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돼지열병' 원흉? 멧돼지 27만 마리 사살의 이면

멧돼지 대학살 사태... 원인과 해법

  • 기사입력 2022.12.08 10:41
  • 최종수정 2022.12.08 10:43
  • 기자명 선정수 기자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대량으로 특정 야생동물 종(種)이 사라진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 발병 이후 정부가 멧돼지 포획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국 서식 멧돼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일 중앙일보는 <490억 풀린 멧돼지 포상금…가장 많이 잡힌 곳, 강원 아니다>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충격적인 수치가 보도됐는데요. 사실 여부를 확인해봤습니다.

 

◈3년간 멧돼지 27만 마리 사살·포획

중앙일보는 “환경부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전국에서 ASF와 관련해 포획·사살한 야생 멧돼지가 모두 26만9521마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ASF 발병 이전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멧돼지를 40만~50만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ASF 발병 이후 포획 또는 사살한 멧돼지가 원래 서식하던 멧돼지 전체의 절반이 넘은 셈이죠.

뉴스톱이 환경부에 사실여부를 확인했습니다. 환경부 남형용 야생동물질병관리팀장은 뉴스톱과 통화에서 “중앙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라고 확인했습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수시로 관찰 카메라에 촬영되던 멧돼지들이 ASF 대책 이후 한 달에 한두 차례 찍힐까 말까 하는 수준으로 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왜 잡았나?

ASF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성 돼지 전염병입니다. 심급성형 ASF는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타나며, 41–42°C의 고열, 식욕결핍, 무기력, 호흡항진 및 피부의 충혈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통 임상증상이 시작된 지 1-4일 만에 돼지가 갑자기 죽고 장기에 뚜렷한 병변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급성형은 발열이 시작된지 1주일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한 무리 안에서 감염 돼지가 생기면 감염되는 비율이 매우 높고 급성형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기 때문에 양돈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질병입니다.

국내 양돈 농가에서 ASF가 처음 발병한 것은 지난 2019년 9월 16일이었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정부는 2019년 10월 15일부터 멧돼지 총기 포획을 허용했습니다. 멧돼지가 직간접적으로 사육 돼지에게 ASF를 전파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출처: 국립생태원
출처: '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생태와 차단방역', FAO, 국립생태원 번역

◈ 멧돼지가 돼지 우리로 들어와서 바이러스를 퍼뜨렸나?

멧돼지가 직접 사육 돼지와 접촉해 바이러스를 전파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멧돼지 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확인된 사례는 굉장히 많았는데요. 현재까지 양돈 농가 발병사례에서 멧돼지가 사육 돼지 우리로 침입해 병을 퍼뜨린 사례는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ASF 발병 농가 주변에서 발견된 멧돼지 사체가 ASF에 감염된 사실이 여러차례 드러났고요. 대부분의 발병 사례가 간접적으로 멧돼지와 연관이 있다는 역학 조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보고서를 보면 국내 첫발병 시점인 2019년 당시 러시아, 중국 등에서 유행하고 있는 ASF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를 통해 접경지역에 유입되었고, 이후 환경에 광범위하게 오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유입 및 오염 경로로는 사람(차량), 임진강 수계(사미천 등), 야생조수류 등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ASF가 발병한 28곳에 대해 역학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멧돼지가 사육 돼지 우리로 들어왔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멧돼지 사체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주변 토양을 오염시키고 새나 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드나들거나 사람이나 차량이 주변 토양을 밟고 제대로 소독을 안한 상태로 돼지 우리로 들어가면서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됐습니다.

 

◈멧돼지를 모두 없애자는 주장

대한한돈협회는 2020년 10월 14일 성명서를 통해 “2019년 10월 9일 연천 한돈농가에서 ASF가 발생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한 한돈농가와 방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1년 만에 강원도 화천 사육돼지에서 발생했다”며 “이번 화천 ASF 발생은 ASF 야생멧돼지 통제에 책임을 지는 환경부의 정책 실패가 원인이다. 환경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고, ASF 확산과 재발방지를 위해서 하루 속히 야생멧돼지를 완전 소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ASF 국내 발병 초기부터 ASF 매개체를 멧돼지로 지목하고 야생멧돼지를 완전 소탕하라고 주장해왔습니다. 2020년에는 3년 동안 매년 75%씩 감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당초 50만 마리였던 멧돼지는 7800마리로 줄어들게 됩니다.

 

출처: '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생태와 차단방역', FAO, 국립생태원 번역
출처: '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생태와 차단방역', FAO, 국립생태원 번역

그런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관련 국제기구에 따르면 "질병 유행 단계에는 감염된 멧돼지의 수가 많기 때문에, 개체군 감축으로 질병을 박멸할 가능성(조금이라도 있다는 가정 하에)은 낮으며, 오히려 바이러스를 지리적으로 더 멀리 확산시킬 위험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어 “생태적, 역학적, 실질적 그리고 윤리적 요인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북유럽 및 동유럽 어디에서도 멧돼지 구제를 주요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해결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복잡한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존 수렵활동 관리 관행을 변경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 멧돼지 개체군 규모를 감축하며, 질병 확산 방지에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밝힙니다.

자연생태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멧돼지가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나무 열매를 먹고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려 숲을 가꾸는 역할도 하구요. 덩치가 큰 멧돼지들이 지나다니면서 길을 만들어 작은 야생동물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도 하구요. 양돈농가 입장에서 보면 멧돼지는 철천지 원수로 느껴지겠지만 멧돼지는 그저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빨간색 표시는 ASF 발생 농가. 주황색은 멧돼지 폐사체 발견 지점.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빨간색 표시는 ASF 발생 농가. 주황색은 멧돼지 폐사체 발견 지점.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멧돼지 철조망에 1600억원 투입

정부는 2019년부터 ASF에 감염된 멧돼지의 이동을 막기 위해 파주 휴전선 접경 지역을 시작으로 강원도 화천∼고성, 홍천∼양양, 경북 문경∼울진 등 태백산맥 동서 지역을 가로지르는 2806km 구역에 광역 차단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관련 예산으로 1622억원이 투입됐습니다. 철조망을 설치해 멧돼지가 이동하는 것을 막아 ASF 확산 속도를 늦추겠다는 복안이었는데요.

울타리가 점점 남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SF 감염 멧돼지는 울타리를 세운 뒤 그 남쪽에서 계속 발견됐습니다. 2020년 4월 화천∼고성 울타리를 세운 지 넉 달 만인 8월 그 이남인 춘천과 인제에서 ASF 멧돼지가 나왔구요. 이 해에 춘천과 인제에서만 각각 15마리, 39마리의 ASF 멧돼지가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11, 12월에는 문경∼영주∼울진 울타리를 세웠는데, 올해 1, 2월 울타리 이남인 충북 보은, 경북 상주에서 ASF 멧돼지가 나타났습니다. 올해 11월 현재 ASF 멧돼지의 활동 범위는 울진까지 남하한 상태입니다. 산악지역인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멧돼지의 움직임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어렵구요. 도로 배수로 등 뚫려있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멧돼지가 힘이 세서 웬만큼 튼튼히 설치하지 않으면 넘어뜨려 버리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기존에 사람들이 다니던 곳은 통행 불편으로 인해 사람들이 뜯어버린 곳도 있구요.

그래서 5차 광역울타리 설치 이후 추가 설치는 중단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다른 야생동물 이동을 막아서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런데 이게 뜯자니 또 막대한 비용이 들게 생겼습니다.

 

출처: SBS 뉴스
멧돼지 울타리로 인해 고립됐다 폐사체로 발견된 산양. 출처: SBS 뉴스

◈ASF 감염경로는?

이번 ASF 멧돼지 대응책의 핵심은 울타리를 설치해 이동 속도를 늦추고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멧돼지를 사냥해서 개체수를 줄인다, 이런 겁니다. 이랬던 이유가 축산 농가들이 ASF에 대한 굉장한 공포를 갖고 있었거든요. 한번 뚫리면 양돈업계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 축산 농가들의 차단방역 노력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래서 구제역 사태처럼 이 농가에서 저 농가로 감염이 전파되는 수평전파 사례는 이번 ASF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부 양돈 단체는 멧돼지를 박멸해야 한다고 거칠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멧돼지가 ASF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지만 개별 농가들이 방역을 철저히 하면 막을 수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멧돼지에게 돌리는 것은 좀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600억원을 들여서 철조망을 세우고, 멧돼지 포획 포상금으로 490억원이 지출됐거든요. ASF 관련 사육돼지 40만 마리가 살처분됐구요. 이 보상금으로 1380억원 정도 지출됐습니다. 합하면 3500억원 정도 됩니다. 이 돈을 양돈 농가의 차단방역 대책에 지원했더라면 이번 ASF 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다가올 가축전염병은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결국 축산 농가가 외부 오염원으로부터 철저히 방벽을 쌓으면 가축전염병 우려는 굉장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의 교훈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를 돌아보면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야생조류가 AI 바이러스를 품고 돌아다니다가요. 똥도 싸고 깃털도 묻히고 사체가 발생하기도 하면서 바이러스가 사육농가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개별 농가가 얼마나 철저히 외부와 차단을 하느냐에 따라 방역 성패가 갈립니다.

이번 ASF 감염 사례에 대한 정보가 모두 공개돼 있는데요. 하나같이 방역이 미흡했던 점이 지적됩니다. 사육장 주변에서 텃밭을 일군다든지, 작업자들이 각기 다른 돈사를 출입할 때 장화를 갈아신지 않는다든지, 출입하는 차량 소독이 미흡했다든지 하는 방역 허점들이 드러났습니다.

AI 바이러스가 야생조류에서 검출된다고 해서 야생조류를 다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잖아요. 야생조류가 AI 바이러스를 축사 근처까지 가져온다고 해도 결국 축사 안으로 바이러스가 들어가는 것은 방역 허점들을 통해서거든요. 멧돼지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ASF 백신은 없나?

ASF는 케냐에서 1921년 처음 발견돼 지금까지 10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바이러스 크기가 크고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인데요. 올해 베트남에서 ASF 백신 개발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각국에 놀라움을 주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민간 제약사가 협업해 ASF 백신을 개발하고 안전성과 방어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추가적으로 검증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어 상용화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전망입니다.

 

출처: 경주국립공원 멧돼지 실태 모니터링, 국립공원연구원
출처: 경주국립공원 멧돼지 실태 모니터링, 국립공원연구원

◈야생과 사람이 공존할 수는 없나?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고 사람은 사람대로 살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 되는데요. 인류의 역사는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투쟁의 역사죠.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돼지를 사육하는 인간의 입장에선 멧돼지는 돼지 사육 시스템을 위협하는 전염병 매개체인 것이고요. 돼지 사육장을 지키기 위해서 멧돼지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고요. 멧돼지 입장에선 그냥 살아가는 것 뿐인데 어느날 인간에 의해 전염병 매개체로 낙인찍히고 대량학살을 당하는 겁니다.

결국엔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생명과 자연생태를 사랑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더 목소리를 높여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가령 돼지고기 소비자들이 멧돼지 학살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양돈 산업계에선 이를 무시할 수 없겠죠.

UN생물다양성협약이라는 국제협약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1994년 이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자연생태계에 대한 국민 인식도 굉장히 높아졌구요. 동물권에 관한 논의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야생동물과의 공존, 자연생태와 인간의 공존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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