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현행법상 간호조무사는 ‘고졸’이어야 한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4.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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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응시 자격은 특성화고, 간호학원 졸업생
학력 상한 두고 간협, 간무협 의견 갈려
“당사자 자격 요건 부족해 반려된 헌법소원은 재청구도 가능”
교육과정 전문성이 중요한 요소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에 있는 ‘학력 상한’을 두고 논쟁이 있습니다. 간호조무사는 의료기관에서 의사 혹은 간호사 지시 아래 간호나 진료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죠. 보통 의료인, 법률가 등 영역별 전문인들은 자격시험을 볼 때 ‘학력 하한’이 있습니다. 해당 분야 관련 대학을 나오거나 학원을 졸업한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하죠.

30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전영신의 아침저널' 유튜브 영상 갈무리
30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전영신의 아침저널'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런데 간호조무사의 경우 현재 ‘간호학원’ 혹은 ‘간호조무 관련 특성화고’에 나온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의료복지학 등 관련학과 전문대 졸업생은 간호조무사 시험을 보기 위해 다시 ‘간호학원’을 다녀야 하는 겁니다. 간호조무사들이 모인 단체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곽지연 회장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행 의료법상의 ‘학력상한’ 조항이 “위헌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의 학력 상한 내용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논의가 되고 있는지 뉴스톱이 짚어봤습니다. 

 

◈36개 전문대 졸업생, 졸업 후 다시 학원으로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은 현행 의료법 제80조 1항에 있습니다. 간호조무사가 되려는 사람은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주체는 ▲특성화고등학교의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 ▲평생교육시설에서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 ▲간호학원에서 교습과정을 이수한 사람 ▲외국의 간호조무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해당 국가의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으로 국한됩니다. 문제는 간호조무 관련 학과 전문대 졸업자는 아예 시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자격제도 페이지에 정리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 내용 갈무리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자격제도 페이지에 정리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 내용 갈무리

간호관련 학과 고졸은 되는데 대졸은 안된다는 이상한 규정 때문에 현재 간호조무 관련 전문대를 나온 학생은 다시 자격시험을 위해 간호학원에서 교육을 수료해야 합니다. 간무협에 따르면, 전국 36개 보건행정과, 의료복지과 같은 학과 전문대 졸업생은 간호학원에 다시 가서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높은 학력 배제는 불합리” VS “학력 인플레 조장”

왜 이런 '역차별'이 존재하는 걸까요. 간무협은 3일 뉴스톱 서면답변에서 "기술기능분야 300개, 서비스 분야 20개의 국가기술자격도 고등학교, 전문대와 대학교, 직업전문학교, 학원, 평생교육원에서 양성 가능하고 동등한 시험응시자격을 갖고 있다"며 "간호조무사만 유독 전문대 시험응시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간무협은 법제처와 규제개혁위원회 등 국가부처도 시험 조항의 불합리함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2011년 법제처는 간호조무과가 신설될 예정이던 국제대학교 보건간호조무과 졸업자에게 "시험응시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회신했습니다. 또한, 2012년 12월 7일 규제개혁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해 "하한학력인 고졸보다 높은 학력을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평등원칙 위배 및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타 자격시험과 달리 간호조무사만 전문대 차별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간호사단체는 간호조무 관련학과 전문대 졸업생은 응시가 불가능한 현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왜 이런 주장을 할까요. 간호조무사 일은 학원이면 충분한데 전문대에서 배우게 하면 학력 인플레이션이 조장되기 때문이랍니다. 

지난해 간호조무사협회가 정부에 간호조무사 전문대 양성을 요구하자, 전국 간호대 교수 758명은 지난해 11월 14일 성명서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들 교수는 "전문대 간호조무학과 개설 시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생과 전문대 학생이 같은 자격시험을 보게 되어 제도교육권 내 위계적인 두 학제가 존재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며 전문대 학과 개설이 "학력 인플레를 조장할 뿐 아니라 양성교육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간호사 중심으로 뭉친 단체인 대한간호협회(간협)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여성신문> 보도에서 간협은 비용 문제를 들었습니다. 간협은 당시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설치될 경우 특성화고와 간호학원에서 국비 지원 등으로 거의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학생과 부모들에게 지나친 교육비 부담을 지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단체가 왜 간호조무사 지원생의 교육비 부담까지 걱정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국비 지원으로 간호학원에 다니면 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전문대 간호조무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되는 일입니다. 지금 쟁점은 전문대를 졸업하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바로 달라는게 아니라, 시험을 응시할 자격이라도 달라는 겁니다. 간호조무사 측의 의심은 간호사들이 고학력 간호조무사를 원치 않는다는 겁니다. 

 

◈자격요건 부족해서 ‘각하’...“다시 청구도 가능”

시험 응시 자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과거에 있었습니다. 간호조무 관련 전문대학 학교법인과 고등학생 4명은 전문대 졸업생의 간호조무사 시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학교법인은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에서 전문대학의 간호조무 관련 학과 졸업생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실질적인 대학의 자율권과 간호조무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직업선택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청구인 자격 때문에 ‘각하’됐습니다.

2016년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내용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내용 갈무리
2016년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내용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내용 갈무리

헌법재판소는 전문대학 내 간호조무 관련 학과 개설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며 학교법인의 기본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재판부는 간호조무 관련 학과 졸업자가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이 없어서 해당 학과 입학생이 줄어들 가능성은 인정했습니다. 다만 이는 “간접적, 반사적 불이익”이라며 “학교법인의 심판청구는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헌재는 고등학생의 위헌 주장도 이들이 전문대학 간호조무 관련 학과에서 학업 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각하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간호조무사 응시 학력 상한의 위헌성을 검토하지 않은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한을 침해당한 당사자인 전문대학 간호조무 관련 학과 졸업생은 지금이라도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뉴스톱 객원팩트체커이기도 한 전범진 변호사는 3일 인터뷰에서 "간호조무 관련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자격 조건 때문에 시험에 응시를 못 한 사례가 있다면 직업 선택의 자유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육과정 전문성에 따라 위헌여부 판단 되기도

시험 응시 자격에 관한 위헌 논쟁은 다른 의료 직역에서도 이뤄진 경우가 있습니다. 2016년 10월 27일 헌법재판소는 환자들의 의무기록 자료를 수집하는 의무기록사(보건의료정보관리사) 국가시험 응시자격 범위에 원격대학(사이버대학) 졸업생을 포함해달라는 사이버대학 재학생의 심판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의무기록사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과 전문대학 졸업생에게만 주어지는 시험 응시 자격을 사이버대생에게도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이버대학의 실질적인 교육 과정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이버대학에서 의무기록사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실습, 실기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의무기록 관련 전문대나 일반 대학에서는 현장에서 병원 통계, 암 등록 실습 등 실습, 실기 과목을 운영합니다. 반면, 출석수업 비율이 총 수업의 20% 정도인 사이버대학은 실습, 실기수업이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의무기록사 시험 자격 확대에 대한 2016년 헌법재판소 결정문
의무기록사 시험 자격 확대에 대한 2016년 헌법재판소 결정문

 


정리하자면,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진행 중입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미용사, 조리사 등은 특성화고, 학원, 전문대를 나온 뒤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듯이 간호조무사 응시생에게도 같은 자격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한간호협회는 기존 학원과 특성화고에서 인력 충원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현재 국회에는 간호조무사 시험응시 자격의 ‘학력 상한’이 들어간 간호법이 본회의에 직회부됐습니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에 ‘전문대’ 졸업생을 포함하느냐의 문제는 앞으로도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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