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민주노총이 북한 지령을 받고 구호를 사용했다?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3.17 17: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종북 간첩단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간첩노조 특위(가칭 종북세력 척결 특별위원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는 지난 13일 문화일보 <[단독] 북한이 하달한 “퇴진이 추모다” 구호… 앵무새처럼 따라 한 노조>라는 제목의 기사 보도 때문인데요.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다른 언론 매체들도 연이어 보도했습니다. 

문화일보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1월 민주노총 압수수색 과정에서 북한 지령문이 발견됐는데,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애도를 반정부 투쟁으로 바꾸고,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등의 구체적인 투쟁 구호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태원 참사 추모 집회에서 실제로 그 문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반정부 투쟁에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일까요? 뉴스톱이 확인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구호, 민주노총이 북한 지령을 받아서 사용했다?

문제시되는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문구를 중심으로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문화일보 기사 중 메인 사진(아래)을 자세히 봤을 때,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원문 기사 캡처 

또 실제로 언론사 추모 집회 영상에서 보이는 피켓들에서도 '국민들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에 '촛불행동'이라고 적혀있습니다. TBS, YTN 등 다른 매체 영상에서 나온 피켓을 확인해보면, 촛불행동이 적혀있습니다.  

2022.11.05 TBS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 도심 곳곳서 추모 집회 영상 일부 캡쳐 출처 : TBS 뉴스 영상
2022.11.05 TBS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 도심 곳곳서 추모 집회 영상 일부 캡쳐 출처 : TBS 뉴스 영상
2022.11.19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 대규모 촛불 집회..."20만 명 이상 모였다" 출처=YTN 

촛불행동 페이스북에 가서 사진을 더 확인해봤습니다.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추모 집회 참여자 사진(아래)들을 확인해보면 '퇴진이 추모다' 피켓을 포함한 피켓 모두 맨밑에 '촛불행동'이라 적혀있습니다.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다른 피켓은 어떨까요? '퇴진이 평화다', '국민들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라는 팻말에 모두 촛불행동(역시 빨간 선으로 표시해둔 부분) 문구가 기입돼 있습니다.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그렇다면 촛불행동은 무엇일까요? 지난해 4월 19일 출범한 '촛불승리전환행동' 시민단체의 약칭입니다. 이전까지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으로 활동했다가 이름을 바꿔 출범한 이후 ▲적폐 청산 ▲사회 개혁 ▲평화 등을 실천하는 단체입니다. 

이 피켓과 문구를 만든 곳도 촛불행동입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안진걸 촛불행동 대표는 "해당 구호들은 수많은 시민이 제안했고 저도 개인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회의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정해진 구호"라고 밝혔습니다.

민주노총도 경향신문 기사에서 "집회 구호를 정할 때 내부에서 안건 상정·회의·토론 등의 절차를 밟는데, 이 과정에서 (퇴진 용어를 쓰기로) 결정도 집행도 하지 않았다"며 "현 정부 퇴진이 아닌 '심판', '규탄' 등의 단어를 포함한 구호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태원 참사 관련 집회도 유가족들과 함께 소위 '퇴진 촛불'과는 거리를 두고 별도의 추모 행사와 집회를 진행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태원 참사 추모 집회 포스터를 보면 촛불행동 측이 열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출처=촛불행동 페이스북.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촛불행동 측에 지령을 전달하고 지시한 걸까요? 별도의 조직인 데다, 긴밀한 관계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진보라고 할 순 있어도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촛불행동은 이태원 참사 이전부터 적폐청산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 퇴진과 검찰 독재 규탄 집회 등을 열었던 반면, 민주노총은 주로 노동 쟁점에 대한 집회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해보면, 민주노총이 북한으로부터 지령받은 구호를 이태원 참사 직후 집회에서 사용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 민주노총은 간첩노조? 반정부 투쟁에 북한 개입설? 

민주노총이 간첩노조라는 건 타당할까요?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이 이른바 '창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관계자 4명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관계자들은 지난 2016년 3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 접선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공안 당국이 확보한 북한 지령문에서 북한은 여러 차례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한편, 구체적인 투쟁 방식을 하달하기도 했다.

또 공안 당국이 확보했다는 지령문에서 "지난 해 7월 2일 민주노총에서 ○○○ 패거리들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하며 노동자 대회를 열겠다고 하므로, 자통 이사회에서는 민주노총이 7월 중에 대규모 집중 투쟁들을 격렬하게 벌여 전반적인 반정부 투쟁을 주도해 나가게 하라"라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촛불행동 등 윤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에는 정중하게 ‘저희끼리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퇴진 운동을 벌이는 단체와는 거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시위 과정에서도 퇴진이 아닌 '심판', '규탄' 등의 단어를 포함한 구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또 민주노총의 노조 수(2018년 기준)는 2032개로 조합원(2019년 기준)은 101만4845명입니다. 이 전체 숫자에 비해 지난 1월 압수 수색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4명으로 인해 101만4845명이 소속된 조직을 '간첩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국민의힘이 간첩단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간첩노조 특위를 만든다지만, 그 근거와 정보들은 미흡한 상황입니다.   

촛불행동 측은 지난 15일 <민주노총이 "퇴진이 추모다" 지령 받았다고? 수준 떨어지는 조선일보, 국정원 간첩 조작의 의도>라며 유튜브 긴급 방송을 통해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민주노총을 때리다가 이제 어디로 갈 건지 미리 알려주는 사안"이라며 "탄압 방향을 촛불행동으로 잡았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들은 '사전 차단용'이라고 봤습니다. 최근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민주노총 '간첩노조'라는 점을 더불어민주당도 좀 알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소미아·방사능 오염수·독도·강제 동원 문제 등을 최대한 풀고 올 것 같다"며 "그럼 시위가 폭발할텐데 여기에 민주당 등 큰 조직이 결합하면 규모가 더 커질까봐 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관련 기관들이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시민단체가 분리될 수 있도록 여론 조작을 하는 것이라고도 분석했습니다. 

민주노총도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소위 '북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민주노총 프레임 덧씌우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성명서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과 간단한 팩트체크만 거쳤어도 나오지 못할 기사"라며 "노조법 2·3조 개정, 대우조선하청노동자의 투쟁을 북의 지령으로 인한 투쟁이라고 거짓 주장을 내놓더니 이젠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유가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투쟁까지 소환해 욕을 보이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톱은 국민의힘 측 입장을 듣기 위해 공보국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에게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개인 전화 취재는 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과거 군사 독재 정부, 보수정권 시기에 항상 '간첩론'이 대두됐다"라면서 "문제는 공안 검찰들은 북한하고 조금 관계있어도 크게 관계된(연결된) 것처럼 포장하고, 노조들은 크게 관계돼도 조그만한 관계인 것처럼 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양 교수는 "지금 상황은 검찰 과거 사례를 볼 때, 포장(부풀리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간첩은 잡아야하지만 재판이 끝날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과거를 보는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민주노총이 북한의 지령으로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참사에 대한 애도를 반정부 투쟁으로 전환하고,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등 구호들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아님으로 판정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