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가 범죄 대책?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8.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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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 시스템 마련해야"

정부가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흉기 난동 범죄 사건의 가해자 일부가 과거에 정신질환 진단받았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복지 등 지역사회의 '정신건강복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에 대해 뉴스톱이 짚어봤습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 과거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도 "시기상조"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는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28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여,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법입원제도는 폭력성이 높거나 입원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자를 법원의 로 강제입원 시키는 제도입니다. 최근 칼부림 사건의 일부 가해자가 '조현병', '조현병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입니다.  

지금도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으로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복잡한 절차와 법적 분쟁 가능성 때문에 강제입원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법입원제도 필요성이 제기돼왔습니다.

이전에도 정부와 국회가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한 바 있습니다. 2018년 임세원 교수가 환자에게 피살당한 사건, 2019년 정신질환을 앓은 안인득이 벌인 진주 방화·살인사건을 계기로, 지난 20대 국회 당시 사법입원제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지난 2019년 김재경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사법입원제도 도입 안에 대해 보건복지부, 대법원, 경기도, 정신질환자 단체(파도손),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건강임상심리학회가 밝힌 검토 의견. 출처=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
지난 2019년 김재경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사법입원제도 도입 안에 대해 보건복지부, 대법원, 경기도, 정신질환자 단체(파도손),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건강임상심리학회가 밝힌 검토 의견. 출처=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

해당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재경 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발의한 사법입원제도 안건에 대해 대법원을 비롯한 경기도·보건복지부·정신질환 당사자 단체(파도손) 등은 '신중 검토'를,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건강임상심리학회는 '수용 곤란' 반대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다시 등장한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신 구속에 해당하는 문제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만큼,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려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인데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이 제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정신과 전문의 컨설팅, 판사의 전문성, 인프라와 인력·병상·정신과 병동·의료 인력 등이 다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전문가 "사법입원제보다 정신건강복지 지원체계 구축 우선"

정신건강복지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내의 정신건강복지 지원체계를 먼저 구축해야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현진희 학회장(대구대 사회복지학과)은 "핵심은 사례관리를 통해 정신건강복지 서비스와 치료받지 않은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역사회에 정신건강을 치료하는 시스템이 갖춰있지 않은데, 사법입원제도만 강조하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 사법입원제도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관계자는 "현 정신건강복지법상의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 지원체계 구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외래치료명령제란 자해나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의무적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 등에서 외래치료를 받도록 지자체가 조치하고 비용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정신질환...약물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회복  

그렇다면, 지역사회의 '정신건강복지 시스템' 체계 구축이 왜 중요한 걸까요? 이는 정신질환의 특성 때문인데요. 정신질환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정신질환은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양극성 장애) 등을 말합니다. 이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활동이 마음대로 줄어들거나,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공격적인 증상은 드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일부 정신질환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 때문에 자·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은 자해 위험성의 100분의1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주요 증상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조현병은 음성(무언어증, 무쾌감증, 무욕증, 단조로운 정동)과 양성(환각, 망상, 와해된 언어 등)으로 나뉩니다. 양성 조울증에는 1형(조증 삽화)과 2형(조증이 약한 조증 삽화), 순환형(경조증 삽화와 경미한 우울 삽화가 빠르게 반복)이 있습니다. 또 지속성, 계절성, 산후, 만성 우울증 등 우울증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같은 진단명을 받더라도 세부 유형별로 나눠지고, 개개인이 겪는 증상이 다릅니다. 증상이 중첩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조현병인데, 우울증도 같이 앓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이 증상에 맞는 약을 맞추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세심한 진료와 치료가 이뤄져야 합니다.

주요 정신질환의 경과. 출처=보건복지부 
주요 정신질환의 경과. 출처=보건복지부 

정신질환의 증상들은 약물치료를 받으면 호전됩니다. 다만 정신질환은 만성질환이다 보니, 완치의 개념보단 증상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상이 어느 정도 좋아져도, 스트레스 대처, 사회기술·사회인지 기능 등의 취약성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정신질환자가 의사와 상의 없이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해 고립된 상태가 이어지고 스트레스 상황으로 병이 재발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이유로 정신질환은 지역사회 내에서 약물치료와 함께 일상­ 기술, 사례관리, 직업재활 활동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도 지역사회 정신건강재활시설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 관리와 복지 서비스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정신재활시설에서는 사회적응 훈련, 생활지도, 사례관리 이뤄집니다. 종류는 주간재활시설, 지역사회전환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이 있는데요. 특히 주간재활시설의 경우, 회원으로 등록된 정신질환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모여 사회기술훈련, 교육, 사례관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선 ▲정신질환자 조기 발견 ▲사례관리 ▲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합니다. 가정방문, 전화상담, 정신재활 훈련, 주간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는데요. 경찰, 소방, 지역사회(주민센터, 희망복지지원단, 학교, 보건소 등)들과 연계하고 의뢰받아 조기개입도 진행합니다. 

이런 정신건강복지 서비스를 통해 정신질환자들이 회복하고 있습니다. 컴넷하우스을 운영하는 부산·울산 정신재활시설협회 배소연 협회장 "(정신질환자인 회원들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경험을 나누면서 치유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협회장에 따르면, 회원인 정신질환자들이 단순히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닌, 자격증을 취득해 복지관에 가서 봉사하는 등 지역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정신의료기관 등 과도한 업무량과 예산인력 부족 심각   

문제는 정신의료기관, 정신재활시설,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은 과도한 업무량, 인프라·인력 부족 등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숙련된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정신건강현장을 떠나게 만들며, 정신질환자에게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인력이 한정된 반면, 지원해야할 정신건강복지 서비스 범위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센터에서는 중증정신질환 사례관리사업 외 자살예방, 건강증진사업, 노인우울증, 지역특화사업, 재난 심리지원 등을 모두 맡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인력 충원은 한계가 있다 보니, 전문요원 1명당 담당하는 정신질환 대상자는 약 26.5명입니다. 이렇다 보니, 센터에서는 정신질환자의 효과적인 사례관리를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신재활시설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시설 인건비와 운영비가 달라집니다. 즉, 지자체가 정신재활시설 운영과 설치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개인이나 법인이 건물 임대부터 운영비, 인건비 등을 책임져야 합니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자체가 정신재활시설 설치를 비롯한 복지서비스의 설치와 운영을 담당하고 있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정신건강 증진시설 구축의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정신건강재활 시설은 수도권에 몰려있습니다. '정신재활시설 기능 정립 및 확대 방안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수도권에 있는 시설은 51.3%로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기초자치단체 중 정신재활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은 45.6%에 이릅니다.  

이와 함께 정신건강사회복시자들은 안전하지 않은 근무환경에 놓여있습니다.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관계자는 "안전한 근무환경을 위한 지침과 2인 1조 가정방문, CCTV와 안전벨설치 등 업무매뉴얼이 있으나 인력 및 예산 부족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협회가 '2023년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위기경험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1.1%가 언어적 폭력(언어적 위협,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체적 폭력(61.2%), 성적인 농담 등의 성적폭력(72.2%), 협박 등의 정서적 폭력(60.4%)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높은 수준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 및 소진상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병원에 갇혀 있거나 

이러한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재활시설과 정신건강전문요원이 겪는 문제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열악한 상황으로도 이어집니다. 서비스를 지원받는 환자의 비율도 극히 낮습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기준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 중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하는 환자의 비율은 0.13으로, 8명 중 약 1명 정도인 수준입니다. 조울증 환자 등록률은 0.05로 20명 중 1명, 주요 우울장애 환자의 등록률은 0.01로 100명 중 1명꼴입니다. 

정신질환자가 정신건강 관련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이용 가능한 서비스 자체가 적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인데요. 연구에 참여한 정신질환자의 보호자의 약 절반 정도인 54.4%가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이용가능한 프로그램이 적고(41.0%),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거나(36.4%), 교통이 불편하거나(28.6%), 복잡한 서비스 이용절차(24.9%) 때문이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서비스·시설의 부재로 사회에 나온 정신질환자가 정신병동에 재입원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보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지난 퇴원 후 1개월 이내 동일 병원에 약 21.6%가 재입원했습니다. 7일 이내 동일병원에 재입원하는 경우도 12.1%로 나타났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퇴원 후 증상조절이 불안정한 시기에 집중적인 사례관리와 정신질환 환자들이 지역사회 내에 적응을 도울 수 있는 전환시설 등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 방안'을 통해 ▲정신건강서비스 개선 ▲정신응급환자 적시개입·지속관리 ▲발병 초기 환자 집중치료 지원 ▲만성환자 탈원화 치료 재활 ▲민·관협력으로 사각지대 해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뉴스톱은 이 같은 조치 방안에 따라 어느정도 개선됐는지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수 차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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