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 전장연은 왜 반대하나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3.14 17: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 사용권리, 당사자에 일부 이양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한 스웨덴, 한국과 상황 달라
"선진국 3분의 1 수준 장애인 예산 확대 우선" 목소리도

지난 9일 정부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눈에 띄는 내용은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시범운영입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었다가 취임 후 국정과제로 채택됐습니다. 장애인 개인이 주어진 예산 범위 내의 ‘바우처’(현금) 방식으로 활동지원 서비스와 보조기기 구매 등을 직접 선택하는 제도입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 보건복지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 보건복지부

기존에는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을 활동지원 중개 기관에 일괄적으로 지급해 장애인이 직접 본인이 이용하고 싶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서비스 이용자가 정해진 범위 내 예산을 활동보조사를 고용하거나 의료기기를 구매하는 데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정부는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확대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 측에서는 이번 계획에 비판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입장문을 통해 “장애인 정책 지출이 OECD 평균인 2.14%의 3분의 1수준인 0.72%”라며 개인예산제를 위한 예산 확대 없이 활동지원 예산을 활용하려는 것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전장연 측이 개인예산제를 비판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정부는 개인예산제 도입을 설명하면서 주된 사례로 '스웨덴의 개인예산제'를 소개했습니다. 전장연 측은 스웨덴과 비교해 한국은 “활동지원에 대한 예산이 매우 큰 차이가 있다”며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체계가 매우 다르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뉴스톱>이 이번 정부의 개인예산제 도입안이 실제 해외 사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봤습니다. 

 

◈개인예산제 적용되는 ‘활동지원’ 예산…스웨덴에 훨씬 못 미쳐

정부는 먼저 ‘장애인활동지원’을 중심으로 개인예산제를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활동지원)와 발달재활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그중 활동지원은 장애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돕고자 장애인의 실제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입니다. 대표적으로 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해 신체활동을 돕고 가사활동과 이동을 돕는 ‘활동보조’, 장애인의 집에 방문해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목욕’, 장애인의 집에서 요양상담과 진료보조, 구강 위생을 제공하는 ‘방문간호’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정부가 밝힌 개인예산제 실행안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급여 유연화 모델'은 기존에 지급하던 장애인활동지원 급여 중 10% 정도를 떼어내 긴급돌봄, 의료비, 보조기기 구매 등 공공서비스 혹은 주택 개조나 주거환경 개선 등 민간서비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두 번째 방안은 기존 활동지원 예산 가운데 20%를 간호사,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인력'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데 쓰는 겁니다. 두 가지 안 모두 예산이 쓰이는 대상이 다를 뿐 기존 ‘활동지원’ 예산을 가져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활동지원 급여량이 이미 충분히 확보된 장애인은 다른 의료기기 등을 구매하는 데 예산을 쓸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개인예산제를 연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한나 연구위원은 <뉴스톱>과의 인터뷰에서 “이용자가 유연하게 서비스를 이용해 서비스 제공 성과를 높이고자 한다”며 “한국에서 개인예산제를 실험해볼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모의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단체측은 회의적인 의견입니다. 전장연 정책담당자는 “개인예산제가 의미 있으려면 현재 총 예산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상태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장연 측은 개인예산제를 집행에 필요한 활동지원 예산이 현재 중증장애인의 24시간 활동지원을 지원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전장연 정책담당자는 큰 틀에서 “예산 총량의 확대, 복지서비스를 판정할 공적체계, 서비스를 감독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개인예산제 도입 예시로 든 스웨덴의 활동지원 예산은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1조9919억 원이고, 서비스 대상자는 14만6천명입니다. 반면 스웨덴의 활동지원 예산은 2018년 기준으로 약 256억 크로나, 우리 돈으로 3조1598억 원 규모입니다. 한국의 활동지원 예산은 스웨덴의 63% 수준입니다. 스웨덴 인구가 1000만명 약간 넘는 것을 감안하면 차이는 현격하게 벌어집니다. 

전체 장애인 정책 예산에서도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GDP 대비 장애인정책 지출 비율의 경우 한국은 2022년 기준 0.72%입니다. OECD 평균은 2.14%로 한국의 3배 정도 수준입니다. 

제2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안건 자료에 담긴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 예산 현황. 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제2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안건 자료에 담긴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 예산 현황. 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전장연 정책담당자는 2018년에 먼저 개인예산제를 시행한 호주 사례를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장연 담당자는 “호주는 한국과 유사하게 장애인 정책 예산이 적지만 맞춤형 체계를 적용했다”면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를 도입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주의 개인예산제에 대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서는 “호주에서 NDIS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추가 세수 확보를 통한 비용 충당 방안으로 예산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언급됐습니다. 

 

◈서비스 제공 기관 늘리는 등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

예산 총액 규모 차이외에 스웨덴의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원체계와 범위에 차이가 있습니다. 스웨덴은 장애인서비스법(LSS)을 통해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10가지 서비스를 규정합니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폭이 넓은 겁니다. 그중의 하나인 ‘활동보조’는 한국의 활동지원 서비스와 유사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이 서비스를 예산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이용자는 ▲지방자치단체 ▲이용자 조합 ▲영리 기관이 제공하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택할 수 있고, ▲직접 본인의 지인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비교해 한국에서는 장애인복지관, 자립생활센터 중심으로만 개인예산제 취지의 시범사업을 시행해왔습니다.

영국의 ‘개인예산제’는 서비스 이용 범위가 넓습니다. 영국은 ‘소셜 케어’ 제도에서 개인별 예산 제도를 운용합니다. 영국의 제도는 장애인과 노인을 구분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국에 적용하면 장애인 활동지원 외에도 재활 서비스, 문화 여가 서비스, 단기 보호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 서비스를 이용하게 합니다. 영국의 장애인들은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현금을 받는 겁니다. 물론 현금 형태로만 지급하는 건 아닙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21년 개인예산제 관련 연구보고서를 통해, “개인예산제 수립의 기초적인 전제는 공급의 충분성”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즉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급여량이 많아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과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현재 하루에 20시간 이상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도 16시간밖에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이용할 수 있는 활동지원 기관이 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어 제공인력을 선택할 여지가 없는 때도 있다는 겁니다.

보건사회연구원도 이런 경우 “서비스를 통합하고 급여 간 칸막이를 해소한들 ‘유연하며 이용자 주도적인 개인예산제’는 허상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개인예산제의 토대가 되는 “활동지원급여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지원을 받은 이용자도 복지부 재정만으로 24시간 이용할 수 없어 지자체의 추가 급여를 통해 부족한 시간을 보충받아야”하는 상황이라며 “농어촌 같은 경우 서비스 제공기관과 인력의 양적, 질적 부족은 고질적 문제이고, 발달장애인의 경우 마땅히 이용할 만한 서비스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장애인 지원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 최저임금 못미치는 '활동지원사' 구인난에 서비스 못 받아

지역별로 활동지원 기관 수의 차이도 나타납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2월 기준 활동지원 기관을 살펴보면 전국 1061곳 지원기관 가운데 서울과 경기, 인천에 405곳이 있어 총 38%를 차지합니다. 활동지원 인력으로 보면 전국 10만2650명 가운데 수도권에는 4만9578명이 있어 총 48%에 가깝습니다.

장애인들의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의 대가는 활동지원 단가로 매겨집니다. 현재 1만 5천 원 정도인데요. 이를 더 늘릴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지난해 장애인활동지원사노동조합 등은 올해 결정된 활동지원 단가 1만 5570원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올해 예산을 1만750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금액은 활동지원사가 전부 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활동지원 단가의 25% 이내는 자립센터 등 서비스 지원기관 운영비로 쓰이고 나머지 75% 이상이 활동지원사 인건비로 쓰입니다. 주 15시간 일하면 주휴수당 등 여러 수당을 고려할 때 1만 5444원에 가까워 인건비만으로 단가의 99%에 가깝다는 겁니다.  이 단체는 제대로 된 임금을 고려하기에 정부가 책정한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중증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활동지원서비스 장기 미이용자 사유조사’ 결과에서 장기 미이용 응답자 5590명 중 1800명이 서비스를 이용하고도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 이유로는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서란 답변이 79%로 가장 높았습니다. 

지난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질의에서 사용한 자료. 국정감사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질의에서 사용한 자료. 국정감사 유튜브 화면 갈무리

종합하면, 장애인 개인이 서비스를 선택하는 ‘개인예산제’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이긴 합니다. 하지만 OECD 3분의 1 수준에 머무는 활동지원 예산 총액을 증액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활동지원 단가를 현실화하고, 이들이 이용할 기관을 확충하는 등의 환경 조성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