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선물'에 인기 급상승...기시다, 의회해산 '승부수' 가능성도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03.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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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시다 정권의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한일정상회담
지지율 상승에 이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순풍 가능성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기시다 정권, 혹은 기시다 본인에게 갖는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 국내 여론 지지를 등에 업고 각종 대외 정책 추진 자신감을 바탕으로 연내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중해 보이는 기시다 정권이지만 적기지공격능력(선제타격능력)이나 원전 건설 재개 등 그동안 반대가 높았던 정책을 논란을 떠나 결과적으로 내부 잡음 없이 추진해왔다. 여기에 한일정상회담은 특별히 내준 것이 없어 여론의 긍정적인 반응까지 얻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권의 지난 1년간 정책결정과정 방식을 보면, 대통령 내지는 대통령실 인사가 명확한 정책 목표보다 개인의 정치적 이념에 경도돼 내부 논의 없이 추진하다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최대 5년으로 끝나는 대통령 비롯 정무 인사들과 달리,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을 담당해야 할 일선부처는 뒷수습과 책임 추궁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정상회담 역시 동일한 과정 속에서 소수 인사들 주도로 별다른 내부 검증 없이 추진됐다고 봐도 될 듯싶다.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기사가 있다. 지난 3월 4일 보도된 중앙일보 기사다. 후반부에 일선 부처와, 대통령 및 일부 대통령실 인사 사이 시각차를 시사하는 대목이 있었다. 앞에 제시된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협상 과정이 한국 측에 불리하게 전개됨에 따라 최근 1~2개월 사이엔 정부와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의 3월 예산 심의와 4월 통일지방선거 및 중의원 보궐선거 이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덜어낸 상황에서 협상을 재개하자는 제언도 잇따랐다.  

 

특히 최근 한·일 관계를 담당하는 정부 고위급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는 편지를 직접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재차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자 정부 고위급 인사와 대통령실 참모들의 제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위 내용을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조언들이 제기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있을 4월 선거 이후 기시다 정권이 여론의 눈치를 덜 보게 된 시점에 하자"는 얘기는, 상대가 양보할 여지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지적으로 들린다. 정부 고위급 인사가 직접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냈다는 것도 정부 내 의견차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그만큼 정책 결정과정이 소수의 주도로 검증 없이 추진됐다는 방증이라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이번 한일정상회담 ‘속도전’은 대통령을 포함한 소수인사의 ‘과도한 사명감’이 거의 유일한 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실무 담당 정부 고위급 인사가 직접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미국의 압력이 과거 위안부 합의 때처럼 긴박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미국 요인이 강력했다면 일선 부처도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일본으로 돌려 기시다 정권이 정상회담에 응하게 된 정치적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위에서도 언급된 4월 선거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의 선거운동을 해준 셈'이라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4월에 있을 일본 선거와 한일정상회담

일본의 통일지방선거는 이름과 달리 전국 모든 곳에서 열리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한날 한시 모든 지자체에서 수장과 의회 선거가 열리지만, 일본은 각 지자체 상황에 따라 열리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한국과 달리 임기 도중 지자체장의 사퇴 등이 발생한 경우, 당선자 임기가 새로 보장되기 때문이다(일본지방자치법 140조).

다만 본인이 사퇴한 뒤 다시 출마하는 경우에는 이전 임기가 적용된다. 이를 ‘다시 나오는 선거(出直し選挙)’라 하는데 오사카지역의 포퓰리즘 정당 오사카유신회가 이를 활용해 주목도를 높이는 전략을 써왔다. 

1960~70년대에는 혁신계(좌파) 후보가 도쿄와 오사카, 교토 등지에서 수장이 되는 이른바 ‘혁신지자체 붐’이 일거나,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 좌파 정당이 지방의회 과반수를 점하는 일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퇴조가 뚜렷하다. 예외는 다른 글에서 지적했던 교토 정도다. 이제는 극우 계열 혹은 인터넷에 기반한 과격정당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자체 선거를 활용해 정계에 진출하는 현상마저 나타난다. 

지자체 선거 중 언론의 관심이 높고 정치적 풍향계 역할을 하는 게, 도쿄도지사 및 의회선거, 오사카부지사 및 의회선거다. 이번에 도쿄에서는 큰 선거가 없고, 오사카에서만 지사 및 의회 선거가 열린다(일정은 아사히신문 특설사이트를 확인). 다만 오사카에서도 큰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사와 의회를 장악한 오사카유신회가 정치적으로 흔들릴 문제가 눈에 띄지 않고, 연립여당 공명당이 오사카에서는 자민당이 아닌 오사카유신회와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에는 져도 본전인 셈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다섯 곳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였다. 자민당의 아성인 야마구치에서 두 곳, 와카야마와 지바, 오이타에서 각각 한 곳씩(오이타는 참의원, 나머지는 중의원) 열릴 예정이다. 이 중 지바가 기시다 정권의 중간 평가가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말이 이전부터 있어 왔다. 전임 스가 정권이 2021년 코로나 정책 실패로 인해, 야당 단일화가 이뤄진 보궐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당내 구심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홋카이도나 나가노와 같이 야당세가 센 지역뿐만 아니라 히로시마에서도 자민당 후보가 패했다. 

이번 보궐선거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면, 야마구치는 아베 형제가 각각 지역구를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한 사람은 암살이, 다른 한 사람은 건강 문제가 보궐 선거의 이유인 만큼 무난히 자민당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와카야마는 원래 보수야당 국민민주당 후보가 오랜 기간 의석을 갖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해당 의원이 지사선거에 나서면서 자민당 쪽 지원을 받았다. 현재 자민당 내부 문제, 즉 해당 지역구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전 간사장과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사이 후보 선출을 두고 알력이 있지만, 야당 후보에게 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야마구치 자민당 후보들과 함께 출정식에 참가한 기시다(출처: 자민당 홈페이지)
3월 6일 야마구치 내 자민당 후보들과 함께 출정식에 참가한 기시다(출처: 자민당 홈페이지, https://www.jimin.jp/news/information/205386.html)

그렇기에 자민당 후보 회계부정 문제로 공석이 된 지바와, 이달 공석이 된 야당세 강한 오이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수도권인 지바에서는 소노우라 겐타로 전 의원이 정치자금 회계처리 부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사직했다. 1990년대에는 해당 선거구에서 민주당계열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2009년 정권교체 때를 제외하고는 야당 후보 난립 등으로 자민당이 우위를 점해왔다. 이번에도 야당 분열 구도가 점쳐지고 있었다. 기시다 정권의 낮은 지지율에도 자민당이 일단은 안심하고 있던 이유다.

그러나 오이타에서 참의원 보궐 선거가 예정되면서 분위기가 다소 달라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벳푸, 유후인 등으로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오이타는 사회당에서 유일하게 총리를 지낸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지역 기반이다. 이 때문에 야당세가 강하게 남아 최근까지도 지역구에서 사민당 의원을 배출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이달초 지사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한 아다치 기요시 의원 역시 2019년 야당 지원 무소속 후보로 당선됐다. 

아다치 의원 사직 후, 공산당 등 주요 야당들은 전 사민당(사회당 후신) 의원(비례)으로 현재 입헌민주당 소속 요시다 다다토모 후보를 연대해 지원할 방침이다(실제 후보가 정해진 것은 3월 19일). 오이타에서의 야당 협력을 지바로 이어지게 하자던 게 한일정상회담이 치뤄지기 직전의 분위기다. 기시다 정권에 별다른 호재가 없었기에, 지바의 야당 단일화는 자민당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입헌민주당의 보궐선거 유세 포스터(출처: 입헌민주당 홈페이지, 補欠選挙 参議院「大分県選挙区」 衆議院「千葉県第5区」「山口県第4区」 - 立憲民主党 (cdp-japan.jp))
입헌민주당의 보궐선거 유세 포스터(출처: 입헌민주당 홈페이지, 補欠選挙 参議院「大分県選挙区」 衆議院「千葉県第5区」「山口県第4区」 - 立憲民主党 (cdp-japan.jp))

여기에 날아든 게 한일정상회담 소식이다.

기시다 정권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정권 지지율 부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회담을 받았다. 후에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위안부나 영토 문제도 다루려고 노력했음을 한껏 어필했다. 이 같이 ‘한국의 양보’를 끌어낸 한일정상회담이 기시다 정권의 ‘외교적 성과’로 받아들여지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상승했다. 외교로 좀처럼 국내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 그간의 일본정치 상황을 보면, 이는 기시다 내각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사히신문의 이달 18, 19일 조사를 보면,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응답자의 63%가 ‘평가한다’고 답했다. 정권 지지층에서는 78%가, 비지지층에서도 56%가 평가한다고 했다. ‘일본 극우들도 한일정상회담에 불만’이라는 일부 인터넷 정보는, 적어도 이 여론조사를 통해 볼 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지층 대다수뿐만 아니라, 비지지층 과반으로부터 긍정적 응답을 얻었으니 기시다로서는 ‘오므라이스 대접 한 번’으로 지지율 상승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전체 내각지지율도 한 달 사이 35%에서 40%로 뛰었다. 그동안 통일교나 방위비 증액, 원전 재가동 등 논쟁적 이슈로 지지율이 정체돼 있던 상황에 한일정상회담은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기시다는 여세를 몰아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릴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3월 21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그동안 G7 정상 중에 유일하게 젤렌스키 대통령과 현지에서 대면 회담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아왔던 터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G7을 성공적인 외교 이벤트로 치러낸 뒤, 바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에 돌입한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총리 주도로 이뤄지는 중의원 해산은 그간 정치적 승부수이자 정책 추진의 강한 동력이 돼왔다. 이처럼 기시다의 정치적 자신감을 되살려준 시작점에는 한일정상회담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정상회담을 연 기시다(출처: 기시다 트위터, https://twitter.com/kishida230/status/1638429596126437376/photo/1)
우크라이나에서 정상회담을 연 기시다(출처: 기시다 트위터, https://twitter.com/kishida230/status/1638429596126437376/photo/1)

윤석열 대통령이나 소수 측근들은 기시다 정권에 ‘은혜’를 베풀면 무언가 ‘미래지향적 호응’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서도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그 적나라한 무대였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한 협력 약속은 정치적 이익 앞에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닳고 닳은 정치인이자 오랜 기간 외교 수장을 경험한 기시다가 윤석열 정권 기대대로 움직여줄까? 공적인 약속이나 합의도 없는 상황에 그럴 유인이 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졸속 외교가 역설적으로 한국 내 일본에 대한 반감을 높이고, 다시금 불안정한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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