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재개발2지구 상인들이 24시간 농성하는 이유는?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8.0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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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먹자골목이라 불리던 을지로2가 163-3번지 일대. 이곳의 일부 상가 세입자(상인)들은 시민사회·종교 단체와 함께 70일 넘게 '24시간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6일과 19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중구청과 재개발 사업 시행예정자인 케이씨에이치에이엠씨(KCHAMC)에 세입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왜 농성을 시작했고 왜 이런 요구를 하고 있을까요? <뉴스톱>이 짚어봤습니다.

명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제2지구(명동재개발2지구)' 세입자대책위원회와 공동대책위원회가 을지로2가 163-3번지 일대 명동성당 앞에 천막 농성장을 차렸다. 사진=뉴스톱  

◆ 강제집행 대상 세입자들 명동에서 두달 넘게 시위 

을지로2가 163-3번지 일대는 '명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제2지구(명동재개발2지구)'로 지정된 곳입니다. 이곳은 지난 1983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개발되지 않고 남은 명동의 유일한 재개발 미시행 구역이었습니다.

올해 4월 23일 KCH그룹의 KCHAMC는 중구청에 재건축 사업시행계획에 대한 인가를 신청했습니다. 중구청은 이에 대해 검토 중입니다. 명동재개발2지구는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에 해당됩니다. 구역 내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시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구청 도심재생과에 따르면, KCHAMC는 오래전부터 명동재개발2지구 지역의 건물과 주변 토지를 매입해 왔습니다. 

명동재개발2지구의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KCHAMC의 밑 작업은 5년여 전부터 나타났습니다. 일련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18년 재개발 사업 시행예정사가 건물주들을 만나 인근 상가를 사들이고 있다는 등 재개발 추진에 대한 소문이 세입자 상인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이 일대의 상가 세입자들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명동재개발2지구 세입자대책위원회(세대위)를 꾸렸습니다.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지난 2019년 1월 KCHAMC와 건물주는 상가 세입자들에게 명도소송소장 등을 통해 건물을 비우라는 통보를 시작했습니다. 명도소송소장은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문제는 세대위가 명동재개발2지구의 재건축과 관련해 명도소송 외에 중구청이나 KCH로부터 공식적인 입장을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에 시민사회·종교 단체로 구성된 명동재개발2지구 대책위원회(공대위)와 세대위는 세입자 대책과 시행사와의 대화 자리가 필요하다고 중구청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KCHAMC와 중구청은 이를 받아들이질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제 철거도 이뤄졌습니다. 지난 2021년 상가 세입자였던 '블루문스튜디오'은 건물주와 KCHAMC로부터 강제집행으로 철거됐습니다. 

그러다 올해 5월 10일 세대위 총무인 '주방 만게츠' 강성진 사장은 KCHAMC로부터 강제집행 계고장을 받게 됐습니다. 이는 일정 기간 안에 나가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강성진 사장은 명동재개발2지구에 있는 상가 8곳의 세입자들과 명동 성당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시민사회·종교 단체들도 함께 24시간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강성진 사장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가게에서 이루어졌고, 가게는 저에게 삶 그 자체였다"면서 "그러나 강제집행의 두려움에 2년이 다 되도록 철문을 걸어 잠그고 장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두려움이 결국에는 현실이 돼 계고장을 받았고,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농성장까지 차렸다"라고 말했습니다. 

 

◆ KCH는 묵묵부답, 중구청은 "강제할 수 있는 입장 아냐"

이에 명동재개발2지구 시민·종교 공대위는 ▲상가세입자 임시 이주와 재정착 계획 수립 ▲상가세입자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의 사업 승인 인허가 중단 ▲중구청 주재 하에 KCHAMC와 명동재개발2지구 세대위 간의 면담 자리 마련 ▲강제집행 이루어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중구청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구청 도심재생과 관계자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중구청에서 하는 사업이 아닌 민간사업자가 하는 사업"이라면서 "세입자 이주 대책도 중구청이 아닌, 재개발 사업 시행예정자(KCHAMC)가 세워야하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세입자들의 요구 사안을 중간자의 입장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KCHAMC와 상가 세입자 간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KCHAMC가) 세대위와 같이 만나는 걸 좀 꺼리는 것 같다"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구청 도심재생과 관계자는 "중구청이 사업시행예정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보였습니다.

취재진은 재개발 진행상황과 세입자 농성에 대한 입장에 대해 KCH그룹 측에 여러 차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 과거 이주대책 내놓은 사례도 있어...결국은 시행사 의지 

다른 지역 재개발 구역의 상가 세입자들은 조합·시행자와 이주대책과 보상 등을 놓고 갈등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재개발 사업자가 상가 세입자들을 일방적으로 내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임시상가 등을 통해 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이주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 당시 청계천과 을지로 일부 구역에서는 임시 상가가 만들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일부에선 '상생협력 상가' 등을 통해 상가 세입자들을 위한 공공임대 상가를 확보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재개발 정비구역 내 상가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건 '영업 손실 보상'입니다. 이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폐업보상(제46조)과 휴업보상(제47조)입니다. KCHAMC가 내놓은 명동재개발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업보상은 2년간의 영업이익에 영업용 고정자산·원재료 등의 매각손실액을 합친 금액입니다. 휴업보상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4개월 정도의 영업손실금 정도입니다. 

다만 상가 세입자들은 대부분 페업보상이 아닌 휴업보상을 받습니다. 폐업보상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이 어렵거나, 도축장처럼 악취가 심한 경우 등 조건이 까다로워 인정되는 사례가 적습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폐업보상이 되려면 다른 곳으로 이전이 불가능한 경우여야 폐업 보상을 해준다"며 "폐업보상을 인정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재개발 조합을 기준으로, 조합의 총사업비를 놓고 보면, 세입자의 이주 대책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며 "충분히 이주 대책을 마련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사업시행자 입장에서 보면 이주 대책은 의무 규정이 아니다보니 최소한의 보상만 하려는 상황입니다. 결국 시행사가 세입자들과 얼마나 대화할 의지가 있느냐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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