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윤씨"...일본 언론 윤석열 대통령 하대했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3.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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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 보도의 씨(氏)는 세계정상, 장관, 경제인 지칭
일본어 전문가 “하대로 보기는 어려워”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만났습니다. 일본은 반도체 3개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기로 했고,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철회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양국 간의 대화가 재개되는 성과는 있었지만, 이를 위해 일본에 강제동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구글 검색창에 '윤씨 요미우리신문'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오는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구글 검색창에 '윤씨 요미우리신문'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오는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정상회담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언론의 윤 대통령 ‘하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7일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1면 기사 사진을 두고 ‘하대당했다’라는 취지의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게시물에는 3월 1일 자 <요미우리신문> 1면이 사진이 나옵니다.

3월 1일자 '요미우리신문' 1면 제목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윤씨(尹氏)로 지칭했다. 커뮤니티 이용자는 이를 '하대'라며 글을 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SLR클럽' 게시글 화면 갈무리
3월 1일자 '요미우리신문' 1면 제목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윤씨(尹氏)로 지칭했다. 커뮤니티 이용자는 이를 '하대'라며 글을 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SLR클럽' 게시글 화면 갈무리

우측 헤드라인 기사 제목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윤씨(尹氏)’로 나옵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이를 두고 “하대당했다”고 비꼬기도 하고, 일부 이용자는 “일본에서는 원래 국가 정상에 ‘씨(氏)’라는 표현을 쓴다”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일본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은 '문대통령'이라고 호칭한 반면(위 사진), 윤석열 대통령은 '윤씨'라고 표기(아래 사진)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일본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은 '문대통령'이라고 호칭한 반면(위 사진), 윤석열 대통령은 '윤씨'라고 표기(아래 사진)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때는 주요 일본 언론이 문대통령(文大統領)이라고 제목에 사용한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윤씨'라고 해서 윤 대통령을 하대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뉴스톱은 일본 언론에서 대통령이나 국가 정상을 ‘씨(氏)’로 지칭하는 것에 하대하는 의미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씨’에 상응하는 일본어 표현 ‘-상’ ‘-사마’

일본어와 한국어의 사람을 부르는 호칭접미사는 다릅니다. 단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한원형 교수의 2015년 논문 ‘한일 호칭접미사의 대조 연구’를 보면, 일본어의 상(-さん), 사마(さま)는 한국어의 ‘-씨’ ‘-님’ 등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본의 호칭접미사 상(-さん), 사마(さま)는 인명이나 직함에 붙어 ‘경의’를 나타냅니다.

우리말 ‘-씨’는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 아닌 상대방과 화자의 일반적인 관계만을 나타냅니다. 대우의 정도로 보면 상대를 높여주는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상(-さん)은 상대방을 높여 대우하는 기능과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를 나타내는 중간 단계 대우 기능이 있습니다. 상(-さん)은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를 나타내는 우리말의 ‘-씨’와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씨'와 일본어 '-상' '-사마'를 비교한 표. 논문 자료 갈무리
우리말 '씨'와 일본어 '-상' '-사마'를 비교한 표. '한일 호칭접미사의 대조 연구' 내용 갈무리

◈일본 언론보도 속 ‘씨(氏)’...세계정상, 장관, 경제인 지칭

그렇다고 일본에서 상(-さん)만 쓰는 건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말 ‘씨’의 한자인 성씨 씨‘氏’자를 언론 보도 같은 ‘글’에서 많이 씁니다. 전남대학교 언어교육원 나카사카 후미코의 2019년 논문은 신문 기사의 용례를 중심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씨(氏)’의 차이를 비교한 결과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2018년 6월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의 일간지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일본 일간지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 신문‘의 디지털 기사에 나온 우리말 ’씨‘와 일본어 ’씨(氏)‘를 비교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말 ‘씨’는 언론 보도에서 사건의 용의자, 피해자, 일반인을 언급할 때 쓰였습니다. 익명의 피의자를 언급한다면 피고인 ‘박모 씨’로 쓰거나, 일반 시민들을 언급할 때 ‘택시운전사 ‘최모 씨’로 쓰는 식입니다. 혹은 앞에서 성과 이름을 다 언급했을 때, 뒤에는 성에 ‘씨’만 붙여 줄여서 언급할 때 쓰기도 합니다.

한국 언론에서 '씨'는 대부분 일반인에게 쓰인 것을 알 수 있음. 한일 호칭접미사 씨와 씨(氏)를 비교한 전남대 나카사카 후미코의 논문 자료를 번역한 표. 나카사카 후미코 논문 갈무리

반면 일본어 ‘씨(氏)’는 세계 지도자, 장관 등 정치·경제인에게 더 많이 쓰였습니다. ‘해외 정상’은 가장 높은 빈도로 일본어 ‘씨(氏)’로 지칭됐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의 2017년 2월 10일 자 기사에는 ‘트럼프씨’로 언급합니다. <아사히신문>의 2019년 2월 28일 자 기사에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씨’로 언급됩니다. 故 아베 전 일본 총리 역시 ‘씨’로 불리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회장, 고위 관료, 단체장을 언급할 때는 그다음 빈도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본 경제단체 회장의 이름 혹은 미식축구부 감독 이름 옆에 씨를 붙인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연구의 결론은 한국에서는 일반인에게 많이 쓰이는 ‘씨(氏)’가 일본에서는 정상, 고관, 관료 등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 언론에서 씨(氏)는 주로 정상과 고위공직자, 관료에게 쓰인 것으로 나타남. 한일 호칭접미사 씨와 씨(氏)를 비교한 전남대 나카사카 후미코의 논문 자료를 번역한 표. 나카사카 후미코 논문 갈무리
일본 언론에서 씨(氏)는 주로 정상과 고위공직자, 관료에게 쓰인 것으로 나타남. 한일 호칭접미사 씨와 씨(氏)를 비교한 전남대 나카사카 후미코의 논문 자료를 번역한 표. 나카사카 후미코 논문 갈무리

논문에 언급된 사례 외에도 최근의 일본 언론 보도에는 여러 차례 각국 정상 이름에 ‘씨(氏)’가 붙어서 나옵니다. 지난해 3월 10일 일본 <TBS뉴스>는 당시 윤석열 후보의 당선 확정을 다루면서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씨( 民の力 錫悅氏)’라는 자막을 달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이름에도 씨(氏)가 붙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다룬 <テレ東BIZ> 리포트 제목에는 ‘바이든씨(バイデン氏)’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19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SNS에 쓴 글을 보도했습니다. 리포트 제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トランプ氏'로 언급됐습니다.

3월 19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리포트 자막에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이름 뒤에 씨(氏)를 붙임.  'NHK' 리포트 화면 갈무리
3월 19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리포트 자막에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이름 뒤에 씨(氏)를 붙임.  'NHK' 리포트 화면 갈무리

일본 관련 전문가에게도 문의해봤습니다.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강철구 교수는 17일 뉴스톱과 전화인터뷰에서 “씨(氏)는 일본에서 다른 나라 대통령을 지칭할 때 그렇게 쓰기도 한다”며 이 표현 자체가 “상대를 하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강 교수는 “일본인 대부분 윤 씨라고 해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있어서 제목을 그렇게 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김태경 교수는 뉴스톱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를 다른 일본 언론 기사 제목에서도 ‘아베 씨’라는 표현이 나온다”며 “정치인뿐만 아니라 유명한 사람에게 호칭을 넣기 애매할 때 ‘씨’를 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통상 기사 내부에서는 직책명을 써주고 있기 때문에 (씨를 써도) 문제 삼을 내용은 없는 거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언론 중에는 '윤씨'가 아니라 윤대통령(尹大統領)이라고 표기한 언론도 꽤 있습니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산케이신문도 야후재판 온라인 판에서 <한국 윤대통령 '불지지' 60%대로 상승 여론조사, 방일이 영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20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3월 20일자 산케이신문 '한국 윤대통령 '불지지' 60%대로 상승 여론조사, 방일이 영향' 기사 캡처.
3월 20일자 산케이신문 '한국 윤대통령 '불지지' 60%대로 상승 여론조사, 방일이 영향' 기사 캡처.

종합하면, <요미우리신문> 보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윤씨’로 표기한 것은 상대국 정상에 대한 ‘하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전에도 일본 언론들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 고 아베 전 총리에게도 ‘씨(氏)’를 붙여 보도해왔습니다. 이에 대한 일본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합니다.

호칭대명사는 언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한자문화권에서는 같은 글자로 된 호칭대명사인 '씨(氏)'를 쓰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쓰임새는 국가마다 다르고, 존대의 정도 역시 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외신을 접할 때 우리말에 대응되는 표현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오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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