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수확량 많다고 '신동진 벼' 퇴출?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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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8년 개발 신동진 벼 수매 중단 예정
수확량 더 많은 참동진을 권유하는 모순

전라북도 쌀 생산자의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신동진 품종 벼를 정부가 수매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390억원을 들여 개발한 신동진 품종은 쌀알이 두툼해 밥맛이 좋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많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농업 기술의 ‘히트작’인 셈인데요.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정부 수매 대상에서 제외되는 설움을 겪을 판입니다. 신동진 벼는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퇴출 대상이 됐을까요? 뉴스톱과 함께 짚어보시죠.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8년간 개발한 신동진 벼 제외 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19일 쌀 적성 생산 및 품질 고급화를 이유로 2024년부터 신동진과 새일미 2개 품종을 추가로 공공비축미 매입을 제한하고 2025년부터는 정부 보급종 공급을 완전 중단(윗 사진 참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동진 벼는 농촌진흥청이 1992년부터 8년 동안 연구 개발한 품종입니다. 밥맛이 좋고 수확량(596kg/10a)이 많아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기도 하지요. 전라북도는 2022년 기준 전체 벼 재배면적의 53%를 이 신동진 벼가 점유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비축미 매입을 제한하겠다고 합니다. 수확량이 많다는 게 이유입니다. 쌀 수요가 매년 줄어들기 때문에 쌀이 남지 않도록 다수확 품종을 공공비축미에서 제외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정부 보급종이란 종자검사규격에 합격한 정부 보증종자로 품종 고유특성이 잘 나타나고 품종 순도가 높은 특징이 있습니다. 질 좋은 쌀을 키워내기 위해 정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볍씨인 셈이죠. 지난해에도 정부는 보급종 25품종 2만1196톤을 신청받았습니다. 올해 모내기를 위해 모판에 뿌려지는 볍씨인 거죠. 여기에도 신동진 벼가 2734톤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2024년부터는 공공비축미 매입을 제한하고 2025년부터는 정부가 보급하는 볍씨에서 빼버리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참동진 보급 논란

정부는 신동진 벼 대신에 ‘참동진’ 벼를 보급하려고 합니다. ‘참동진’은 ‘신동진’과 쌀알 크기가 같고 밥맛이 좋다는 장점은 그대로이지만, 벼흰잎마름병, 이삭도열병에는 강한 저항성 벼라고 합니다. 재배 적응지역은 전라남북도 평야지와 서남부 해안지입니다.

농촌진흥청은 ‘신동진’을 재배했을 때 병이 자주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참동진 벼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참동진’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배해오다 보니 병 발생이 많아져 피해 면적이 늘고 있다고 농진청은 보고 있습니다. 전북 벼 재배면적의 43%(4만9천ha)에서 병 피해가 발생했고, 2021년에는 신동진 벼에 피해가 집중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북지역 쌀 생산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정책을 철회하거나 최소한 유예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전북도의회는 “신동진벼의 가치와 우수성은 이미 입증되었는데, 정부가 대한민국 주력 쌀 품종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신동진벼의 브랜드 가치와 시간과 노력, 투입된 예산을 모두 뒤엎고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습니다. 전라북도는 신동진벼를 전북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행정과 농민, 농협이 적극 노력해 왔으며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맛과 품질을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한 고품질브랜드쌀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게 전북도의회의 시각입니다.

새 품종을 도입할 경우 종자보급 및 안정적인 재배를 위해 농가가 직접 시험 재배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갑작스럽게 매입 품종을 변경한다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농가에 반영될 것이 분명하므로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기존 품종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도 합니다.

출처: 농촌진흥청
출처: 농촌진흥청

여기에 세밀하지 못한 행정이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농촌진흥청이 내놓은 ‘참동진 벼’ 홍보자료를 보면 참동진 벼의 수확량은 10a 당 540kg으로 신동진(536kg/10a)보다 많았습니다. 신동진의 수확량이 많아서 공공비축 명단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정부가 신동진보다 더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권장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농촌진흥청의 품종정보를 기준으로 책정된 수치”라면서도 “전북 지역의 의견 제시를 바탕으로 공공비축미 매입 제한 품목 선정을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남아도는 쌀, 줄어든 소비량

전북지역 쌀 생산자들은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신동진 벼의 단위면적 당 수확량은 질소 비료를 많이 뿌려서 산출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신동진 벼는 키가 커서 질소비료를 많이 주면 넘어질 우려가 커지기 때문에 요즘엔 비료를 많이 주지 않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 품목 등록 시점에 제시된 10a 당 596kg은 과도하다는 입장입니다. 다수확 품목이라고 배제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지적입니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질 좋은(밥맛 좋은) 쌀을 단위 면적당 많이 생산해내는 품종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을 것 같은데,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맛 있는 쌀을 많이 만들어낸다는 이유로 퇴출이라뇨. 이건 앞서 잠깐 언급했던 쌀 소비량과 얽혀있는 문제입니다. ‘밥심’으로 살던 한국인들이 밥 대신 ‘밥 아닌 것’ 특히 빵, 면 등 밀가루 음식과 육류로 눈을 돌리면서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전쟁이나 기근 등에 대비해 곡물을 비축해야 하는 정부는 해마다 쌀을 사들이는 ‘공공 비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쌀이 남아돌아서 고민이 많습니다.

출처: 통계청 양곡소비량조사
출처: 통계청 양곡소비량조사

◈브레이크인가? 브레이크는 없나?

통계청은 지난 1월 2022년 쌀 소비량(윗 그림 참조)을 발표했습니다. 2022 양곡연도(2021년 11월∼2022년 10월)기준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전년보다 0.4%(0.2㎏) 감소했습니다. 2018년(-1.3%), 2019년(-3.0%), 2020년(-2.5%), 2021년(-1.4%)과 비교하면 감소세에 제동이 걸리는 국면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쌀 소비는 전환점에 들어섰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이런 문제를 제기합니다. 김 연구위원은 “만약 통계청의 쌀 소비량 발표치가 현실을 잘 반영했다면 ‘쌀 소비 감소 추세가 이제 어느 정도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변화는 대만의 쌀 소비추세 변화와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대만은 2010년대 들어 연간 쌀 소비량이 44㎏대로 떨어졌지만 감소와 회복을 반복하며 2020년까지 44㎏대를 유지했다”고 지적합니다. 통계청의 쌀 소비량 발표는 정부가 쌀 수급 대책을 세울 때 중요한 근거자료로 쓰입니다. 정부는 2022년산 쌀 수확기 대책을 발표하며 쌀시장 안정을 위해 연간 예상 수요량 대비 과잉으로 추정되는 햅쌀 37만t을 격리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쌀 소비 감소 추세가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격리 물량을 산정한 것입니다. 이번 통계청 발표로 쌀 수요량이 당초 추정치보다 6만t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격리 규모를 계획대로 집행하면 시장에 쌀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바닥은 아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 농협을 포함한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협회들의 쌀 판매량 합계자료를 살펴보면 2022 양곡연도의 쌀 판매량이 전년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최근 쿠팡 등 온라인 채널 판매 비중이 늘고 RPC 같은 전통적인 채널의 유통량과 판매 비중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쌀 판매량 감소 추세가 크게 바뀌었다고 볼 정도는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쌀이 남아돈지가 오래돼 둔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 기후의 여파로 작물 생산과 공급에 격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장기적이고 섬세한 식량 수급 정책 수립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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