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피해로 내몰리는 농민들 "국가 책임 농정 마련해야"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9.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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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주간(Climate Week)을 맞아 이번 주 뉴욕, 런던 등 세계 곳곳에서 기후 행동 캠페인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를 맞이해 국내에서도 23일 기후정의행진이 이어집니다. 이날 함께 행진하며 생존권을 요구하는 참가자 중에는 농민들도 있습니다. 기후변화 피해로 농민들이 위기를 느끼게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뉴스톱이 짚어봤습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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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 기후변화 피해 심각…식량위기로 번질 수도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조직위)는 23일 서울 세종로에서 '기후정의행진'을 개최합니다. 수많은 기후변화 당사자들이 '기후위기의 불평등'을 지적하며 '체제전환의 필요성'을 외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조직위는 정부에 제시하는 14대 세부요구안 중 하나로 "자본의 농업생산 진출을 막고, 생태농업전환을 지원하며, 농민생존권 보장과 식량주권을 실현하라"고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농민들의 이러한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국가가 농정을 책임지고, 농민들의 생계를 보장하라는 시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달 1일 순천시농민회는 '농업예산 확대를 위한 순천농민대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달 31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정부의 무차별 농산물 수입을 규탄하는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같은 달 25일 전농 제주도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제주도연합 등 6개 단체는 '제주 농민의 길' 창립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농민 생존권 사수를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농민들은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해 농사를 망쳐 생계에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16일 '기후 위기와 농업·농촌의 대응 보고서 : 폭염'를 통해 농업 분야 폭염 인명 피해의 빈도는 낮으나, 사망확률이 높고, 농작물 피해는 증가 추세라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작물재해보험*' 지급건수와 피해 면적은 최근 크게 증가했습니다. 지난 2021년 지급건수와 피해 면적은 2018년 대비 각각 18.9배, 3.5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지급보험금은 11.2배 증가했습니다.

(* 농작물재해보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험으로 실손 보상해 농가의 소득과 경영에 안정적인 농업 재생산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서 폭염에 대한 사전 대응을 하고 있지만, 농작물은 노지 작물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완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농민들은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피해당사자 중 하나입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기후 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사'에서 나타났습니다. 참여한 응답자의 88.6%는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고, 이들 중 96.1%는 이상 기상현상의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또 92.4%는 기후변화 현상을 '심각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기후 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 중 중 농업부문 피해 정도 캡쳐본
기후 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 중 중 농업부문 피해 정도 캡쳐본

또,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부문 피해 정도(1~4점 평가)를 분석한 결과, 농민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정책 결정의 참여, 정책추진에 의견 반영되지 않는 등 '절차적 권리(평균 3.27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농작물 생산과정에서의 병해충, 농작물 피해 등 생존권(평균 3.16점) ▲물과 위생에 대한 권리(평균 3.09점) ▲폭염 및 한파로 인한 건강 피해, 기온상승으로 인한 매개곤충 감염병 등 '건강권'(2.69점) ▲먹거리 구매 비용 증가로 생활비 부담 등 '먹거리 보장권'(평균 2.52점) ▲기후변화, 날씨 정보 등 '정보접근권'(평균 2.32점) 순으로 보장받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기후변화로 인해 농어업 종사자는 실제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데 비해 기후 인권에 대한 배려나 보장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특히 생산과 노동에 대한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양한 기후정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농어업 종사자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이는 당사자 중심주의라는 기후 인권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2020년 54일간 지속된 장마로 인해 쌀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전농에 따르면, 수입농산물로 인해 국내 농산물가격은 폭락한 반면, 자재값, 비료값 등 농민들의 생산비는 폭등했습니다. 농가당 농업소득은 20년 만에 최저인 948만5000원에 머물렀습니다. 한 농가가 1년 동안 농사를 지어도 10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선진국들은 100%대 이상의 곡물 자급률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국내의 곡물자급률은 20%대 수준입니다. 자급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해외에서 수입하는 곡물이 많다는 겁니다. 국제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겨 식량 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최근 기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식량 위기는 전세계적인 화두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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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예산안'에 기후변화 대응 반영했다는데...

정부 역시 2024 농식품부 예산안을 공개하며 "현재 위협 요소인 국제 식량 시장 불확실성, 기후변화 등에 대응한다"며 "식량안보 강화, 농가 소득·경영안정 등에 대응하고, 디지털전환 촉진과 첨단식품 기술·친환경생명공학 등을 포함한 신산업을 육성해 농업과 상승효과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내년 농식품부 예산안은 지난해(17조3574억원) 대비 5.6%(국가 총지출 증가율 2.8%) 증가한 18조3330억원 규모로 편성됐습니다. 

하지만 전농은 농식품부 예산안에 대해 "투여해야 할 항목은 삭감하고, 투여하지 않아야 할 항목은 증액했다"면서 "농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체적인 예산 규모는 소폭 늘어났지만, 실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던 주요 지원 항목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의 의료비 지원을 위한 국민연금보험료 지원 예산(-534억 원) ▲친환경농산물 유통 활성화 예산(-280억원)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중 농산물 유통개선 예산(-895억 원) ▲농민과 협의 없이 무기질비료가격 지원 사업 종료(-1000억원) ▲FTA로 피해를 본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FTA피해보전직불금' 삭감을 예로 들었습니다.

농식품부는 9월12일 배포한 설명자료를 통해 "이전 집행률을 고려해 농가 지원에 필요한 적정한 예산을 확보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농업인 연금 보험료는 연금 보험 가입자 수 감소(31만7000명→28만2000명)를 고려해 편성했고, 올해와 같은 지원 기준과 지원율로 요건에 부합하는 모든 농업인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무기질비료 지원사업은 무기질비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한시적 지원사업이었으며, 주요 원자재의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내년 예산안은 반영하지 않았다"며, "친환경농산물 유통활성화사업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성격이 유사한 '농산물직거래활성화자금'과 통합하고 편성했던 것일 뿐, 280억원이 삭감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전직불금의 경우, 최근 2년간 집행률(1.8%, 2021년 7억원 집행, 2022년 미집행)을 고려해 조정했고, 편성된 예산(54억원)으로도 법적 요건을 충족한 품목은 차질 없이 지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자유무역협정(FTA) 대책, 여·야·정 합의 등을 거쳐 피해보전직불금 지급 요건을 완화하고 보전비율도 상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생산비폭등과 가격폭락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농업소득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며 "생산비 지원 대책과 가격보장 정책은 전무한 채 무작정 직불금만 늘리는 것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농민단체들은 입법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전농과 전여농 등은 농민·농업·농촌정책 기본법(농민기본법)을 만들어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기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농업식품기본법)을 전부 개정한 124개 조문으로 구성됐습니다.

'농민기본법' 주요 내용. 지난해 4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민기본법에 관한 청원 검토보고서 캡쳐. 
'농민기본법' 주요 내용. 지난해 4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민기본법에 관한 청원 검토보고서 캡쳐. 

주요 내용은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농산물가격결정위원회 ▲농지 확보 ▲농민등록제 신설 ▲농민수당법 제정 ▲농어촌 주민 권리보장특별법 제정 등입니다. 지난 해 1월 19일 국민동의청원을 거쳐 국회에 회부됐으나,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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