장군 농업기술센터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면서 나눠준 EM(유효미생물) 사용설명서.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기장군 농업기술센터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면서 나눠준 EM(유효미생물) 사용설명서.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뉴스톱 취재에 대해 부산 남구 관계자는 "기장군 농업기술센터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EM을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장군 농업기술센터는 2월28일부터 EM을 배부했다. 센터는 '유용미생물 활용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법'이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했다. EM과 구연산을 섞어 분무소독과 청소에 활용하면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톱은 기장군 농업기술센터에 EM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는지 검증된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를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인 세균과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한다면서 배부한 EM이 정작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없애는 능력이 있는지는 모른다는 입장이다.

기장군 농업기술센터는 EM에 대해 "유용미생물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많은 미생물 중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미생물 수십 종을 조합, 배양한 것"이라며 "효모균, 유산균, 광합성균, 고초균 등이 유용미생물 주요 균종이며, 이들 간의 복잡한 공존공영관계가 만들어내는 발효생성물의 항산화력이 유용미생물의 효과"라고 밝혔다. 결국 효모균, 유산균 등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잡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도 코로나19 방역 소독에 EM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남 완도군은 2월11일부터 5월15일까지 44회 코로나19 관련 방역소독을 실시했다. 완도군은 '비오시트릭팜액'과 '디에이청정액' 2가지 소독약만을 사용했다. 모두 주요성분이 구연산인 약품이다. 하지만 구연산은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 유효성분에 포함되지 않았다.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구연산이 코로나19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데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완도군은 코로나19 방역 소독으로는 100% 예산낭비만 한 셈이다. 강원도 삼척시도 2종류의 구연산 제제(바이오크린, 노박알파) 만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제 유효성분. 출처: 코로나19 살균·소독제품 오남용 방지를 위한 안내 및 주의사항, 환경부(2020.5.20)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제 유효성분. 출처: 코로나19 살균·소독제품 오남용 방지를 위한 안내 및 주의사항, 환경부(2020.5.20)

◈전국 229곳 중 4곳만 지침 준수

뉴스톱은 전국 기초 지자체 229곳(세종시, 제주시, 서귀포시 포함)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코로나19 방역소독제 사용 내역을 입수했다. 감염병 대응 방역 소독은 기초지자체의 고유 사무로 규정돼 있어 기초지자체를 전수조사하면 전국의 코로나19 방역 소독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뉴스톱은 기초지자체들이 올해 1월부터 5월15일까지 사용한 코로나19 관련 소독약의 종류와 방역 당국의 승인 여부, 소독약 사용 방법, 사용량, 구입금액, 인건비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전국 기초지자체 단 4곳(1.7%)만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효과가 입증된 5종의 유효성분(염소화합물, 알코올, 4급 암모늄 화합물, 과산화물, 페놀화합물)을 바탕으로 제조된 소독약 중 환경부의 안전확인대상으로 승인된 소독약으로 승인된 76가지 소독제 가운데서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소독 방법으로는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헝겊에 소독약을 적신 뒤 닦아내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두가지 요건 모두를 충족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와 충북 영동군, 전북 익산시, 경남 진주시 뿐이었다. 나머지 225곳은 지침과는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소독약 제품을 선정하거나 약품을 뿌리는 방식으로 소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약품을 뿌리는 방식은 물체 표면에 소독약이 골고루 묻지 않기 때문에 소독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충분한 소독 효과를 기대하려면 물체 표면이 젖을 정도로 많은 양을 뿌려야 하기 때문에 남용 우려가 있다. 게다가 뿌리는 방식은 에어로졸을 발생시켜 물체 표면에 내려앉은 바이러스를 공기 중으로 재확산시킬 우려도 있다. 때문에 방역 당국은 소독약을 헝겊에 적신 뒤 문질러 닦는 방법을 권고하고 있다.

 

환경부가 5월 20일 배포한 '코로나19 살균 소독제품 오남용 방지를 위한 안내 및 주의사항'
환경부가 5월 20일 배포한 '코로나19 살균 소독제품 오남용 방지를 위한 안내 및 주의사항'

 

◈친환경 인체무해 소독약은 없다!!

지자체들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어겨가면서 선택한 성분으로는 차아염소산수, 구연산, 이산화염소 등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은 친환경, 인체 무해 등의 광고 문구에 현혹돼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제품들은 "뿌리기만 해도 살균효과가 충분하다"고 광고한다. 제형 자체가 스프레이식으로 출고되거나 분무소독기에 넣어 쓰는 전용 소독제로 출시되는 제품들이 많다.

지자체들은 확진자 동선과 상관없는 다중이용시설 등을 예방 목적으로 소독할 때 주로 미승인 제품을 사용했다. 냄새가 강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는 제품을 선택해 분무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확진자 동선 소독에 환경부 승인을 받은 제품을 사용했다. 미승인 소독약의 코로나19바이러스 소독효과에 대해 지자체들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살균·소독제는 없다"고 단언한다. 환경부는 "살균·소독제 성분은 세균과 바이러스 등을 죽이거나 비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며 생명체에 독성을 가진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의한 건강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소독제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고창군, 제주시, 서울 은평구, 부산 남구, 울산 북구, 경기도 오산시 등 지자체는 뉴스톱에 공개한 코로나19 방역 소독제 사용내역에 모기 등 해충 구제에 사용되는 살충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일부는 단순 집계 오류라고 해명했지만, 일부는 방역 업체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강원도 횡성군과 전북 김제시, 전남 강진군, 경북 안동시·의성군 등은 가축방역용 소독약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승인받은 약품이 품귀현상을 빚어 어쩔 수 없이 가축방역용 소독약을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지자체는 "일선 읍면과 시군구 사업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약품을 구입해 사용하다보니 약품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책임을 돌렸다.

 

제주시가 공개한 코로나19 방역소독제 사용내역. 살충제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제주시가 공개한 코로나19 방역소독제 사용내역. 살충제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코로나19 방역소독 컨트롤타워가 없다!

일선 지자체들이 중구난방으로 코로나19 소독약을 사용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방역 소독 업무에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방역 소독 업무는 기초 지자체의 고유업무이다. 소독약 선정과 구매, 소독 방법 선정 등 모든 업무가 지자체의 권한이다.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는 적합한 소독방법과 약품을 제시하고 있지만 권고 또는 안내에 그치고 있어 지자체들에게 큰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셈이다.

방역업체들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일선 지자체의 방역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일부 방역업체들은 정부의 권고를 따르는 대신 스스로의 경험 또는 체험을 우선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권고에 포함되지 않은 수입 소독제를 방역에 사용하는 한 업체 대표는 "승인된 제품이라고 해서 소독효과가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기관이 승인한 제품이 효과도 좋고 작업자에게도 덜 해롭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문성 없는 행정이 더해진다. 일부 지자체 방역 담당 공무원들은 질병관리본부의 소독약 사용 관련 지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일부 지자체들이 가축방역용 소독약을 가져다쓰고, 살충제를 쓰기도 하는 이유는 방역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코로나19 관련 방역 소독 업무를 2개 이상의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 보건소와 재난담당부서를 중심으로 지역경제관련 부서, 문화체육담당 부서 등이 제각각 방역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이다.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일선 지자체까지 이어지는 일사불란한 방역소독 행정 전달 체계가 구축돼 있었다면 행정력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험으로 입증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침이 필요

코로나19는 인류가 처음 겪어보는 감염병이다. 때문에 발생 초기엔 모두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방역소독과 관련한 지침도 2월초에 처음 제작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소독 효과 검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 소독제 제품 가운데 휴먼코로나바이러스 소독 효과를 인증받은 제품 또는 WHO 등 국제기구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 사멸 효과가 있다고 인정한 제품 등을 추려 사용 권고 제품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뒤 5개월이 흐른 지금도 실험을 통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구연산, 차아염소산수 등 현실에서 코로나19 방역용으로 대량 판매되고 있는 성분들을 검증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실제 코로나19바이러스를 이용해 사멸시험을 한 뒤 적격 여부를 가려내 실제로 효과가 있는 제품만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기초지자체 보건소 관계자는 "지침이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며 "실험을 통해 입증된 내용을 바탕으로 지침을 제시하면 현장 방역 소독 담당자들이 제품 선택에서부터 소독 방법까지 철처히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뿌리기만 하면 OK? 뿌려서는 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이어집니다.

 

2020년 6월29일 11:11 기사수정> 독자 김진흥님의 제보에 따라 서울 마포구 사례를 재점검한 결과 일부 '소독약을 뿌리는 방법'으로 방역이 진행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모두 준수한 지자체는 5곳→4곳으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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