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두 잔 음주'는 건강에 영향 없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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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흡연' 없듯 '적정 음주'도 없다!

국립암센터(원장 서홍관)는 21일 ‘대국민 음주 및 흡연 관련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대상의 46.9%는 “한두 잔의 음주는 건강에 별 영향이 없다”는 응답을 선택했습니다. “한두 잔의 음주도 건강에 해롭다”고 응답한 이는 34.0%에 그쳤고, 오히려 한두 잔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이도 18.0%로 집계됐습니다.

술을 ‘약주(藥酒)’라고 부르고, 밥 먹을 때 반주로 술 한두 잔 마시는 것은 소화를 돕는다고 생각하는 등 음주에 관대한 우리네 문화를 반영하는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립암센터는 “건강을 위해 적정 음주는 없으며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연 뭐가 맞는 걸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습니다.

 

출처: 국제암연구소 IARC 홈페이지
출처: 국제암연구소 IARC 홈페이지

①술 한두 잔은 건강에 좋다?

왜 우리 사회에는 술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또는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통념이 자리잡게 됐을까요?

동아일보는 1927년 6월 16일 <술은 얼마쯤 먹을까>라는 기고를 통해 “우리 조선에는 전래의 유도(儒道)의 풍습으로서 사실상 음주의 습성을 조장하여 왔다”고 꼬집습니다. 제사상에도 차례상에도 술이 올라갈 정도이고, 음복 문화도 전해 내려올 정도죠.

1962년 1월 14일자 조선일보는 <술의 문화와 과학>이라는 기사를 통해 “적당한 음주는 일시적으로 열과 정력을 공급해주고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모든 근심이나 고통을 없애주고 노동의 긴장을 풀어주며 술의 흥분작용은 때로 정신적 능률을 높여주어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과음은 각종 사건사고와 폭력 행위를 유발합니다. 급만성 질환을 유발하기도 하죠. 과음에 폐해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정부도 과음을 방지하려는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량, 또는 소량의 음주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이를 비중있게 보도해 왔습니다. 주류 업계는 톱스타 마케팅을 통해 주류 소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해 왔습니다. 술에 관대한 역사적 배경과 주류 업계의 마케팅, 소량 또는 적정 음주에 관한 단편적 연구 결과, 이를 부각시키는 언론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술 한두 잔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겁니다.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홈페이지
출처: 국제암연구소(IARC) 홈페이지

②소량 음주 과연 건강에 좋나?

국립암센터는 술에 대해 국제암연구소(IARC)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고 설명합니다. 또 WHO는 건강을 위해서는 적정 음주는 없으며 가장 건강한 습관은 소량의 음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는 내용도 전합니다. 사실 관계를 따져봅니다.

알코올 음료(alcholic beverages), 즉 술은 IARC가 1988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습니다. IARC는 “구강, 인두, 후두, 식도, 간의 악성 종양의 발생은 알코올 음료의 섭취와 인과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알코올 음료를 발암물질 그룹1로 분류합니다. 발암물질 그룹1은 사람에게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입니다.

WHO는 지난 1월 국제의학지 ‘랜싯’에 <낮은 수준의 알코올 소비와 관련된 건강 및 암 위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을 통해 WHO는 “알코올 소비와 관련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안전한 양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일단 마시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모든 알코올로 인한 암의 절반은 "가벼운" 및 "보통" 알코올 소비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이 분류에 해당하는 음주량은 알코올 20g 미만입니다. 작은 캔이나 맥주병(약 300ml), 와인 100ml, 또는 증류주(위스키, 브랜디 등) 1잔에 해당합니다.

술은 이미 35년전에 국제암연구소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WHO는 어떤 수준의 음주도 건강에 안전하지 않다고 잘라 말합니다. WHO는 “음주자의 건강에 대한 위험은 알코올 음료의 첫 방울부터 시작된다”고 경고합니다. 더 마실수록 더 해롭고 덜 마실수록 덜 해롭다는 취지입니다.

 

③적정 음주, 알코올의 유익한 효과?

과음하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겠냐고 하는 애주가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적정 음주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인용합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이 쏟아집니다. WHO는 “일부 연구에서는 가벼운 알코올 섭취가 일부 심혈관 질환이나 제2형 당뇨병의 위험으로 측정할 때 약간의 보호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며 “일부 연구는 중년 및 노년층의 특정 유형의 심혈관 질환에 대한 그러한 영향의 존재를 보여주지만, 여러 리뷰에서는 간헐적으로 과음하면 적당한 소비의 보호 효과가 사라지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고 평가합니다.

이어 “심혈관 질환 또는 제2형 당뇨병에 대한 보호 효과의 잠재적 존재가 개별 소비자의 암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전합니다. 알코올의 발암 효과가 인체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특정 임계값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낮은 수준의 알코올 섭취도 암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에 따라 WHO는 “암과 건강에 대한 안전한 알코올 소비량을 설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④각국 정부의 음주 가이드라인

EU와 WHO는 소량의 음주도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확고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지나친 음주’를 규제할 뿐 소량음주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 산하 알코올 남용 및 중독 연구원의 "미국인을 위한 식생활 지침 2020-2025" 에 따르면, 미국 보건 복지부 및 미국 농무부에서 법적 음주 연령의 성인은 술을 마시지 않거나 남성은 2잔 이하, 여성은 1잔 이하로 마시는 걸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적게 마시는 것이 많이 마시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고 밝힙니다. 2시간 동안 5잔 이상(여성은 4잔 이상)을 마시면 폭음(binge drinking)으로 정의합니다. 하루 4잔 이상(여성은 3잔 이상), 일주일 당 14잔 이상(여성은 7잔 이상) 마시면 과도한 알콜 사용(Heavy Alcohol Use)로 정의합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증진법으로 음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 8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에게 담배의 직접흡연 또는 간접흡연과 과다한 음주가 국민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교육ㆍ홍보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다분히 ‘과다한’ 음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⑤금주 아닌 절주, 담배와 비교해보니...

국민건강진흥법과 하위법령은 주류 제조사들이 술병에 경고문구를 집어넣도록 규정합니다. 문구의 내용도 정하고 있는데요.

○ 알코올은 발암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 등을 일으킵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 됩니다.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하며,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 발생이나 유산의 위험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모두 ‘지나친 음주’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되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담배에 들어가는 경고 문구를 살펴봅니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담배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있습니다.” 입니다. ‘지나친 흡연’이 아닌 ‘흡연’ 입니다. 흡연도 IARC가 정한 발암물질 1군에 해당됩니다. ‘지나친 흡연’이 아닌 ‘흡연’의 피해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⑥술에 관대한 문화를 바꾸자

국립암센터는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의 문화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암센터는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음주 규제가 덜하며 음주에 대해 관대한 문화적 환경”이라며 “미디어 등 대중매체를 통해 술 광고나 음주 장면에 노출 될 경우 청소년의 음주 시작 시기가 앞당겨지고, 음주 소비가 촉진될 수 있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제적인 추세를 보면, 프랑스와 스웨덴은 술에 대한 TV, 라디오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노르웨이, 핀란드, 스페인은 알코올 도수 15%∼22%의 기준을 두고 알코올 함량이 그 이상인 경우 술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25세 이하 모델은 주류광고에 출연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으며, 영국은 과도한 마케팅을 진행한 주류회사는 시장에서 퇴출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주류상품을 진열하고 판촉, 포장하는 과정에 대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관련 규제가 상당히 미비한 편입니다. 지난 2021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주류광고 제한 조항이 신설되었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이며 주류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미흡한 상황입니다.

술 좋아하는 대통령 탓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음주 관련 정책은 국민 건강을 지키기엔 매우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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