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의 '학폭 엄벌주의', 학폭을 줄일 수 있을까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3.29 1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순신 아들 학폭 논란 이후 정부의 '엄정대응' 기조
학폭 대학입시 반영, 생기부 보존기간 연장 등 대책
학폭을 예방하고 가해자 반성을 이끄는 대책은 빠져

최근 정치권, 연예계 등에서 학교폭력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반면 가해 학생은 처벌도 받지 않고 반성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인데요. 최근 '정순신 아들 학폭 사태'로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이 마련될 계획이지만,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뉴스톱이 확인해봤습니다. 

 

◆ '학폭 엄벌주의'를 대책으로 내세운 이주호 부총리

최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사퇴 여론이 거세지자 임명된 지 하루만에 물러났습니다. 여론이 안 좋아지자 윤석열 정부는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 대응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발 맞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폭력근절 대책'을 4월 첫째 주에 발표할 계획입니다. 이 대책안에는 ▲대학 입학 수시는 물론 정시모집에 학교폭력 징계 기록 반영 ▲학교장에게 수사 요청권 부여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징계 기록 보존 기간(현재 최대 2년)을 늘리는 등 학폭 가해자 처벌 사항을 담을 예정입니다. 이 부총리는 지난 9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해 "엄벌주의는 학폭 예방이나 자기 책임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도 반드시 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가해 학생에 대한 법적 조치와 처벌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주호 부총리의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가해 학생에게 벌을 주는 조치로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에 의거해 학교폭력 대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면서 2004년 학교폭력에 대한 제도적인 틀이 처음 마련됐습니다. 2004년 제정 이후부터 2016년까지 1월 현재까지 타법 개정 12회, 전면 개정 1회, 일부개정 11회 등 총 24차례에 개정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처벌을 강화하는 데에 힘쓴 인물이 이 부총리입니다. 과거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말 대구의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충격을 불렀습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이 부총리는 2012년 가해 학생을 엄벌하겠다며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를 강화하고 입학전형에 반영하는 등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처벌이 능사'라는 식의 접근이 학교폭력을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학교폭력 예방의 헌법적 의미와 학교폭력예방법상 예방교육에 대한 고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으로서 회복적 사법제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책발표 후 단순 수치상으로 폭력이 줄었다고 통계를 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일방적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대책이 과연 실효성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해자 처벌=문제 해결'이 도식화돼 있는 현행 사법체계의 강력한 엄벌주의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없을 뿐더러, 학교폭력과 소년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는 그 한계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학교폭력예방법 내용을 살펴보면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 체계적 대응 측면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주로 사후적 대책에 집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사전 예방 노력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 늘어나는 학폭 불복 소송...가해자의 반성은 없어

이주호 부총리의 대책대로 대학 입시에 학교폭력 전력이 반영되면 가해 학생 측에서는 어떻게든 학생부 기재를 막기 위해 소송을 할 것이고, 학교폭력 관련 법률시장만 커질 뿐이라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실제전국 학교폭력 재심 건수 및 징계불복 행정 소송 추이는 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2020∼2022학년도) 전국 학교폭력 조치사항 불복절차 현황 자료를 보면, 가해 학생이 신청한 집행정지 인용 비율은 행정심판 기준 53.0%, 행정소송 기준 62.1%로 나타났습니다. 가해 학생 측이 집행정지 신청을 포함한 불복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대부분 처분을 늦춰 입시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진행됐던 2020학년도에는 가해 학생의 불복절차 청구가 587건(행정심판 478건·행정소송 109건)이었지만, 2021학년도에는 932건(행정심판 731건·행정소송 201건)으로 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1133건(행정심판 868건·행정소송 265건)으로 다시 증가했습니다.

최근 3년간 가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2077건, 행정소송 청구 건수는 575건이었습니다. 반면 피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는 1014건, 행정소송 청구 건수는 64건이었습니다.

학생부 기록에 반영하는 등 사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쪽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지난 22일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학생부 기록은 입시와 직결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사법적 다툼으로 번지는 일도 늘어납니다. 만일 정시까지 징계 기록을 반영하면 교육적 해결의 여지가 더욱 줄어들게 될 겁니다"며 "학교폭력이 사법을 통해 해결될 경우 누가 더 유리할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쪽이 더 잘 활용하겠죠. 이번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성준 공동대표를 비롯해 교육계에서는 학교 공동체에서 해결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회복적 생활교육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회복적 정의 개념을 교육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가해자 처벌을 목표로 삼는 ‘응보적 정의’와 달리, ‘회복적 정의’는 관계 회복, 피해 회복, 공동체 회복을 중시합니다

마찬가지로 28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문제의 교육적 해결, 어떻게 가능할까?' 세미나에서는 회복적 서클(RC)을 통한 학교폭력 및 갈등 해결 사례, 차별과 혐오 주제통합수업, 차별과 혐오 수업유연화 등 교육을 통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가해 학생을 엄벌하거나 격리한다고 해서 피해 학생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해 학생에 대해 처벌 중심의 대응을 하다보면 피해 학생의 치유와 피해 회복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데, 피해 학생의 치유는 가해 학생의 진정한 반성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측면입니다. 

정부가 학폭 가해자 처벌과 입시불이익 조치를 강화하라는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학교폭력 자체를 줄이기 위한 대책, 그리고 학폭이 발생한 이후 가해 학생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는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