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화물차 파업은 재난에 해당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발언 확인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한 사례도 사회적인 합의도 없어

  • 기사입력 2022.11.29 14:16
  • 최종수정 2023.03.07 12:25
  • 기자명 선정수 기자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발족시켰습니다. 본부장을 맡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화물연대 파업은 재난에 해당될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했습니다.

출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출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①이상민 행안부 장관,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에 따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장관은 “집단운송거부 사태가 발생해 국가물류체계와 국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화물연대 소속의 극소수 강경 화물운송 종사자들의 집단적인 운송거부 행위는 국가물류체계가 마비될 위기에 처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정부는 국가핵심기반인 물류체계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하고, 오늘 오전 9시부로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며 “이에 맞는 범정부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파업을 이유로 중대본을 꾸린 전례가 없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대해 이 장관은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이 된다”며 “국가핵심기반이 마비됐을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태원참사와 같이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②재난안전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재난안전법 3조는 재난에 해당되는 사안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3조>

1.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서 다음 각 목의 것을 말한다.

나. 사회재난: 화재ㆍ붕괴ㆍ폭발ㆍ교통사고(항공사고 및 해상사고를 포함한다)ㆍ화생방사고ㆍ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국가핵심기반의 마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

12. “국가핵심기반”이란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국가경제, 국민의 안전ㆍ건강 및 정부의 핵심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 등을 말한다.

먼저 재난의 요건입니다.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서 다음 각 목의 것”으로 정의합니다. 화물연대 파업(또는 운송거부)으로 인해 물류에 차질을 빚으며 수출입 기업들의 피해가 쌓이고 있다고 하니 재산상 피해에 해당되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다음은 ‘각 목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재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재난은 “화재ㆍ붕괴ㆍ폭발ㆍ교통사고(항공사고 및 해상사고를 포함한다)ㆍ화생방사고ㆍ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국가핵심기반의 마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로 규정됩니다.

화물연대 파업은 ‘원인’으로 지정된 화재ㆍ붕괴ㆍ폭발ㆍ교통사고ㆍ화생방사고ㆍ환경오염사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만, 정부는 국가핵심기반의 마비에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장관은 "집단운송거부로 전국의 항만 컨테이너 장치율은 현재 62.4% 수준이며, 운송거부 4일간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상시의 28.1%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 수치가 '마비'에 해당되는지는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재난안전법 3조 12호는 “국가핵심기반”이란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국가경제, 국민의 안전ㆍ건강 및 정부의 핵심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 등을 말한다”라고 정의합니다.

교통수송이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으로 한정돼 있습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화물차주 또는 화물차기사가 화물 운송에 참여하지 않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사실상 파업과 같은 모양새이지만, 정부는 화물차기사들이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고, 화물연대도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파업'으로 규정하지 않고 '집단운송거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화물연대 파업(또는 집단운송거부)이 운송을 거부하고 있는 화물차가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법 조항에도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정부는 '등'을 근거 규정으로 국가핵심기반의 마비로 판단하는 걸까요?

출처: 스마트라이브러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출처: 스마트라이브러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③’등’으로 인해 발생한 ‘등’에 해당하는 국가핵심기반의 마비

재난안전법 조항에 따라 이번 화물연대파업이 사회재난에 해당되는지를 따져봤습니다. 누가 봐도 명확할 정도로 화물연대 파업이 재난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굳이 법 조항에 꿰맞춰 해석한다고 해도 재난의 원인은 ‘등’에 해당하고, 마비되는 국가핵심기반의 종류도 ‘등’에 해당됩니다. ’등’으로 인해 발생한 ‘등’에 해당하는 국가핵심기반의 마비인 셈이죠.

이 장관은 “국가핵심기반이 마비됐을 경우(중략)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를 해서 그 단계가 ‘주의’, ‘경계’, ‘심각’ 이런 단계가 있는데요. 단계별로 조치 부서가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심각 단계로 올림으로 인해서, 심각 단계로 올리게 되면 중대본이 구성이 되게 돼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2004년 육상 화물 운송분야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제정 이후 수차례 개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이 매뉴얼의 목적은 “육상화물운송 분야 종사자들의 집단 운송거부로 인해 화물운송 마비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적 차원의 조치사항을 규정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육상화물 운송분야 재난은 “컨테이너화물자동차 등 육상운송 분야 종사자들의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수·출입 화물의 운송 마비와 BCT(시멘트) 등 특정산업 육상운송 분야 종사자들의 집단 운송거부에 따른 관련 화물의 운송 마비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됐습니다.

그러나 앞서 취재진의 질문처럼 파업 상황이 재난 상황으로 인식되고 중대본이 꾸려진 적은 없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매뉴얼이 정하고 있는대로 ‘집단운송거부’를 ‘사회재난’ 또는 ‘국가핵심기반 마비’로 볼 수 있을지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출처: 육상화물분야
출처: 육상화물운송분야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정부

④명확성의 원칙

정부입법지원센터를 참조했습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법령은 행정과 사법에 의한 법 적용의 기준이 되므로, 명확한 용어 등으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등’으로 인해 발생한 ‘등’에 해당하는 국가핵심기반의 마비로 해석되는 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이 장관은 "전국적인 운송거부가 시행될 경우에는 심각 단계로 격상하도록 저희 중대본 내부 규정이 돼 있고요. 그에 따라서 중대본을 구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뉴얼에 '심각'단계로 상향되면 중대본이 자동적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육상화물운송분야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르면 '심각(Red)' 단계에서 행정안전부는 필요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장관의 설명과는 결이 약간 다릅니다.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재난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례는 없습니다.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조연민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은 조문에서 드러나듯, '사고'로 인한 피해를 염두에 두고 규정돼 있다"며 "예상치 못하게, 급작스럽게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그에 대한 대응을 신속하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조 변호사는 "운수정책(안전운임제) 관련 갈등에서 빚어진 화물연대의 의사표시를 이러한 사고와 같이 볼 수 있을지 대단히 의문"이라며 "이러한 입장을 밀어붙이면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어떠한 의사표시도 그로 인한 파급효과를 빌미삼아 사회재난으로 규율하여 제압하고 기본권을 쉽게 침해하는 행정관행이 굳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 "행안부 장관 발언을 보면 '국가핵심기반이 마비된 경우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가핵심기반 지정 현황을 보면 시설 위주로 되어 있다. 공항, 항만, 고속도로, 발전시설, 댐 같은 것들이다. 현 상황이 어떠한 사고로 인해 이러한 시설이 마비된 상황이라고 해석되지는 않는다고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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