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촬영 중이니 돌아가세요”… 민폐 촬영, 법적 문제 없나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7.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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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민폐 촬영’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인천공항에서 촬영 중이던 오징어게임 촬영팀 스태프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고 주장하는 게시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글쓴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길을 막고, 짜증스러운 명령조로 말해 황당했다”며, “인천공항을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사람들한테 피해 끼쳤으면서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뻔뻔하냐”고 분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논란이 일자 제작사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10일 인천공항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 촬영 중 시민이 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을 접했다"며 "촬영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현장 상황에 대한 안내를 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촬영을 양해해 주신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촬영 과정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민폐 촬영’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촬영 팀이 드라마 촬영 후 길거리에 쓰레기를 방치한 채 떠났다는 글과 함께 쓰레기가 뒹구는 현장 사진이 올라와 네티즌의 분노를 샀다. 드라마 측은 이후 입장문을 통해 "촬영 중간에 방치된 쓰레기로 인해 시민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4월에는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4’가 촬영 중 소음으로 인해 여러 차례 주민들로부터 경찰 신고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방송사는 “촬영 도중 소음 피해에 따른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선 사례처럼 드라마나 예능, 영화 촬영을 이유로 시민의 통행권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뉴스톱이 따져봤다.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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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8조3에 따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영상산업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국내 현지 촬영 장소의 제공 등 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영상위원회는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을 통해, 촬영 시 관할 지자체나 행정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촬영 가능 일정 및 범위, 조건 등을 조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사유지가 아닌 길거리나 주택가 등에서의 촬영 행위를 공식적으로 허가해 주는 법적 제도는 없다. 지자체와의 사전 조율은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할뿐더러, ‘쪽대본’이 성행하는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는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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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허가에 대한 법적 장치가 없는 만큼, 해당 장소에서 촬영을 이유로 시민의 통행권을 방해하는 행위 역시 법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형법 제185조(일반교통방해)는 “육로, 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 또는 불통하게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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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장소와 달리,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대해서는 상업용 촬영에 대한 사전 허가가 필수적이다. 도로교통법 제46조는 “자동차등의 운전자는 도로에서 2명 이상이 공동으로 2대 이상의 자동차등을 정당한 사유 없이 앞뒤로 또는 좌우로 줄지어 통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교통상의 위험을 발생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관할 경찰서나 고속도로순찰대에 사전에 촬영 계획을 고지한 뒤 허가를 받아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차로 통제가 필요하고 차량 소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사전에 촬영 예정 시간대의 일반적인 교통량과 도로 통제 시 차량 우회 방안 등이 포함된 ‘차량 소통 및 안전 관리 계획서’를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고 협의해야 하며, 혼잡시간대에는 촬영이 금지된다. 교량, 터널 등 우회로 확보가 불가능한 곳에서의 전면적인 교통통제는 허가되지 않는다.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 갈무리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 갈무리

다만 이는 공식적인 법적 근거를 가진 규정이 아닌, 관행적으로 허용되어 온 비공식적 지원이다. 현행법상 차량이나 사람이 통행하는 도로에서의 촬영을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 제6조는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만 보행자나 차마의 통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마라톤 등과 달리 촬영 행위는 인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당국의 재량 행위에 의해 협조 되는 도로상 촬영은, 교통상황이 악화되거나 민원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현행법상 촬영 행위를 공식적으로 허가해 주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촬영을 이유로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도로에서의 촬영은 사전에 경찰의 허가를 받아 이뤄지지만, 이 역시 공식적인 법적 허가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민원이 발생하면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교통방해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 갈무리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 갈무리

이 때문에 한국영상위원회는 '영상물 촬영지원 매뉴얼'을 통해 “공공장소에서의 촬영행위를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그에 따라 촬영이 합당하게 보장되는 법적 장치가 미비하므로, 주변 시민들의 양해에 의지해 촬영이 진행되는 때가 대부분"이라며 "제작자는 촬영으로 인해 야기되는 시민의 불편 및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 홍보를 통해 충분한 양해를 구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불편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른바 K-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품격 있는 촬영 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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