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1~21대 참모총장 모두 독립군 토벌했다?

  • 기자명 임영대
  • 기사승인 2020.08.1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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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회 회장 김원웅 씨가 기념사를 낭독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정부 주관 행사에서는 본인이 직접 읽었고, 각 시도에서 개별적으로 열린 행사에는 사본을 보내서 현지 광복회원들이 대독하게 했다.

 

 

그런데 각지에 보낸 사본은 김원웅 회장 본인이 읽은 버전(이후 정본으로 지칭)과 달랐다. 정본에 있는 내용이 사본에 없기도 하고, 사본에 있는 내용이 정본에 없기도 했다. 문제는 이 사본에만 있고 정본에는 없었던 부분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집권하여 국군을 창설하던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무려 21대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이들 민족 반역자들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장관, 국회의원, 국영 기업체 사장, 해외 공관 대사 등 국가 요직을 맡아 한평생 떵떵거리고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 친일파를 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초대~21대 육참총장, 독립군 토벌한 자" 김원웅 역사까지 왜곡(조선일보)


정본에 없고 사본에만 언급했다고 하는 이 대목을 보면, 대한민국 초기 육군참모총장 18(3명이 2회 취임함) 전원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한 적극적인 친일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며, 역사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이들 중에는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초대부터 21대까지 육군참모총장들의 일제 강점기 군경력 확인해보니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일본군에 스스로 입대했으면서, 독립군과 전투를 벌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대부터 21대까지, 18명의 육군참모총장 중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요 참모총장의 독립군 토벌 여부를 팩트체크했다. 독립군을 토벌했으면 사실, 토벌하지 않았으면 거짓이다.

 

▲초대 이응준(李應俊), 참모총장 재직기간 19481215~ 194958일 

팩트체크 사실.

이응준은 본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대한제국군이 해체된 상태라 대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했다. 교육 중에 대한제국이 없어졌지만 그대로 교육을 마저 마치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대좌(대령)였다.이응준은 일본군에서 만주 방면으로 출전한 적이 있으며, 시베리아 출병(볼셰비키 혁명을 방해하려는 열강의 간섭전쟁) 당시에는 항일조직에 대한 정보수집 임무에 종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로 독립군을 토벌하러 다닌사람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2대 채병덕(蔡秉德), 참모총장 재직기간 194959~ 1949930, 41950410~ 1950629

팩트체크 거짓.

채병덕은 일본 육사 49기로, 1937년에 임관하여 포병 및 병기장교로 복무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시 계급은 소좌(소령)였다임관 이후 주로 복무한 곳은 일본 본토의 학교 및 군사시설이었으며 종전 시점에는 부평에 있는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선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며, 당연히 독립군을 토벌한 적도 없다.

 

▲ 3대 신태영(申泰英), 참모총장 재직기간 1949101~ 195049

팩트체크 사실.

이응준처럼 대한제국군으로 입대해서 일본 육사에 유학하여 일본군으로 임관,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중좌(중령)였다신태영 역시 시베리아 출병에 참여했으며, 당시 볼셰비키 측 붉은 군대에는 독립을 원하는 조선인 다수가 참가하고 있었으므로 신태영도 독립군을 토벌하던 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5대 정일권(丁一權), 참모총장 재직기간 1950630~ 1951622, 81954214~ 1956626

팩트체크 사실.

정일권은 1940년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종전 시점에는 헌병 대위였다. 만주군은 일본군 그 자체는 아니라 해도 일본군의 괴뢰군이었으며, 그 당시에 헌병이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하면, 정일권은 확실하게 독립군을 토벌한사람이다.

 

▲ 6대 이종찬(李鐘贊), 참모총장 재직기간 1951623~ 1952722

팩트체크 거짓.

이종찬은 채병덕과 일본 육사 동기로, 1937년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같은 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상하이에 파견되어 전투를 치렀고, 1940년에 일본 본토로 귀환했다가 1942년에 뉴기니 전선으로 가서 종전까지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소좌(소령)였다이종찬이 전투를 치른 상대는 중국 국민당군을 비롯한 연합군이었다. 독립군과 직접 전투한 적은 없다.

 

▲ 7대 백선엽(白善燁), 참모총장 재직기간 1952723~ 1954213, 101957518~ 1959222

팩트체크 사실.

백선엽은 1942년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19432월부터 종전까지 게릴라 토벌이 주임무인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였다. 이때 별도로 조직한 대한독립군과 싸웠던 적은 없으나, 주된 상대였던 팔로군에 조선인 대원 상당수가 들어가 있었으므로 독립군을 토벌한 류에는 분명히 속한다.

 

▲ 9대 이형근(李亨根), 참모총장 재직기간 1956627~ 1957517

팩트체크 거짓.

이형근은 1943년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종전 시 계급은 대위였으며, 중국 전선에 나간 적은 있으나 독립군과 싸우지는 않았다.

 

▲ 11대 송요찬(宋堯讚), 참모총장 재직기간 195987~ 1960522

팩트체크 거짓.

1939년에 일본군에 지원병으로 자원입대하였다. 종전 시 계급은 조장(상사)이었으며, 태평양전쟁 기간 내내 조선에 있으면서 훈련소 조교로 근무하였다. 전선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므로 독립군을 토벌한 적도 없다.

 

▲ 12대 최영희(崔榮喜),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0523~ 1960828

팩트체크 거짓.

학병 출신으로 1944년에 일본 육군 공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 13대 최경록(崔慶祿),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0829~ 1961216

팩트체크 거짓.

1939년에 일본군에 지원병으로 자원입대하였다. 동기들 중 최우수 성적으로 하사관후보생이 되었으며, 육사에도 합격하였으나 입학 대기 중에 태평양 전선에 나가 중상을 입고, 일본으로 후송되어 회복 후 준위로 임관하여 계속 복무하였다.

 

▲ 14대 장도영(張都映),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1217~ 196165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전선에서 복무했다. 장준하와 같은 부대에 있었다.

 

▲ 15대 김종오(金鍾五),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166~ 1963531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교육 중에 전쟁이 끝나 귀국하였다. 전투경험은 전혀 없었다.

 

▲ 16대 민기식(閔耭植),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361~ 1965331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1945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 17대 김용배(金容培),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541~ 196691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1944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 18대 김계원(金桂元),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692~ 1969831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1944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 19대 서종철(徐鐘喆), 참모총장 재직기간 196991~ 197261

팩트체크 거짓.

학병으로 끌려가 1944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 20대 노재현(盧載鉉), 참모총장 재직기간 197262~ 1975228

팩트체크 거짓.

일본군 복무 경력이 전혀 없다. 일본군 경력이 없는 첫 참모총장이다.

 

▲ 21대 이세호(李世鎬), 참모총장 재직기간 197531~ 1979131

팩트체크 거짓.

1944년에 일본 육군항공대 간부후보생으로 지원, 히로시마에서 교육받다가 임관하기도 전에 종전을 맞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1대부터 21대까지 육군참모총장 총 18명 중 확실하게 일제에 빌붙어서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응준, 신태영, 정일권, 백선엽 4명밖에 없다. 범위를 좀 더 넓혀서 독립군과 싸우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일본군에 복무한사람까지 대상을 확대한다면 채병덕, 이종찬, 이형근, 송요찬, 최경록, 이세호까지 추가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불과 10명이다.

학병으로 끌려갔다 해도 어쨌건 일본군은 일본군이고, 독립군과 직접 싸우지 않고 연합군과 싸우거나 후방에만 있었다고 해도 다 똑같은 반민족행위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럴 거면 일본군 복무만 비판하면 되지 독립군 토벌이라는 꼬리표는 왜 추가로 덧붙이는가?

더구나 20대 노재현 총장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일본군 복무 경력이 없다. 그런데 ‘1대부터 21대까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했다라는 식의 표현을 과연 써도 되는 것일까? 이는 유족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도 할 말이 없을 일이다광복회장이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고 친일 잔재를 타파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해서 그 자신이 잘못된 역사를 퍼뜨린다면 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기사에 쓰인 자료는 대부분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며 육사 졸업자들의 약력은 저서 <비극의 군인들>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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